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정사룡 -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정사룡 -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건방진방랑자 2019. 2. 15. 18:39
728x90
반응형

양근에서 밤에 누워 즉석에서 시를 지어 동료에게 보이다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정사룡(鄭士龍)

 

 

擁山爲郭似盤中 暝色初沈洞壑空

峯頂星搖爭缺月 樹顚禽動竄深叢

晴灘遠聽翻疑雨 病葉微零自起風

此夜共分吟榻料 明朝珂馬軟塵紅 湖陰雜稿卷之四

 

 

 

 

 

 

해석

擁山爲郭似盤中

옹산위곽사반중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반의 한 가운데 같고,

暝色初沈洞壑空

명색초침동학공

석양빛 처음으로 잠기니 골자기는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봉정성요쟁결월

묏 봉우리의 반짝이는 별이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수전금동찬심총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청탄원청번의우

비 오나 의심될 정도로 맑은 여울소리 멀리서 들리고,

病葉微零自起風

병엽미령자기풍

스스로 일어난 바람에 병든 잎사귀 살살 떨어지네.

此夜共分吟榻料

차야공분음탑료

이 밤에 함께 읊조리던 평상음탑(吟榻): 진사도는 바깥에서 좋은 구절이 떠오르면 급히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를 조탁했기에 생긴 말.의 요금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명조가마연진홍

다음날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湖陰雜稿卷之四

 

 

해설

이 시는 양근에서 밤에 앉아 즉석에서 시를 지어 동료에게 보여준 것이다.

 

탄핵을 받아 물러난 양근은 마치 소반처럼 성곽이 둘러싸여 있어 해가 지자 어둠에 휩싸인다. 산봉우리에 별빛이 반짝이며 조각달과 빛을 다투니, 나뭇가지에 있던 새가 눈이 부시는지 더욱 깊은 숲으로 날아간다. 달이 떴으니 비가 오지는 않을 텐데, 마치 빗소리인 듯 멀리서 여울물 소리가 거세며, 바람이 부는지 낙엽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나란히 누워서 시를 읊조리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속세로 떠나야 한다.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권상 81에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싣고 있다.

양곡 소세양(蘇世讓)이 이러한 말을 하였다. ‘국조 이래로 각 시대마다 작가가 있어 각자 명가라고 떨쳤으나, 치우친 나라의 기습에 얽매인 단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유려한 데 빠지지 아니하면 짜 맞추는 데 빠졌다. 그런데 호음 정사룡은 기이하고 예스럽고 깎아지른 듯하고 빼어나서 시들고 얽매인 기운을 완전히 씻어 버렸기 때문에 당나라 이하(李賀)나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재주를 겨룰 만하다.’ 호음의 야좌즉사(夜坐卽事), …… 라 하였는데, 이 시는 참으로 하늘이 높아진 가을에 홀로 자연을 조망하고, 저녁 비가 개인 뒤에 외로이 피리를 부는 경지라 일컬을 수 있겠다[陽谷曰: “國朝以來, 代有作者, 各擅名家, 而未免偏方氣習之累, 不趍於流麗, 則或失於組織. 鄭湖陰士龍, 奇古峭拔, 一洗萎累之氣, 可與唐之長吉·義山竝較才力.”. 湖陰夜坐卽事詩曰: ‘擁山爲郭似盤中, 暝色初沈洞壑空. 峰頂星搖爭缺月, 樹巓禽動竄深叢. 晴灘遠聽飜疑雨, 病葉微零自起風. 此夜共分吟榻料, 明朝珂馬軟塵紅.’ 眞所謂高秋獨眺, 晩霽孤吹].”

 

허균(許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답이생서(答李生書)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언급하면서 정사룡(鄭士龍)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외져서 바다 모퉁이에 있으니 당()나라 이상의 문헌은 까마득하며, 비록 을지문덕(乙支文德)진덕여왕(眞德女王)의 시()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었던 것인지는 감히 믿을 수 없소. 신라(新羅) 말엽에 이르러 최치원(崔致遠) 학사(學士)가 처음으로 큰 이름이 났는데, 오늘로 본다면 문()은 너무 고와서 시들었으며 시()는 거칠어서 약하니 허혼(許渾)ㆍ정곡(鄭谷) 등 만당(晩唐)의 사이에 넣더라도 역시 누추함을 나타낼 텐데, 성당(盛唐)의 작품들과 그 기법(技法)을 겨루고 싶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려(高麗) 시대의 정지상(鄭知常)은 아롱점 하나는 보았다 하겠지만, 역시 만당(晩唐) () 가운데 농려(穠麗)한 시 정도였소.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는 더러 맑고 기이(奇異)하며 진화(陳澕)ㆍ홍간(洪侃)은 역시 기름지고 고우나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급기야 이제현(李齊賢)에 이르러 창시(倡始)하여, 이곡(李穀)이색(李穡)이 계승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ㆍ김구용(金九容)이 고려 말엽의 명가(名家)가 되었지요.

조선 초엽에 이르러서는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이 그 명성을 독점하였으니 문장(文章)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달()했다 칭할 만하여 아로새기고 빛나곤 해서 크게 변했다 이를 만한데 중흥(中興)의 공로는 이색(李穡)이 제일 크지요. 중간에 김종직(金宗直)이 포은(圃隱)ㆍ양촌(陽村)의 문맥(文脈)을 얻어서 사람들이 대가(大家)라고 일렀으나 다만 한()스러운 것은 문규(文竅)의 트임이 높지 못했던 것이오.

그 뒤에는 이행(李荇) 정승이 시에 입신(入神)하였으며, 신광한(申光漢)정사룡(鄭士龍)은 역시 그 뒤에 뚜렷하였소. 노수신(盧守愼) 정승이 또 애써서 문명을 떨쳤으니, 이 몇 분들이 중국(中國)에 태어났다면 어찌 모두 강해(康海)이몽양(李夢陽: 前七子詩文에 능함) 두 사람보다 못하다 하리오?

당세의 글하는 이는 문()최립(崔岦)을 추대하고 시()이달(李達)을 추대하는데, 두 분 모두 천 년 이래의 절조(絶調)지요. 그리고 같은 연배 중에서는 권필(權韠)이 매우 완량(婉亮)하고, 이안눌(李安訥)이 매우 연항(淵伉)하며 이 밖에는 알 수가 없소[吾東僻在海隅, 唐以上文獻邈如. 雖乙支, 眞德之詩, 彙在史家, 不敢信其果出於其手也. 及羅季, 孤雲學士始大厥譽. 以今觀之, 文菲以萎; 詩粗以弱. 使在許鄭間, 亦形其醜, 乃欲使盛唐爭其工耶? 麗代知常, 足窺一斑, 亦晩李中穠麗者. 仁老奎報, 或淸或奇, 陳澕洪侃, 亦腴艶, 而俱不出長公度內耳. 及至益齋倡始, 牧繼躅, , 爲季葉名家. 逮國初, 三峯陽村, 獨擅其名, 文章至是, 始可稱達. 追琢炳烺, 足曰丕變, 而中興之功, 文靖爲鉅焉. 中間金文簡得圃陽之緖, 人謂大家. 只恨文竅之透不高. 其後容齋相詩入神, 鄭亦瞠乎其後. 蘇相又力振之, 玆數公, 使生中國, 則詎盡下於康李二公乎? 當今之業,, 文推崔東皐, 詩推李益之, 俱是千年以來絶調. 而儕類中汝章甚婉亮; 子敏甚淵伉; 此外則不能知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280~282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소화시평 권상81

감상하기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