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공자가 말한 수신과 평천하
子路問君子. 子曰: “脩己以敬.”
脩己以敬, 夫子之言至矣盡矣.
曰: “如斯而已乎?” 曰: “脩己以安人.”
而子路少之, 故再以其充積之盛, 自然及物者告之, 無他道也. 人者, 對己而言.
曰: “如斯而已乎?” 曰: “脩己以安百姓. 脩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百姓, 則盡乎人矣. 堯舜猶病, 言不可以有加於此. 以抑子路, 使反求諸近也. 蓋聖人之心無窮, 世雖極治, 然豈能必知四海之內, 果無一物不得其所哉? 故堯舜猶以安百姓爲病. 若曰‘吾治已足’, 則非所以爲聖人矣.
○ 程子曰: “君子脩己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惟上下一於恭敬, 則天地自位, 萬物自育, 氣無不和, 而四靈畢至矣. 此體信達順之道, 聰明睿知皆由是出, 以此事天饗帝.”
해석
子路問君子. 子曰: “脩己以敬.”
자로가 군자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자기 수양하기를 경(敬)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脩己以敬, 夫子之言至矣盡矣.
자기 수양하기를 경으로써 한다는 것은 부자의 말로 지극하고 다한 말이다.
曰: “如斯而已乎?” 曰: “脩己以安人.”
자로가 “이와 같으면 그만입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자기를 수양하고 남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而子路少之, 故再以其充積之盛,
그러나 자로는 그걸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쌓아가는 성대함으로
自然及物者告之, 無他道也.
자연히 물건에 미칠 것을 말해줬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人者, 對己而言.
남이란 자기에 대응하여 말한 것이다.
○ 유학의 윤리사상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 경(敬)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주일무적(主一無適)을 경(敬)이라고 정의했다. 자기 자신을 오로지하여 다른 데로 분산시키지 않는 상태를 경(敬)이라고 본 것이다. 단, 정약용은 경(敬)이란 하늘을 공경하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일과 같이 구체적 대상을 공경하는 일을 뜻한다고 보았다.
‘논어’ ‘헌문(憲問)’편의 이 장(章)에서 공자는 군자란 경(敬)으로써 자기를 수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로는 그런 정도로 군자일 수 있을까 의심했다. 공자는 군자가 경(敬)으로써 자기를 수양해서 인격(人格)이 향상되면 그와 관계있는 모든 사람이 저절로 편안하게 되므로, 경(敬)으로써 수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문군자(問君子)는 ‘군자란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이다. 수기이경(修己以敬)의 이(以)는 수단이나 방법을 나타낸다.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의 이(以)는 이(而)와 같은 연결사다. 혹자는 수기이경(修己以敬)의 이(以)도 연결사로 보아 ‘자기를 수양하여 경(敬)의 태도를 견지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여사이이호(如斯而已乎)는 ‘이와 같을 뿐입니까’라고 되묻는 말이다. 안인(安人)의 인(人)은 수기(修己)의 기(己)와 상대되어, 나와 관계된 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
공자는 자기수양(自己修養)과 현실개혁(現實改革)이 연계되어 있음을 말했다. 현실의 개혁은 험악한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격 주체가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이 그의 가치관을 편안하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경(敬)으로써 수양하지 않은 채 공허한 이념만 외쳐대는 사람을 누가 따르겠는가? ‘편안할’ 안(安)이란 글자는 참으로 그 뜻이 깊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曰: “如斯而已乎?” 曰: “脩己以安百姓. 脩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가 “이와 같으면 그만입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자기를 수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자기를 수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요순도 그걸 부족하다고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셨다.
百姓, 則盡乎人矣.
백성은 남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堯舜猶病, 言不可以有加於此.
요순이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이에 더할 수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以抑子路, 使反求諸近也.
자로를 억눌러 도리어 가까운 데서 구하도록 한 것이다.
蓋聖人之心無窮, 世雖極治,
대저 성인의 마음은 무궁하니, 세상이 비록 잘 다스려지더라도
然豈能必知四海之內,
어찌 반드시 사해의 안에
果無一物不得其所哉?
과연 하나의 물건도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故堯舜猶以安百姓爲病.
그렇기 때문에 요임금과 순임금은 오히려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을 부족하다고 여겼다.
若曰‘吾治已足’, 則非所以爲聖人矣.
만약 ‘나의 다스림은 이미 넉넉하다’고 말한다면,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程子曰: “君子脩己以安百姓,
정이천이 말했다. “군자는 자기를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篤恭而天下平.
공경을 간절하게 해야 천하가 평정된다.
惟上下一於恭敬, 則天地自位,
오직 상하가 공경을 한결같이 하면 천지가 스스로 자리 잡고
萬物自育, 氣無不和,
만물이 스스로 길러져 기가 화하지 않음이 없어
而四靈畢至矣.
사령(四靈)이 다 이른다.
此體信達順之道,
이것은 신(信)을 체득하고 순리를 통달하는 방법이다.
聰明睿知皆由是出, 以此事天饗帝.”
총명예지가 다 이로부터 나오니, 이것이 하늘을 섬기고, 상제를 제향하는 방법이다.”
○ 자로(子路)가 군자란 어떤 인물인지 묻자 공자는 경(敬)으로써 자기를 수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로가 그런 정도로 군자일 수 있습니까 하고 되묻자 공자는 군자가 경(敬)으로써 자기를 수양하면 그와 관계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편안하게 되므로 경(敬)으로써 수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자로는 공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이와 같을 뿐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군자란 자기를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자기를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걱정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여시이이호(如斯而已乎)는 ‘이와 같을 뿐입니까’라고 되묻는 말이다.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의 이(以)는 이(而)와 같은 연결사, 안백성(安百姓)은 천하의 인민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다. 병저(病諸)는 이것을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뜻으로, 하기 어려워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반성했다는 말이다. 저(諸)는 지(之)와 호(乎)의 합음자(合音字), 기유(其猶)∼호(乎)는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 문형이다.
‘대학’에서 말하듯이 인격주체의 자기 수양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몸을 닦아 공경하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 몸을 닦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장된다. 현대의 지식인들은 이 동심원의 구조를 반드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고전적인 사유가 오늘날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脩己以敬 | 脩己以安人 | 脩己以安百姓 |
修身 | 齊家 | 治國 ․ 平天下 |
修己=修身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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