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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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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張載)와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

우주가족의 구상과 성인에 대한 열망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강이 따스한 봄기운에 스르르 풀린다. 어느 한 군데 균열이 생기면 이내 강을 뒤덮었던 얼음이 네모난 모양, 둥근 모양, 뾰족한 모양, 넙적한 모양 등 온갖 모양의 조각으로 나눠진다.

 

어느덧 대기는 따사로운 기운으로 넘쳐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얼음들이 녹아서 원래의 강물로 스며든다. 이렇게 보면 온갖 모양의 얼음과 얼음 사이의 부딪힘과 갈등, 대립은 모두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물의 동일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장재는 얼음과 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주 전체의 모습을 사유했던 형이상학적인 유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하여 우주가족의 한 일원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새로운 유학을 꿈꾼 세 명의 유학자

 

 

기원전 202년에 시작되어 기원후 220년에 막을 내린 한나라는 유학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제국이었습니다. 이 제국은 여타 모든 사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유학만을 숭상한다는 기치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던 법가 사상을 지지한 진나라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공자로 대표되는 유학 사상은 아마도 땅속에 그대로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 제국에 이어 중국을 장악했던 한 제국은 진 제국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부각시켜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법가 사상에서 국가를 좀먹는 좀벌레라고 폄하했던 유학 사상을 다시 살려내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오히려 유학 사상의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의 비호를 받으면서 유학은 사상으로서의 생명력을 점점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한나라 때 유행했던 훈고학(訓誥學)은 이런 비극을 상징하는 학문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훈고학의 등장으로 인자(仁者)가 되려는 공자의 정신도, 그리고 대인(大人)이 되려는 맹자의 정신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저 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대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글자 그대로 분석하고 해명하는 작업만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자와 맹자가 강조하던 완성된 인간에 대한 열망은 간과되고 말았습니다. 성인이 되려는 수양론의 정신이 사라지고, 오직 글자를 주석하는 훈고학만이 남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결국 공자와 맹자의 유학이 제공했던 절실한 삶의 문제들,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가?’하는 주체적인 삶의 문제들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문제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반드시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요. 유학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자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가 이 역할을 대신 담당하게 됩니다. 불교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른 삶을 위해 어떤 수양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었습니다. 이제 불교에 자리를 내준 유학은 진정 위기에 빠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몇몇 지식인들의 지적인 유희로 변질되고 만 유학을 다시 새롭게 만들 수는 없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와 견줄 수 있도록 유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는 공자가 제안했던 인자의 이념을 그대로 유지함과 동시에, 불교와 유사한 규모의 사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학자들은 공자의 정신을 잇고 불교와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유학을 만들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섬서성(陝西省)에서 장재(張載, 1020~1077)라는 사상가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장재 이전에 유행하던 불교는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유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삶의 고통도 마음에서 생기고, 고통의 해소도 오직 마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불교에서는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입장을 피력했지요. 이렇듯 불교는 극단적 주관주의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장재는 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 체계를 구성하여, 모든 것을 마음으로 수렴하는 불교의 논리를 공격합니다. 장재는 사람의 마음을 포함한 마음 바깥의 모든 것까지 결국 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이제 사람이 죽어 마음이 사라진다 해도, 기로 이루어진 객관적 세계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장재의 생각은 지금 정몽(正蒙)이라는 책에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정몽(正蒙)어리석음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장재가 말한 어리석음이란 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사실 공자와 맹자의 진정한 유학 정신을 망각하고 있던 당시 유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지요.

 

불교에서는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난 사람을 부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유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란 벗어나야 할 고통의 바다가 결코 아닙니다. 만약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행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지요. 유학자들은 삶의 문제는 삶이라는 지평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새로운 유학자들, 즉 신유학자(新儒學者)들은 불교와는 달리 이상적인 인격을 성인(聖人)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인은 삶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삶에 뛰어들어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삶의 달인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인이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까요? 장재와 함께 신유학을 시작했던 형제, 즉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 ~1107) 형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는 신유학에서 꿈꾸던 성인과, 성인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형제를 이정자(二程子)’라고도 부릅니다. 두 명의 정씨 선생이라는 뜻이지요. 두 형제의 사상은 주희가 정리한 하남정씨문집(河南程氏文集)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의 형이상학으로 우주가족을 꿈꾸다

 

 

여러분은 산에 올라가본 적이 있는지요? 산의 기후는 언제나 변화가 심한 편입니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간혹 흥미로운 기상 현상을 관측하게 됩니다. 무척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계곡 사이에서 엄청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지요.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전경이 어느 순간 뿌옇게 피어오르는 구름으로 가려집니다. 과연 구름은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에 떠돌던 물분자들이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진 순간 구름으로 뭉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구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흩어져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또다시 방금 전의 탁 트인 전경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지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장재의 기론(氣論)도 이와 비슷한 통찰에서 출현한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이라는 말은 감각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다루는 학문을 말합니다. 장재의 형이상학은 기라는 개념을 통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고 논의하도록 하지요.

 

 

태허란 형체가 없는 기의 본래 모습이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형체[客形]에 지나지 않는다. () 기가 태허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에서 얼고 풀리는 것과 같다. 태허가 곧 기라는 것을 안다면, 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몽』 「태화

太虛無形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 氣之聚散于太虛, 猶氷凝于水. 知太虛卽氣, 則無無.

태허무형기지본체, 기취기산, 변화기객형이. () 기지취산우태허, 유빙응우수. 지태허즉기, 즉무무.

 

 

장재는 인간을 포함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사물들을 객형(客形)이라고 부릅니다. ‘()’이라는 말이 손님을 뜻한다면, ‘()’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객형에 해당되는 존재는 당연히 주인이 아닌 손님이지요. 장재에게서 진정한 주인은 바로 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흩어지면 모두 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물과 얼음의 관계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양의 얼음들이 존재할 수 있지요. 네모난 얼음, 세모난 얼음, 아니면 둥근 얼음 등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있다 해도 그 본질은 모두 물입니다.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녹으면 결국 모두 물이 되어버리니까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러나 이렇듯 다양한 사물들을 장재는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파악했습니다. 사실 그것들은 기의 층위에서 보면 모두 똑같습니다. 나아가 어떤 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친구가 죽는다 해도 장재는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잠시 손님으로 왔다가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장재는 이 세상에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무란 단지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무라는 것은 기가 가장 순수하고, 활동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아닌가요? 일체의 다양한 객형들이 사라져버린 상태이니까요.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햇살에 녹아 모두 물로 되돌아간 것처럼 말이지요.

 

 

 

 

장재의 형이상학적 감수성이 낳은 신유학의 서막

 

 

장재는 기의 형이상학으로 이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장재의 시선에는 지금까지 갈등과 대립으로 일관되어 온 인간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한마디로 우스운 일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마치 둥근 얼음과 네모난 얼음이 서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둥근 얼음은 자신의 둥이 옳다고 주장하고, 네모난 얼음은 자신의 네모남이 옳다며 싸우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물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둥근 얼음이나 네모난 얼음 모두 물의 자식들이 아니던가요? 이런 관점에서 장재는 자신이 바라보았던 세계를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나의 어머니라 부르며, 나는 이처럼 미미한 존재로 아득하고 광대한 천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늘과 땅에 가득한 것으로 나의 몸을 삼으며, 천지를 통솔하는 것으로 나의 본성을 삼는다.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가족이며, 만물은 모두 나의 동료이다. 대군주(大君主)는 나의 부모의 받아들이고, 대신하(大臣下)는 맏아들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는 것이고, 외롭고 약한 이들을 자애롭게 보살피는 것은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게 대하는 것이다.

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大君者吾父母宗子, 其大臣宗子之家相也. 尊高年所以長其長, 慈孤弱所以幼吾幼,

건칭부, 곤칭모, 여자막언, 내혼연중처. 고천지지색, 오기체, 천지지수, 오기성, 민오동포, 물오여야. 대군자오부모종자, 기대신종자지가상야. 존고년소이장기장, 자고약소이유오유,

 

성인은 덕이 천지와 일치하며, 현인은 덕이 빼어난 사람이다. 천하에 피곤하고 고달프며, 병들고 불구인 사람 그리고 부모나 자식,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형제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몽』 「건칭

聖其合德, 賢其秀者也,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

성기합덕, 현기수자야, 범천하피륭잔질경독환과, 개오형제지전연이무고자야.

 

 

장재의 주요 저서 정몽가운데 건칭(乾稱)편에 실려 있는 이 구절은 장재가 자신의 서재 서쪽 벽에 써 붙여놓고 항상 음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글을 서명(西銘)이라고도 부릅니다. 서명을 보면 장재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긴 장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기가 모여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객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우주가족을 지향하는 장재의 정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천하에 피곤하고 고달프며, 병들고 불구인 사람 그리고 부모나 자식,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형제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맹자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이야기했습니다. 측은지심이란 우물에 막 빠지는 아이를 볼 때 마음에 일어나는 동정심이라고 말했지요. 맹자는 이것이 우리 내면의 본성에서 비롯된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맹자의 주장과 비교했을 때, 장재의 정신은 그 규모면에서 전혀 다른 정서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자들 모두가 나의 가족이라는 생각만큼, 장재의 유학 정신을 잘 표방해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의 주체라는 좁은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장재는 기()라는 형이상학적 지평에 서서, 이 세상 모든 인간을 가족으로 여겨야 한다는 윤리적 심성을 요구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장재의 형이상학적 감수성에서부터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은 마침내 장대한 서막을 열게 됩니다.

 

 

 

 

만물을 자신과 한몸처럼 보아야 한다

 

 

장재가 유학자들에게 던진 우주가족의 이념의 영향은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물론 정호와 정이 형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특히 형인 정호에게 장재의 철학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정호는 어떤 사람이라도 우주가족으로 생각하라는 장재의 명령을 유학의 핵심 이념인 인()이라는 개념으로 수렴시켰습니다.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명제로 유명한 그의 인 개념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지요.

 

 

의학 서적에서는 손과 발이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이라는 명칭의 모습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몸이라 여기므로, 어떤 것도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이라고 여기니 어디인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일 자신에게 있지 않다면 자연히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니, 마치 수족이 마비되어 기가 통하지 못하면 모두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널리 베풀어서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곧 성인의 역할이다. 하남정씨유서2 () : 7

醫書言手足痿痺爲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之功用.

의서언수족위비위불인, 차언최선명상. 인자이천지만물위일체, 막비기야. 인득위기, 하소부지? 약불유저기, 자불여기상간, 여수족불인, 기이불관, 개불속기. 고박시제중, 내성지공용.

 

 

히말라야에 오르는 등산가를 괴롭히는 엄청난 질병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동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증상이 심해지면 동상에 걸린 부위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동상에 걸린 부위는 점차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절단해야 할 상황에 이르지요. 동상에 심하게 걸려서 내 다리에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면, 과연 내 다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꼬집어도 때려도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면 말이지요. 겉보기에는 분명 내 다리이지만, 내 다리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정호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우주가족의 이념을 새롭게 사유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전통적인 동양 의학의 개념 하나를 빌려왔습니다. “손과 발이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手足痿痺爲不仁]”는 의학 서적의 글귀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 반대로 손과 발이 마비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볼까요? 마비되었을 때가 '불인한 상태이니까, 당연히 마비가 되지 않았거나 마비가 풀렸을 때는 ()’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결국 정호의 생각에 따르면, 어떤 것과 통하여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인의 상태입니다. , 이제 시야를 좀더 확대해보지요. 저기 어떤 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났다면 정호는 이런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위기에 빠진 아이가 내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측은지심이 일어났다고 말했겠지요.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지요. 어떤 사람이 실연하여 울고 있을 때 그의 슬픔을 함께 느꼈다고 한다면, 이 경우도 그 사람을 내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정호는 이것을 기가 통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깊이 장재의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호가 성인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호는 성인을 가장 완벽한 인자(仁者)라고 보았습니다. 인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몸처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호는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몸이라 여긴다[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태든 내 몸 안의 일처럼

 

 

정호는 장재의 우주가족 이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장재의 기론(氣論)과는 다른 형이상학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구태여 정호를 별도로 다룰 필요가 없었겠지요. 방금 살펴보았던 만물일체론외에 정호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이라는 명제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에는 정호만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관점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천지가 변함없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 모든 사물을 포괄하면서도 마음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변함없는 것은 성인의 감정이 만사에 순응하면서도 감정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무엇에 얽힘이 없이 크고 공정하며, 사태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그 사태에 따라 대응한다. 하남정씨문집2:1

夫天地之常, 以其心普萬物而無心. 聖人之常, 以其情順萬事而無情. 故君子之學, 莫若廓然而大公, 物來而順應.

부천지지상, 이기심보만물이무심. 성인지상, 이기정순만사이무정. 고군자지학, 막약곽연이대공, 물래이순응.

 

 

정호는 자신의 논의를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주의 차원이고, 두 번째는 성인의 차원이며, 세 번째는 군자의 차원입니다. 우주의 차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지요. 정호는 이 우주에도 하나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주는 만물을 낳으며 만물을 자라게 하고 마침내 거두어들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마음은 모든 사물에게 두루 베풀어서 마치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것은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서 우주가 사사로이 편애하는 사물이 따로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그가 어딘가에 마음을 따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와는 달리, 우주의 마음은 모든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우주의 마음을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주의 마음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처럼, 즉 마음을 남겨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성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지요. 성인은 모든 것을 자기 몸처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하나의 개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주가 순수한 마음의 형태라면, 성인은 보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육체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정호는 성인의 경우에는 감정()이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육체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나 기분의 표현이니까요. 우주가족을 꿈꿀 정도로 호방했지만, 이처럼 정호는 상당히 치밀한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우주가 만물에 개입하는 반면, 성인은 만물에는 직접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성인이 어떻게 우주의 마음처럼 꽃을 피우고, 온갖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인은 단지 만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즉 만사(萬事)에만 개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는 우주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공정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감정도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지요. 이 말은 성인에게는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할 뿐, 인간으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조차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군자에 대해 알아보지요. 군자는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그는 성인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지요. 군자는 마음을 크게 하여, 자신에게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부드럽게 대응해야만 합니다. 물론 마음을 성인이나 우주의 마음처럼 크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새롭게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 누군가가 새로운 사태에 자연스럽게 대응한다면, 이것은 그가 이미 성인이나 우주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출현하는 명제가 곧 물래이순응입니다. 그러나 이 명제 때문에 오해하지는 마세요.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 그것에 수동적으로 순응한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물래이순응은 어떤 사태가 전개되어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것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명제입니다. 마치 우물에 빠진 아이를 자기 몸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요.

 

 

 

 

24살 젊은 유학자의 답안에 태학 교수가 놀란 까닭

 

 

105624세의 나이로 정이는 형 정호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당시 북송의 수도인 개봉(開封)으로 가게 됩니다. 현재의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태학(太學)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지요. 때마침 태학을 주관하던 사람은 당시 매우 유명한 유학자인 호원(胡瑗)이었습니다. 어느 날 호원은 태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여러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냈습니다. 호원이 낸 문제는 공자의 제자 안연이 배우기를 좋아했던 것은 무슨 학문이었는가?” 였습니다. 물론 여러 학생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답안을 작성해 제출했겠지요. 답안지를 검토하던 중 호원은 깜짝 놀랍니다. 자신도 감히 쓰지 못할 정도의 정연한 문체로 쓴 놀라운 답안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그 답안을 쓴 이가 바로 정이입니다. 정이가 쓴 그 답안은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 그럼 24세의 젊은 유학자가 쓴 패기만만한 답안을 살짝 훔쳐보도록 할까요? 그가 제출한 답안의 첫머리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의 문하에는 제자가 3000여 명이 있었지만 안자만이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대개 시(), ()와 육예(六藝)3000명의 제자들이 모두 익혀서 통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면 안자가 홀로 좋아한 것은 어떤 학문인가? 성인에 이르는 도를 배우는 것이다. 성인의 경지는 배워서 과연 이를 수 있는가? 대답하기를, 그렇다. 하남정씨문집8: 1

聖人之門, 其徒三千, 獨稱顔子爲好學. 夫詩書六藝, 三千子非不習而通也. 然則顔子所獨好者, 何學也? 學以至聖人之道也. 聖人可學而至歟? 曰然.

성인지문, 기도삼천, 독칭안자위호학. 부시서육예, 삼천지비불습이통야. 연즉안자소독호자, 하학야? 학이지성인지도야. 성인가학이지여? 왈연.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따르면 공자 제자의 수가 3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과장된 숫자일 것입니다. 보통 학자들은 그의 제자가 70명 정도였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많은 제자들 중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는 바로 안연입니다. 그래서 안연은 공자나 맹자처럼 안자(顔子), 안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논어』 「옹야(雍也)편을 보면,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제자들 중 누가 가장 배우기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안회(顔回, 즉 안연의 이름)만이 유일하게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공자는 그런 안연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안연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제자가 자기 주변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니까요. 그렇다면 안연이 배우기를 좋아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호원이 학생들에게 던진 문제입니다.

 

정이의 대답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공자의 나머지 제자들은 구체적인 테크닉, 다시 말해 곧바로 통용될 수 있는 기술적인 것들을 배웠지만, 안연이 배운 것은 성인이 되는 방법이었다고 말입니다. 이어서 정이는 안연의 학문을 긍정하면서 결국 성인이라는 존재는 배워서 다다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정이가 이 답안에서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이가 이야기한 방법은 논어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만약 논어에 기록되어 있었다면,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라면 호원이 정이의 답안을 보고 놀랄 이유가 전혀 없었겠지요.

 

 

 

 

본성과 감정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다

 

 

, 그럼 정이가 제안한 성인이 되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천지가 정기를 쌓아 오행 중에 뛰어난 것을 얻어 사람이 된다. 사람의 근본은 진실하고 고요하다. 본성[]이 아직 감정[]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본성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도덕 원리가 갖추어져 있다. 몸체가 생긴 후에는 바깥 사물이 몸과 접촉하니 본성이 마음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 五性具焉, 曰仁義禮智信.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其中矣.

천지저정, 득오행지수자위인. 기본야진이정, 기미발야. 오성구언, 왈인의예지신. 형기생의, 외물촉기형이동기중의.

 

마음이 움직이면 칠정(七情)이 거기에서 나오니, 이것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라고 말한다. 감정이 지나치게 왕성하여 더욱 세차게 움직이면 본성이 손상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들은 그 감정을 조절하여 중용에 맞도록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본성을 함양한다.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怒哀樂愛惡欲.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기중동이칠정출언, 왈희노애락애오욕. 정기치이익탕, 기성착의.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감정을 본성으로 승화시킨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조절할지를 알지 못해 감정을 제멋대로 하여 사악하고 편벽한 데에 이른다. 본성을 속박하여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본성을 감정으로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무릇 배움의 방법이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본성을 함양하는 것일 따름이다. 하남정씨문집8: 1

是故覺者約其情, 使合於中, 正其心, 養其性. 愚者則不知制之, 縱其情而至於邪僻, 梏其性而亡之, 故曰情其性. 凡學之道, 正其心養其性而已.

시고각자약기정, 사합어중, 정기심, 양기성. 우자즉부지제지, 종기정이지어사벽, 곡기성이망지, 고왈정기성. 범학지도, 정기심양기성이이.

 

 

정이가 답안에서 말한 오행(五行)이란 나무[], [], [], [], []을 가리키며, 우주를 이루는 다섯 가지 기본 질료를 의미합니다. 정이는 인간이 만물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인간이 오행이라는 다섯 가지 기()를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을 받아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정이는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면서 본성과 감정이라는 구조를 도입합니다. 정이는 인간의 본성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다섯 가지 윤리적 덕목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외부 사물과 접촉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이 외부로 실현되어 나오는데, 그것을 감정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감정에는 일곱 가지, 칠정(七情)’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을 의미하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본성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파악한 정이의 관점입니다. 비유하자면 본성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수원지와 같고, 감정은 다양한 방향으로 퍼져 흐르는 지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원지에서 나오는 물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뽑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곧 수원지의 물이 마르게 되겠지요. 정이는 이런 논리로 본성과 감정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지나치게 작용하면 본성이 메말라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성인이 되는 배움의 방법은 감정의 지나친 작용을 막아 메마른 본성을 다시 윤택하도록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마치 지류를 막아 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면 수원지가 다시 맑고 깨끗한 물로 가득 찰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잠시 기억해야 할 것은, 본성과 감정에 대한 정이의 논의가 나중에 주희의 심통성정(心統性情)’의 도식으로 정리된다는 점입니다. ‘심통성정은 글자 그대로 마음이 본성과 감정의 두 영역을 포괄한다는 의미이지요.

 

여러분은 정이의 논의에서 그의 형 정호가 추구했던 만물일체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이라는 이념을 확인할 수 있었나요?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본성이 완전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은, 우주가족을 지향했던 장재나 정호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맹자성선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이의 형 정호는 외부의 사물을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정이는 자신의 감정이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감정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외부 사물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에서 볼 때, 정이의 이런 시각은 외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게 할 우려가 있지요. 이처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이지만, 정호와 정이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호가 외부의 사물로 적극적으로 나아간 반면, 정이는 내면의 본성으로 자꾸 시선을 돌렸으니 말입니다.

 

정호(程顥) 정이(程頤)
物來而順應 正其心養其性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김 본성에서 유래한 감정을 눌러 본성 회복
외부의 사물에 적극적으로 나아감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고 본성에 시선 돌림

 

 

 

 

신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앞에서 우리는 맹자고자의 논쟁을 살펴보았지요. 여러분은 이 논쟁만을 보고 맹자의 주된 사상적 경쟁자가 고자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실 맹자의 진정한 경쟁자는 묵자(墨子, BC 470?~BC 390?)라는 사상가입니다. 이 책에서 묵자를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왜 맹자는 묵자를 공격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묵자가 주장했던 겸애(兼愛)’라는 명제 때문이었습니다. 겸애란 모든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자는 논리입니다. 묵자』 「겸애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천하에서 높은 선비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친구의 몸 위하기를 자신의 몸처럼 하고, 자기 친구의 부모 위하기를 자기 부모처럼 해야 하는데, 그런 뒤에야 천하의 높은 선비가 될 수 있다.

爲高士於天下者, 必爲其友之身, 若爲其身, 爲其友之親, 若爲其親, 然後可以爲高士於天下.

위고사어천하자, 필위기우지신, 약위기신, 위기우지친, 약위기친, 연후가이위고사어천하.

 

 

이 말은 남의 부모도 나의 부모와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입장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폈습니다. “묵자가 주장하는 겸애는 자기 아버지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이지요. 맹자의 생각에 따르면, 자기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묵자는 나의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모까지 똑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합니다. 맹자는 이런 묵자의 주장이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고유한 관계를 파괴한다고 보았습니다.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똑같이 사랑한다면, 나만의 혈연적 부모라는 의미가 설 수 없겠지요. 여기서 잠시 장재의 우주가족이란 이념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가족이란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두 같은 가족이라고 보는 생각이었지요. 그렇다면 장재의 이런 생각은 묵자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맹자에 가까울까요? 장재의 생각은 유학자인 맹자보다는 유학을 비판한 묵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부모, 자기 형제라는 폐쇄된 생각에서는 결코 우주가족이라는 이념이 출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재는 병든 자, 삶이 고달픈 자, 외로운 자들을 모두 내 가족으로 품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장재가 정의 내린 성인이란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제로 수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장재의 정신은 정호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정호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내 몸처럼 느껴야 인자가 될 수 있다는 만물일체의 주장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일어나는 모든 사태에 자연스럽게 대응해야 한다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을 주장하지요. 이 발상 역시 정호가 우주가족의 정신을 계승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해서 장재와 정호가 제안한 우주가족이라는 이념은 새로운 유학이 탄생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유학,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은 일체의 폐쇄주의와 고립주의를 넘어서 세상 모든 것에 통용되는 개방주의와 보편주의를 추구한 유학자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여기서 잠깐 정호와 정이 형제가 보여준 사상적 경향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호는 모든 사물을 자기 몸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유학자였습니다. 이는 그가 외부로 열려 있는 호방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지요. 반면 정이는 지나친 감정의 작용이 자신의 뿌리인 본성을 메마르게 할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이처럼 정이는 형과는 달리 인간 내면의 본성을 주시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유학자였습니다. 두 형제의 사상적 분위기의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정호ㆍ정이 형제의 경향이 그들 이후 신유학의 두 가지 경향을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정호의 경향은 왕수인(王守仁)양명학(陽明學)으로 이어졌고, 정이의 경향은 주희(朱熹)의 주자학(朱子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흥미롭지 않은가요? 신유학이 태동하던 무렵, 함께 활동했던 형제의 사유가 나중에 서로 다른 두 가지 학문으로 계승되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 그럼 정이의 사상을 계승한 주희의 유학사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할까요?

 

墨子 張載 程顥 王守仁
孟子     程頤 朱熹

 

 

 

 

더 읽을 것들

 

 

1. 근사록(주희, 이범학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근사록은 주희가 친구 여조겸과 함께 장재, 정호, 정이 등 선배 신유학자들의 저술들을 주제별로 편집한 책입니다. 시중에는 근사록에 대한 많은 번역서가 나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반인들이 참고하기 좋은 번역서는 이범학이 옮긴 이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고증적인 해설은 가급적 피하고, 철학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인 해설을 붙여서 오늘날 독자들의 감각에 맞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이지요.

 

 

 

2. 송명성리학(천라이, 안재호 옮김, 예문서원, 1997)

천라이의 책은 대표적인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간결하고 평이하게 소개한 연구서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동안 별로 소개되지 않았던 정호와 정이의 유학 사상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중국의 신유학자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퇴계 이황 같은 유학자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라이는 중국 신유학, 특히 주희의 유학 사상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북송도학사(쓰치다 겐지로, 성현창 옮김, 예문서원, 2006)

쓰치다 겐지로의 북송도학사는 주희 이전 선배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연구한 책입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주희의 시선에서 벗어나 북송시대의 유학 사상사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희의 선배 유학자들이 당시에 유행했던 정치철학, 나아가 선불교 및 노장사상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사유를 완성했는지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용

지도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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