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후 유종원의 문장과 바탕이 같지 않음에 대한 평론
유자후문질평(柳子厚文質評)
이규보(李奎報)
夫心之所洩, 必在於文, 故予嘗以爲見其文足敬其人, 披其文足相其質矣. 及讀唐柳子厚文, 然後知言之失也. 敢評之曰: “子厚之書, 其文之賁也周, 其心之洩也浮, 其文可敬, 其人不可敬也.”
何以言之? 曰. 汎濫渟滀, 出入子史, 洸洸乎其可駭者, 子厚之辭也, 非文之賁而其若是耶? 故曰: ‘文之賁也周.’ 然以子厚平生行己之素較之, 其身之所未備, 其意之所未行, 固亦多矣. 於文莫不皆悉, 此豈心之所蓄歟? 特託而列於文耳, 故曰: ‘心之洩也浮.’
請以一二篇明之. 讀斬曲几文, 則其端平正直之心, 疑若可見. 然韋執誼ㆍ王叔文ㆍ王伾等, 皆宵人者也, 子厚以章章名士, 撓節從之. 其相得之甚, 使天下指以爲二王劉柳, 則是可謂其行之直乎? 然則柳子之曲, 不爲不多, 奈何忘己之曲, 而規規然寓意於斬曲几, 以譏世之爲耶? 是擧其斤執其斧, 自斬其身也, 何曲几之得斬耶?
讀乞巧文則曰: ‘臣有大拙, 智所不化, 醫所不攻.’ 此亦非實之言也. 方二王時, 劉柳等更相倡譽, 以爲伊ㆍ周ㆍ管ㆍ葛復生矣. 嗚呼! 以二王爲伊ㆍ周ㆍ管ㆍ葛, 孰不爲伊ㆍ周ㆍ管ㆍ葛哉? 其言可謂巧矣, 而不可謂拙也, 其巧之不足耶? 又胡乞於天孫哉? 人猶不可欺, 況天乎?
吾故曰: ‘質之不如文也.’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十二
해석
夫心之所洩, 必在於文, 故予嘗以爲見其文足敬其人, 披其文足相其質矣.
대체로 마음이 세어 나오는 것은 반드시 문장에 실재하기 때문에 나는 일찍이 ‘문장을 보면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고 문장을 피력하면 그 바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及讀唐柳子厚文, 然後知言之失也.
당나라 유자후의 문장을 읽고난 후에 말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됐다.
敢評之曰: “子厚之書, 其文之賁也周, 其心之洩也浮, 其文可敬, 其人不可敬也.”
감히 그걸 평론하겠다. 자후의 글은 그 문장이 크고도 아울렀지만 그 마음은 세어 과장되어 있으니 그 문장은 공경할 만하더라도 그 사람은 공경할 만하지 않다.
何以言之?
어찌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曰. 汎濫渟滀, 出入子史, 洸洸乎其可駭者, 子厚之辭也, 非文之賁而其若是耶?
말하겠다. 두루 아우르고 깊이 흡수하여[渟滀] 제자서(諸子書)와 역사에 출입하여 용솟음치듯 해박할 만한 것이 자후의 글이니 문장이 크지 않다면 이와 같을까?
故曰: ‘文之賁也周.’
그러므로 ‘문장은 크고도 아울렀다’고 한 것이다.
然以子厚平生行己之素較之, 其身之所未備, 其意之所未行, 固亦多矣.
그러나 자후가 평생에 행한 것을 본래 비교해보면 몸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과 뜻이 실행되지 않은 것이 진실로 또한 많았다.
於文莫不皆悉, 此豈心之所蓄歟?
문장에 있어서 모두 갖춰지지 않은 게 없었지만 이것이 어찌 내면에 축적된 것이겠는가?
特託而列於文耳, 故曰: ‘心之洩也浮.’
특별히 의탁하여 문장에 나열했을 뿐이기 때문에 ‘마음은 세어 과장되었다.’고 한 것이다.
請以一二篇明之.
청컨대 한두 편으로 그걸 해명하겠다.
讀斬曲几文, 則其端平正直之心, 疑若可見.
참곡궤문(斬曲几文)【참곡궤문(斬曲几文): 유종원(柳宗元)이 당시의 임금이 밝지 못하여 정직한 사람을 버리고 왜곡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을 풍자하는 뜻에서 이 참곡궤문을 지었다.】을 읽어보면 단정하고도 정직한 마음을 아마 볼 수 있는 듯하다.
然韋執誼ㆍ王叔文ㆍ王伾等, 皆宵人者也, 子厚以章章名士, 撓節從之.
그러나 위집의(韋執誼)와 왕숙문(王叔文)과 왕비(王伾) 등은 모두 소인배들인데도 자후는 훤히 드러난 이름 난 선비로 절개를 꺾어 그들을 따랐다.
其相得之甚, 使天下指以爲二王劉柳, 則是可謂其行之直乎?
서로 의기투합함[相得]의 심함엔 천하에서 ‘이왕유류(二王劉柳)’라 일컬으며 지적하니 이것이 행실이 정직하다 할 수 있겠는가?
然則柳子之曲, 不爲不多, 奈何忘己之曲, 而規規然寓意於斬曲几, 以譏世之爲耶?
그러하다면 유자후의 왜곡됨이 많지 않음이 없는데 어찌하여 자기의 왜곡됨은 망각하고서 정신 나간 채[規規然] 참곡궤(斬曲几)에 뜻을 붙여 세상을 기롱하였는가?
是擧其斤執其斧, 自斬其身也, 何曲几之得斬耶?
이것은 도끼를 잡고 스스로 그 몸을 벤 것이니 어찌 곡궤(曲几)를 벤 것이겠는가?
讀乞巧文則曰: ‘臣有大拙, 智所不化, 醫所不攻.’ 此亦非實之言也.
걸교문(乞巧文)을 읽어보면 ‘신하는 크게 졸렬함이 있으니 지혜로도 변화시킬 수 없고 의원도 고칠 수 없사옵니다.’라 했으니 이것은 또한 참된 말이 아니다.
두 명의 왕씨의 때에 유우석과 유종원 등인 다시 서로를 칭찬하면서 이윤과 주공과 관중과 제갈량이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아! 두 명의 왕씨가 이윤과 주공과 관중과 제갈량이 된다면 누가 이윤과 주공과 관중과 제갈량이 되지 못할까?
其言可謂巧矣, 而不可謂拙也, 其巧之不足耶? 又胡乞於天孫哉?
그 말이 ‘교묘하다’고 할 만하지 ‘졸렬하다’고 할 만하지 않으니 교묘하다고 하기 부족하다 하여 또 어찌 직녀성(織女星)[天孫]에게 빌겠는가?
人猶不可欺, 況天乎?
사람도 오히려 속일 수 없는데 하물며 천손을 속이겠는가?
吾故曰: ‘質之不如文也.’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十二
나는 그렇기 때문에 ‘유자후의 사람됨이 문장만 못하다’고 말하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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