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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조선시대 한시읽기 - 머리말 본문

책/한시(漢詩)

조선시대 한시읽기 - 머리말

건방진방랑자 2019. 10. 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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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시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조선시대의 한시사(漢詩史)에 대해 김만중(金萬重)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조의 시체(詩體)는 네다섯 번 변했을 뿐만 아니다. 국초에는 고려의 남은 기풍을 이어 오로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성종, 중종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이행(李荇)이 대성하였다. 중간에 황산곡(黃山谷)의 시를 참작하여 시를 지었으니, 나의 재능은 실로 삼백 년 시사(詩史)에서 최고이다. 또 변하여 황산곡과 진사도(陳師道)를 오로지 배웠는데, 정사룡(鄭士龍)ㆍ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이 솥발처럼 우뚝 일어났다. 또 변하여 당풍(唐風)의 바름으로 돌아갔으니,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이 순정한 이들이다

本朝詩體, 不啻四五變. 國初承勝國之緖, 純學東坡, 以迄於宣靖, 惟容齋稱大成焉. 中間參以豫章, 則翠軒之才, 實三百年之一人. 又變而專攻黃, 則湖, 鼎足雄峙. 又變而反正於唐, 則崔, 其粹然者也.

 

 

송풍(宋風)에서 당풍(唐風)으로의 변천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어서 허균성수시화(惺叟詩話)3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의 시()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이 시작을 열어 박상(朴祥)ㆍ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ㆍ충암(冲庵) 김정(金淨)ㆍ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란히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조선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노수신(盧守愼)은 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은 당()을 본받았는데 이달(李達)이 그 흐름을 밝혔다. 우리 망형(亡兄)의 가행(歌行)은 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韠)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李荇)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니, ! 장하다.

我朝詩, 至中廟朝大成, 以容齋相倡始. 而朴訥齋祥申企齋光漢金冲庵淨鄭湖陰士龍, 竝生一世. 炳烺鏗鏘, 足稱千古也. 我朝詩, 至宣廟朝大備. 盧蘇齋得杜法, 而黃芝川代興, 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吾亡兄歌行似太白, 姊氏詩恰入盛唐. 其後權汝章晩出, 力追前賢, 可與容齋相肩隨之, 猗歟盛哉!

 

 

목릉성세(穆陵盛世)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덕무(李德懋)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조(宣祖) 이하에 나온 문장은 볼 만한 것이 많다.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고, 시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제일로 친다는 것이 확고한 논평이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대가(大家)를 이루었으니, 이는 어느 체제이든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화려하여 명가(名家)를 이룬 이는 유하(柳下) 최혜길(崔惠吉)이고 당()을 모방하는 데 고질화된 이는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며,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은 염락(濂洛)의 풍미를 띤 데다 색향(色香)에 신화(神化)를 이룬 분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는 정밀한 데다 식견이 있고 전아(典雅)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宣廟朝以下文章, 多可觀也. 詩文幷均者, 其農岩乎. 詩推挹翠軒爲第一, 是不易之論. 然至淵翁而後, 成大家藪, 葢無軆不有也. 纖麗而成名家者, 其柳下乎. 痼疾於模唐者, 其蓀谷乎. 蘭雪, 全用古人語者多, 是可恨也. 龜峯, 帶濂洛而神化於色香者. 澤堂之詩, 精緻有識且典雅, 不可多得也.

 

 

그 이후의 한시사(漢詩史)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명()의 문학사조를 받아들여 학당(學唐)에 기울었다가 실학(實學)이 대두한 영조(英祖) 이후 청()의 사조를 받아들여 시풍이 크게 변한다. 이어서 이용휴(李用休)ㆍ이가환(李家煥) 부자(父子)이덕무(李德懋)를 비롯한 후사가(後四家)에 의해 기궤(奇詭)하고 청신(淸新)한 시풍(詩風, 神韻說)이 등장한다. 정조(正祖)에 이르러 두보(杜甫)의 영향을 많이 수용하고 그 위에 도학사상(道學思想)을 잘 반영한 육유(陸游)를 계제(階梯)로 삼은 유육입사(由陸入杜)’가 학시(學詩)의 정도(正道)라 믿었다. 신위(申緯)는 후사가의 뒤를 이어 그들의 장점을 계승하는 한편 청()의 시학사조(詩學思潮)도 직수입하여 유소입두(由蘇入杜)’를 시학(詩學)의 정도(正道)라 믿었다. 또한 정약용(丁若鏞)은 우리나라가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자부하고 중국시(中國詩)를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조선시(朝鮮詩)를 지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한시사(漢詩史)에 주목받는 인물들을 바탕으로 상권에서는 성석린(成石璘)에서 조선중기 이이(李珥)까지 51()의 시() 200여 수(), 하권에서는 정철(鄭澈)에서 김택영(金澤榮)까지 45()의 시() 200여 수()를 모아서 주석(註釋)을 달고 국역(國譯)과 간략한 감상(鑑賞)을 적은 것이다. 감상(鑑賞)은 선행 연구 결과들을 많이 참조하였으며, 책의 구성상 참조한 연구 결과들을 하나하나 밝혀두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이 외에도 많은 훌륭한 시인(詩人)들의 작품들이 있으나, 다 싣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권 하권
성석린(成石璘)에서 조선중기 이이(李珥)까지 조선중기 정철(鄭澈)에서 김택영(金澤榮)까지
51()의 시() 200여 수() 45()의 시() 200여 수()

 

 

모쪼록 이 책이 조선시대 한시(漢詩)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임용고사(任用考査)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20108월 기슭에서

元周用 謹書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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