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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계씨 - 8. 군자와 소인의 차이 본문

고전/논어

논어 계씨 - 8. 군자와 소인의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1. 10. 1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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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자와 소인의 차이

 

 

孔子: “君子有三畏:

畏者, 嚴憚之意也.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天命者, 天所賦之正理也. 知其可畏, 則其戒謹恐懼, 自有不能已者. 而付畀之重, 可以不失矣. 大人聖言, 皆天命所當畏. 知畏天命, 則不得不畏之矣.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 戱玩也. 不知天命, 故不識義理, 而無所忌憚如此.

氏曰: “三畏者, 修己之誠當然也. 小人不務修身誠己, 則何畏之有?”

 

 

 

 

해석

孔子: “君子有三畏: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게 있으니,

畏者, 嚴憚之意也.

()라는 것은 엄하게 여겨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천명(天命)을 두려워하며 대인(大人)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天命者, 天所賦之正理也.

천명(天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이니,

 

知其可畏,

두려워 할 만하다는 걸 알면

 

則其戒謹恐懼, 自有不能已者.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함이 스스로 그칠 수가 없다.

 

而付畀之重, 可以不失矣.

그러니 부여받은 중임(重任)을 잃지 않는 것이다.

 

大人聖言, 皆天命所當畏.

대인과 성인의 말은 다 천명으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니

 

知畏天命, 則不得不畏之矣.

천명을 두려워 할 줄 알면 부득불 대인과 성인의 말도 두려워하게 된다.

 

논어’ ‘계씨(季氏)’의 제8장에서 공자는 도리를 알아 실천해나가는 군자라면 세 가지 두려워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삼외(三畏)라 한다. ()란 경외(敬畏)함이다. 군자는 천명(天命)을 경외해야 한다. 또한 군자는 덕이 높은 대인(大人)을 경외해야 하고, 도덕의 기준이 되는 옛 성인의 말씀을 경외해야 한다. 대인은 천명의 현전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인의 말씀은 예악(禮樂)과 도덕(道德)의 원리나 상서(祥瑞)와 재앙(災殃)의 사실을 통해 천명의 실재를 가르쳐 주는 책이나 글을 말한다.

주희(주자)는 천명이란 하늘이 부여해 준 이치로 심성(心性)에 품부(稟賦)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선()으로 나아가고 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주자의 해석이 미비하다고 비판하고 나날이 인간을 굽어보아 선악을 가려서 복이나 재앙을 내려주는 존재도 천명이라고 했다. 또한 천명을 두려워함이란 엄탄(嚴憚, 경계하고 꺼림)이 아니라 계신공구(戒愼恐懼)를 뜻한다고 해석했다. 인간의 자기완성을 위해서는 도덕실천의 의미를 완결시켜 주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인 듯하다.

천명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여겨 자율적으로 실천해나가는 바로 그 도덕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을 더 알려고 한다. 길흉화복의 운은 인간의 불평등을 낳는 비선택적인 조건이다. 공자도 운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도덕적 근거로서의 천명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녹명(祿命)의 설은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따지고 성명가(星命家)1년마다의 소운(小運)10년마다의 대운(大運)을 따진다. 공자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소인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인(大人)을 눌러버리고 성인의 말씀을 모욕 준다.”

, 戱玩也.

()는 희롱한다는 것이다.

 

不知天命, 故不識義理, 而無所忌憚如此.

천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리를 알지 못해 꺼리는 게 없음이 이와 같다.

 

氏曰: “三畏者, 修己之誠當然也.

윤순(尹淳)이 말했다.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은 몸을 닦는 성실함의 당연한 것이다.

 

小人不務修身誠己, 則何畏之有?”

소인은 수신(修身)하지도 않고 자기를 성실히 하지도 않으니, 어찌 두려워함이 있으랴?”

 

공자는 도리를 알아 실천해나가는 군자라면 삼외(三畏)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이 삼외(三畏). 그런데 군자와 달리 삶의 참된 의미를 알려 하지 않고 명예나 이익만 추구한다든가 악행을 저지르는 소인은 어떨까.

소인은 인간의 심성에 천명이 내재되어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천명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천명은 곧 인간으로 하여금 선()으로 나아가고 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도덕명령과 같은 것이다. 천명의 존재를 모르는 소인은 덕이 높은 대인(大人)을 함부로 대하고 도덕의 기준이 되는 옛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원문의 압()은 너무 친하여 익숙하게 되어 존경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는 가볍게 보고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소인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동어 반복에 가깝다. 하지만 이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대인(大人)을 경외하지 않고 성인의 말씀을 경외할 줄 모르는 소인을 징치(懲治)하는 효과가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천명을 하늘의 그물에 비유하고, 하늘의 그물은 워낙 커서 엉성한 듯하지만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天網恢恢, 疏而不失]. 형병(邢昺)은 이 말을 부연해서, 하늘의 그물은 워낙 커서 소원(疏遠)하지만 음탕한 이에게 벌을 내리고 선한 이에게 상을 주는 데는 터럭 끝만큼의 잘못도 없다고 했다.

현실공간에서 남이 나를 평가하고 상벌을 내리는 것은 곡절이 많고 때때로 부당하다. 하지만 천명이 나의 심성에 내재함으로써 활성화되어 있는 나의 양심은 나를 심판할 때에 결코 휘어지는 일이 없다. 그렇기에 옛 사람들은 낙천지명(樂天知命)이라 했다. 천명(天命)이 휘지 않음을 알고 천분(天分)을 즐기는 것이 하루를 수백 년처럼 사는 방법이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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