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나라 시선집을 평가하다
知詩難於作詩, 自古能詩者, 咸以選詩爲難.
余聞之先輩, 趙石澗所選『三韓龜鑑』, 多所缺略; 柳夢窩『大東詩林』, 未免固詖; 徐四佳『東文選』, 卽一類聚, 亦非選法; 蘇陽谷『續東文選』, 取舍不公, 頗因愛憎; 金佔畢, 『靑丘風雅』, 只取精簡, 遺其發越; 柳西坰『續靑丘風雅』, 與奪不明, 未得其要領. 惟許筠『國朝詩刪』, 澤堂諸公, 皆稱善揀.
詩刪之盛行於世, 蓋以此也, 然其中所爲鬼作兩首, 伽倻仙女詩及李顯郁詩, 皆古人所作, 故余表而出之, 以破其虛杗.
伽倻仙女詩, 卽國初人都元興, 次林椿諸人, 嶺南樓詩韻, 而『與地勝覽』所錄也. 其詩云: ‘金碧樓明壓水天, 昔年誰構此峯前. 一竿漁父雨聲外, 十里行人山影邊. 入檻雲生巫峽曉, 逐波花出武陵烟. 沙鷗但聽陽關曲, 那識愁深送別筵.’
李顯郁詩, 卽皇明王陽明, 廬山開元寺作也, 載在本集. 其詩云: ‘秋山路僻問歸樵 爲指前峯石逕遙 僧與白雲還暝壑 月隨滄海上寒潮 世情老去渾無賴 幽興年來獨未銷 回首孤船又陳跡 疎鍾隔渚夜迢迢.’
噫! 筠乃假設姓名, 欲瞞後人眼目何哉? 且以世情老去語意見之, 必是人間語而非鬼作明矣. 余之此論, 近於老吏斷獄, 陽明有靈, 想抵掌於冥冥也.
해석
知詩難於作詩, 自古能詩者, 咸以選詩爲難.
시를 아는 것이 시를 짓는 것보다 어려우니 예로부터 시를 짓는 사람들은 다 시를 선집하는 걸 어려워했다.
余聞之先輩, 趙石澗所選『三韓龜鑑』, 多所缺略; 柳夢窩『大東詩林』, 未免固詖; 徐四佳『東文選』, 卽一類聚, 亦非選法.
내가 선배들에게 들으니 석간(石澗) 조운흘(趙云仡)이 선집한 『삼한귀감(三韓龜鑑)』은 빠뜨린 것이 많고 몽와(夢窩) 유희령(柳希齡)의 『대동시림(大東詩林)』은 고루하고 치우침을 면치 못했으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은 곧 한 종류로 모았으니 또한 선별하는 법이 아니다.
蘇陽谷『續東文選』, 取舍不公, 頗因愛憎; 金佔畢, 『靑丘風雅』, 只取精簡, 遺其發越; 柳西坰『續靑丘風雅』, 與奪不明, 未得其要領.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의 『속동문선(續東文選)』은 취사함이 공정하지 않아 매우 개인적인 애증을 따랐으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청구풍아(靑丘風雅)』는 다만 간소한 것【精簡: ① 정간하다 ② 정선(精選)하다 ③ 간소화하다 ④ 간결히 하다】을 취해 기상이 뛰어난 걸【發越: 기상이 뛰어남.】 버렸고, 서경(西坰) 유근(柳根)의 『속청구풍아(續靑丘風雅』)』는 넣고 뺀 이유가 분명치 않아 요령을 얻지 못했다.
오직 허균(許筠)의 『국조시산(國朝詩刪)』만이 택당(澤堂) 등의 여러 문인들이 모두 잘 선집한 것이라 칭찬했다.
詩刪之盛行於世, 蓋以此也, 然其中所爲鬼作兩首, 伽倻仙女詩及李顯郁詩, 皆古人所作, 故余表而出之, 以破其虛杗.
시를 뽑는 것이 시대에 성행함이 대체로 이 때문이었지만 그 가운데 귀신이 지은 두 수의 작품인 가야선녀(伽倻仙女) 시와 이현욱(李顯郁) 시는 모두 옛 사람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드러내 포출함으로 허망함을 깨드리려 한다.
伽倻仙女詩, 卽國初人都元興, 次林椿諸人, 嶺南樓詩韻, 而『與地勝覽』所錄也.
가야선녀(伽倻仙女) 시는 곧 조선 초 도원흥(都元興)이 임춘(林椿) 등 여러 시인들의 영남루(嶺南樓) 시의 운자를 차운하여 『여지승람(與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其詩云: ‘金碧樓明壓水天, 昔年誰構此峯前. 一竿漁父雨聲外, 十里行人山影邊. 入檻雲生巫峽曉, 逐波花出武陵烟. 沙鷗但聽陽關曲, 那識愁深送別筵.’
그 시는 다음과 같다.
金碧樓明壓水天 | 금벽루(金碧樓)의 빛줄기가 물을 누르니 |
昔年誰構此峯前 | 옛날에 누가 이 봉우리 앞에 지었을꼬? |
一竿漁父雨聲外 | 빗소리 밖에 한 낚시대의 어부가 있고 |
十里行人山影邊 | 산 그림자 곁에 십리 가는 나그네 있네. |
入檻雲生巫峽曉 | 난간에 들어 구름 생기니 무협은 석양이 어리고 |
逐波花出武陵烟 | 물결 쳐내 꽃 나오니 무릉엔 안개 끼네. |
沙鷗但聽陽關曲 | 모래톱 갈매기는 다만 양관의 곡조 듣지만 |
那識愁深送別筵 | 어찌 근심 어린 이별의 잔치 알려나? |
李顯郁詩, 卽皇明王陽明, 廬山開元寺作也, 載在本集.
이현욱(李顯郁)의 시는 곧 명나라 왕양명(王陽明)이 여산(廬山) 개원사(開元寺) 작품으로 그의 문집에 기재되어 있다.
其詩云: ‘秋山路僻問歸樵 爲指前峯石逕遙 僧與白雲還暝壑 月隨滄海上寒潮 世情老去渾無賴 幽興年來獨未銷 回首孤船又陳跡 疎鍾隔渚夜迢迢.’
그 시는 다음과 같다.
秋山路僻問歸樵 | 가을 산 길이 외져 돌아오던 나무꾼에게 물으니 |
爲指前峯石逕遙 | 앞 봉우리의 돌길 아득한 곳을 가리키네. |
僧與白雲還暝壑 | 스님은 흰 구름과 아련한 골짜기로 돌아가고 |
月隨滄海上寒潮 | 달은 푸른 바다 따라 찬 물결 오르네. |
世情老去渾無賴 | 세상은 정은 늙어 떠나 까마득히 의지할 곳 없지만 |
幽興年來獨未銷 | 그윽한 흥만은 해마다 와 유독 사라지지 않네. |
回首孤船又陳跡 | 머리 돌리니 외론 돛단배는 또한 진부한 자취지만 |
疎鍾隔渚夜迢迢 | 강 너머 아련한 종소리만이 밤에도 아득하네. |
噫! 筠乃假設姓名, 欲瞞後人眼目何哉?
아! 허균(許筠)이 이름을 가짜로 지어 후대 사람의 안목을 속이려 한 건 왜인가?
且以世情老去語意見之, 必是人間語而非鬼作明矣.
또한 ‘세정노거(世情老去)’의 말 뜻을 보면 반드시 인간 세상의 말로 귀신이 짓지 않은 게 분명하다.
余之此論, 近於老吏斷獄, 陽明有靈, 想抵掌於冥冥也.
나의 이런 논의는 노련한 관리가 옥사(獄事)를 결단함에 가까우니 왕양명의 영혼이 있다면 생각건대 저승에서 손뼉을 치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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