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3년상 동안 임금이 국정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高宗, 商王武丁也. 諒陰, 天子居喪之名, 未詳其義.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言君薨, 則諸侯亦然. 總己, 謂總攝己職. 冢宰, 太宰也. 百官聽於冢宰, 故君得以三年不言也.
○ 胡氏曰: “位有貴賤, 而生於父母無以異者. 故三年之喪, 自天子達. 子張非疑此也, 殆以爲人君三年不言, 則臣下無所稟令, 禍亂或由以起也. 孔子告以聽於冢宰, 則禍亂非所憂矣.”
해석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자장이 “『서경』에서 ‘고종이 천자의 초상을 치르는 움막인 양암【빈소는 실제로 뼈를 묻기 전의 초분과도 같은 것이다. 천자는 7개월, 제후는 5개월, 대부는 3개월로 정해져 있다. 빈에서 장으로 진행된다. 그 기간 동안만 초옥에 거하는 것이다. -『맹자, 사람의 길』 311쪽】에 3년 있는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라고 말씀드렸다.
高宗, 商王武丁也.
고종은 상왕 무정이다.
諒陰, 天子居喪之名,
양암(諒陰)은 천자가 초상을 치르는 곳의 명칭이니
未詳其義.
그 뜻이 자세하지 않다.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공자께서 “하필 고종만 그러했겠는가, 옛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으니, 임금께서 승하하시면 문무백관들이 자신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에게 3년 동안 명령을 들었다.”라고 말씀하셨다.
言君薨, 則諸侯亦然.
‘임금이 승하하시면’이라 말했다면 제후도 또한 그랬던 것이다.
總己, 謂總攝己職.
총기(總己)는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는 것이다.
冢宰, 太宰也.
총재(冢宰)는 태재(太宰)다.
百官聽於冢宰,
백관(百官)은 총재에게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故君得以三年不言也.
임금은 3년 동안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 胡氏曰: “位有貴賤,
호인(胡寅)이 말했다. “지위엔 귀천이 있지만
而生於父母無以異者.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은 차이가 없는 것이다.
故三年之喪, 自天子達.
그러므로 3년상은 천자로부터 평민에게까지 공통이다.
子張非疑此也, 殆以爲人君三年不言,
자장은 이것을 의심한 게 아니라, 거의 임금이 3년 동안 말하지 않으면
則臣下無所稟令,
신하가 명령을 받을 곳이 없어 재앙과 반란이
禍亂或由以起也.
혹 이런 이유로 일어날까 의심한 것이다.
孔子告以聽於冢宰,
그러나 공자는 총재에게 명령을 듣는다고 알려줬으니
則禍亂非所憂矣.”
재앙과 반란은 근심할 게 아니다.”
○ 과거에 천자는 선왕이 죽으면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복상(服喪)의 규정도 매우 상세했다. ‘서경(書經)’에 보면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거상(居喪)하여 양암(諒陰)에 삼 년 동안 있으면서 정치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양암(諒陰)은 양암(諒闇)으로도 적으며, 천자가 거상(居喪)하는 곳을 가리킨다. 혹은 거상 기간이라고 보거나 신묵(信默)함이라고 보기도 한다. 원래 암(闇)은 사당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가리켰던 듯하다.
군주의 복상 기간 동안 정치는 어떻게 했는가? ‘논어’의 ‘헌문(憲問)’에서 자장(子張)은 그 점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삼 년 복상의 예법(禮法)은 은나라 고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그 예법을 지켰다”고 일러주고, 군주의 복상 기간에는 총재(冢宰)가 정무를 보았다고 설명했다.
훙(薨)은 제후(諸侯)의 죽음을 말한다. 천자(天子)의 죽음은 붕(崩)이라 적는다. 백관(百官)은 조정에서 정무(政務)를 맡아보는 관리다. 총기(總己)는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단속한다는 뜻이다. 총(總)은 본래 실들의 끝을 묶어서 송이 모양의 술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청(聽)은 지휘 받는다는 말이다. 총재(冢宰)는 대재(大宰), 총리대신(總理大臣)이다. 복상(服喪) 삼년(三年)은 실제로는 25개월이나 27개월에 해당한다.
옛날에는 서민부터 천자까지 모두 3년상을 지켰다. 군주의 복상 기간에는 혹 화란(禍亂)이 일어나지 않도록 총재(冢宰)가 정무를 통솔하여 정권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전한 말의 왕망(王莽)은 이 구절을 빌미로 섭정을 하다가 천자의 권력을 빼앗았다. 고전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그 속의 사실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전의 글귀를 왜곡한다면 그는 선독자(善讀者)가 아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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