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마음이 있구나 경쇠를 침이여!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荷, 去聲.
○ 磬, 樂器. 荷, 擔也. 蕢, 草器也. 此荷蕢者, 亦隱士也. 聖人之心未嘗忘天下, 此人聞其磬聲而知之, 則亦非常人矣.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己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硜, 苦耕反. 莫己之己, 音紀, 餘音以. 揭, 起例反.
○ 硜硜, 石聲, 亦專確之意. 以衣涉水曰厲, 攝衣涉水曰揭. 此兩句, 衛風 「匏有苦葉」之詩也.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 不能適淺深之宜.
子曰: “果哉! 末之難矣.”
果哉, 歎其果於忘世也. 末, 無也. 聖人心同天地, 視天下猶一家, 中國猶一人, 不能一日忘也. 故聞荷蕢之言, 而歎其果於忘世. 且言人之出處, 若但如此, 則亦無所難矣.
해석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셨다. 삼태기를 메고 공씨의 문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마음이 있구나! 경쇠를 침이여!”라고 말했다.
荷, 去聲.
○ 磬, 樂器. 荷, 擔也.
경(磬)은 악기다. 하(荷)는 멘다는 뜻이다.
蕢, 草器也.
괴(蕢)는 풀로 만든 그릇이다.
此荷蕢者, 亦隱士也.
여기서 삼태기를 메고 가는 이는 또한 은사다.
聖人之心未嘗忘天下,
성인의 마음은 일찍이 천하를 잊은 적이 없으며,
此人聞其磬聲而知之,
이 사람은 그 경쇠소리를 듣고 그것을 알았으니
則亦非常人矣.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 ‘논어’ ‘헌문(憲問)’의 이 장(章)은 참으로 명문(名文)이다. 삼태기를 멘 은자(隱者)가 등장하여 공자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공자가 대응하는 방식이 연극처럼 생생하다. 우선 앞부분만 본다. 하궤자(荷蕢者, 삼태기 멘 은자)의 비판을 통해 거꾸로 공자의 위대한 인격과 사업을 이해할 수 있기에 ‘논어’의 편찬자들은 그 비판을 실어두었다. 앞 장(章)에서 신문(晨門, 새벽에 성문을 여는 일을 맡아보던 사람)의 비판을 실어둔 예와 같다. 공자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13년인 기원전 497년에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는 영공(靈公)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공자는 55세였다.
격경(擊磬)은 경쇠를 두드려 연주함이니, 경(磬)은 악기(樂器)의 일종이다. 하궤(荷蕢)는 삼태기를 메고 있다는 말로, 하(荷)는 부하(負荷)다. 공씨지문(孔氏之門)은 공자가 머물고 있는 집의 문을 가리킨다. 유심(有心)은 천하를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혹은 음악으로 백성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지녔다고도 풀이한다. ∼哉, ∼乎는 모두 감탄종결사다. 격경유심(擊磬有心)이라는 말을 도치하고 분절해서 어조를 강화했다.
하궤자는 공자의 경쇠 연주를 듣고 그 음색(音色)에서 ‘마음에 품은 것이 있음’을 간파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하궤자는 ‘시경’의 ‘고반(考槃)’편에서, 산골짜기에 은둔하며 스스로 즐기는 은자에 견주어진다. 이 시는 위(衛)나라 장공(莊公)이 선대의 업적을 잇지 못하자 현명한 이들이 산골짜기에서 곤궁하게 살고 있는 것을 풍자했다. 공자는 천하에 도(道)가 행하지 않음을 우려하면서도 산속으로 은둔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다음 호에 이어진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己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이윽고 “비루하구나! 굳세구나!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 둘뿐이지. 수심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수심이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네.”라고 말했다.
硜, 苦耕反. 莫己之己, 音紀, 餘音以. 揭, 起例反.
○ 硜硜, 石聲, 亦專確之意.
갱갱(硜硜)은 돌 소리니 또한 전일하여 확고한 뜻이다.
以衣涉水曰厲, 攝衣涉水曰揭.
옷을 벗고 물을 건너는 것을 려(厲)라 하고 옷을 걷고 물을 건너는 것을 게(揭)라 하니,
此兩句, 衛風 「匏有苦葉」之詩也.
이 양 구절은 위풍 「포유고엽」의 시다.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
공자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치지 않고
不能適淺深之宜.
얇고 깊은 마땅함에 적절히 하지 않음을 비판한 것이다.
子曰: “果哉! 末之難矣.”
공자께서 “과감하구나! 어려울 게 없겠구나.”
果哉, 歎其果於忘世也.
과감하다는 것은 그 세상을 잊지 않은 과감함을 탄식한 것이다.
末, 無也.
말(末)은 없다는 뜻이다.
聖人心同天地, 視天下猶一家,
성인의 마음은 천지와 같아 천하 보기를 일가처럼 하고,
中國猶一人, 不能一日忘也.
중국사람 보기를 일인처럼 하여 하루도 잊지 않았다.
故聞荷蕢之言,
그렇기 때문에 삼태기를 멘 사람의 말을 듣고
而歎其果於忘世.
세상을 잊지 않음의 과감함을 탄식하였고,
且言人之出處, 若但如此,
또한 사람의 출처가 만약 다만 이와 같다면
則亦無所難矣.
또한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과망(果忘)이라고 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이 장(章)에서 나왔으니, 790호에 이어진다. 공자의 경쇠 연주를 들은 하궤자(荷蕢者, 삼태기 멘 사람)는 그 음색(音色)에서 ‘마음에 품은 것이 있음’을 간파했다.
한참 듣고 있다가 그는 “소리가 잗달아 융통성이 없구나.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물러나 그만두면 되지 않나. ‘시경’에도 ‘물 깊으면 옷 벗고 건너고 물 얕으면 바지 걷고 건넌다’고 하지 않았나”고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세상 잊음이 과감하구나. 그런 식이라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라고는 없을 것이다”고 하여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말했다.
기이(旣而)는 ‘이윽고’다. 비(鄙)는 비루(鄙陋)로, 공자가 세상에 대해 연연(戀戀)해 한다고 비평한 말이다. 갱갱은 바위 두드릴 때 나는 소리, 교정청본은 경경으로 읽었다. 막기지야(莫己知也)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이다. 사이이이의(斯已而已矣)의 사(斯)는 접속어, 이이의(而已矣)는 결단의 어기사다. ‘심즉려 천즉게(深則厲 淺則揭)’는 ‘시경’의 ‘匏有苦葉(포유고엽)’편에 나온다. 강가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경을 드러낸 말인데,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처함을 뜻하는 비유어로 쓰였다. 과(果)는 과단(果斷), 과감(果敢)이다. 말지난의(末之難矣)는 ‘그것은 어려움이 없다’로, 말(末)은 무(無)와 같다.
선인들은 과망(果忘)을 하지 않았다. 도가 실현되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어도 현실 공간에 남아 부조리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논어’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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