인조반정과 임진왜란을 대처하는 유몽인의 방식
『소화시평』 권하 47번에서는 ‘좀벌레두[蠹]’라는 글자가 핵심적인 글자로 나오는데, 이 글자와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12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2007년 다산연구소에서 기획하여 떠난 실학캠프에서 정여창 고택에 갔을 때 처음 알게 됐다. 정여창의 호가 바로 ‘일두(一蠹)’였고 그에 따라 여러 감상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엔 아래와 같은 감상을 담아놨다.
그의 호는 대단히 이색적이다. 보통 자신의 거주지나 추구하는 인생관을 호에 담기 마련이어서 호를 통해 그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자호는 일두(一蠹)이지 않은가. 바로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이다. 왜 그런 자기비하에 가까운 호를 붙였는지, 설명을 듣자마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오래된 책에 좀벌레가 많기 때문에, 그런 학문적인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투영한 것이거나, 안빈낙도의 뜻을 담은 것이란다. 거창할 필욘 없다. 수수함 속에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담아 호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실체의 화려함이 아니라, 유명무실이 되지 않으려는 내면과 외면의 조화일 것이니까.
-2007년 7월 3일
좀벌레를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그땐 책 속에 사는 벌레로 생각했던 것이고 학문에 전념해야 하는 학자라면 한 마리 좀벌레처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에도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 보면 자신이 익혔다고, 또는 외웠다고 생각한 부분을 뜯어먹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만큼 ‘책을 먹는 행위=지식 획득의 활동’이라 겹쳐서 생각하는 것이니 말이다. ‘교육학에서 배운 비고츠키를 지워라’라는 글을 통해서 ‘지식=획득’이 아닌 ‘지식=활동’이라 생각하지만, 하나의 좀벌레가 되어 진득하게 학문을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2007년 여행 당시엔 ‘나도 호를 좀벌레로 정해볼까?’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 여기가 일두고택이다.
유몽인이라고 하면 우리에겐 『어우야담』이란 일상의 일들을 잘 담아낸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 또한 그런 정도의 상식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몽인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하더라. 유몽인은 선조 당시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터지자 평양까지 선조를 모시고 파천하기도 했다. 임란 가운데서 전쟁의 수습을 위해 명나라로 건너가 담판을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원래 그렇듯 외부에 엄청난 적이 있을 땐 모든 사람이 일심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엄청난 과학기술을 지닌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면 전 지구인들이, 심지어 남한과 북한과 일본이 하나가 되어 싸우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당시도 일본이 전국토를 초토화시키는 상황이라 동인과 서인 등의 붕당에 상관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사건을 처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이 들어서고 임진왜란의 피해가 어느 정도 복구되자마자 또 다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북인에 가담한 유몽인은 그런 정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고 배척당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다 인조반정이 일어났는데 은거하던 유몽인은 반정에 가담하지 않았단 죄목으로, 광해군의 복위운동을 하고 있단 죄목으로 사형 당하고 만다. 정쟁을 피해 은거했음에도 오히려 그런 행동 자체가 반대파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만큼 유몽인 자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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