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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온 - 과간성릉 일모불극방 유회(過杆城陵 日暮不克訪 有懷)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남효온 - 과간성릉 일모불극방 유회(過杆城陵 日暮不克訪 有懷)

건방진방랑자 2021. 4. 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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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의 공양왕릉간성은 현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이다. 고려 공양왕(恭讓王)의 능은 강원도 삼척과 경기도 고양에 있는데, 공양왕이 간성으로 추방되어 이곳에서 살해되어 묻혔다는 설이 있기에 간성릉이라 부른 듯하다.을 지나다 저물어 방문할 수 없자 느꺼움이 있어 짓다

과간성릉 일모불극방 유회(過杆城陵 日暮不克訪 有懷)

 

남효온(南孝溫)

 

 

秦家不韋移神器 函谷山川付子嬰

虛器擁名纔四歲 百年神算詎能成

 

杆城無復萬機憂 落日陵含千古羞

包胥不能存楚社 微箕猶復盡宗周

 

房訓知天禪授明 九原猶得讓王名

千村煙火皆非舊 陵後陵前水自聲 秋江先生文集卷之三

 

 

 

 

해석

秦家不韋移神器
진가불위이신기
진나라의 여불위는 옥새(玉璽)를 옮겨서
신돈을 말한다[辛旽]
函谷山川付子嬰
함곡산천부자영
함곡의 산천이 자영자영(子嬰): 진 시황의 손자에게 돌아갔네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 진 시황(秦始皇)이 되었으나 진 시황의 손자 자영(子嬰) 대에 천하를 잃었듯이 신돈(辛旽)의 아들 우왕(禑王)이 왕위에 오른 뒤에 공양왕(恭讓王) 정창군(定昌君) 대에 고려가 망하게 된 것을 말한다. 함곡관(函谷關)은 진()나라 수도인 함양(咸陽)을 지키는 요충지이다..
정창군을 말한다[定昌君]
虛器擁名纔四歲
허기옹명재사세
빈 재주로 명예 안은 지 겨우 4년이었으니
百年神算詎能成
백년신산거능성
100년의 신기한 계책을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杆城無復萬機憂
간성무부만기우
간성에선 다시 정치[萬機]의 근심 없지만
落日陵含千古羞
락일릉함천고수
해 지니 간성릉엔 천고의 수치를 머금었네.
包胥不能存楚社
포서불능존초사
신포서는 초나라 사직을 보존할 수 없었고
微箕猶復盡宗周
미기유부진종주
미자와 기자는 오히려 다시 모두 주나라를 종주 삼았네신포서 같은 충신들이 고려 왕조를 부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포서는 춘추 시대 초나라의 대부이다. 오나라 군사가 초나라의 서울인 영()으로 침입하여 왕이 피난하는 국난이 있자, ()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진나라가 구원을 허락하지 않자 신포서가 대궐의 뜰에서 밤낮으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이레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니, 진나라 애공(哀公)이 그 정성에 감격하여 구원병을 내어 오나라를 물리쳤다. 春秋左氏傳定公4.
왕귀와 왕순이 들어와 조선을 섬겼다[王貴 王順 入事本朝]

 

房訓知天禪授明
방훈지천선수명
방훈은 천명을 알아 선양하여 줌에 밝으니
九原猶得讓王名
구원유득양왕명
저승에서 오히려 양왕의 이름을 얻었네.
千村煙火皆非舊
천촌연화개비구
온 마을의 밥불 연기는 모두 예전에 아니지만
陵後陵前水自聲
릉후릉전수자성
릉 앞뒤의 물만이 절로 소리내네. 秋江先生文集卷之三

 

 

해설

이 시는 간성릉을 지나는데 해가 저물어 방문할 수 없어 회포를 적은 것으로, 고려왕조와 조선에 대한 남효온(南孝溫)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을 잘 보여 주는 시이다.

 

여불위(呂不韋)가 장양왕을 왕으로 만들고 임신시킨 기녀를 바쳐 진시황을 낳았는데, 1구 뒤의 협주에, “신돈을 이른다[謂辛旽也].”라고 되어 있어, 여불위를 신돈에 비유하고 있다.

2구에서 함곡관이 부소의 아들 자영에게 넘어간 것은 신돈의 아들인 공양왕에게 왕권이 넘어갔다는 것으로, 2구 뒤의 협주에, “정창군(恭讓王)을 이른다[謂定昌君也]”라고 되어 있어, 자영을 공양왕에 비유하고 있다.

이름뿐인 왕 노릇 겨우 4년 만으로 끝났으니 어찌 백 년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이성계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후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4년 만에 폐위시키고 간성으로 추방한 것을 두고 노래한 것이다.

 

남효온(南孝溫)은 고려 왕실을 패륜으로 간주하여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씨에 의한 역성혁명은 역사적 필연으로 보았다. 이것은 그의 5대조인 남재(南在, 1351~1419)와 동생 남은(南誾) 두 사람이 여말(麗末)신진사대부로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기에, 개국공신의 후손으로서 이러한 역사적 인식을 지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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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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