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豊饒)와 화미(華美)
조선 초기의 안정에 힘입어 풍요로운 목릉성세(穆陵盛世)를 이룩한 선조인조년간(宣祖仁祖年間)은 시단에 있어서도 또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성시를 이룬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에서도 풍격(風格)과 기상이 가장 뛰어난 노수신(盧守愼)은 선조(宣祖)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노두(老杜)의 격력(格力)을 깊이 얻은 학두자(學杜者)로 알려져 있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 가장 후배인 황정욱(黃廷彧)은 많은 시를 쓰기보다 힘들여 시를 썼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시작(詩作)이 적은 편이다. 노수신(盧守愼)도 그의 시작(詩作)에서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기상기구(奇想奇句)를 시험한 부분들이 보이지만, 특히 황정욱(黃廷彧)은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를 배워 그의 시세계는 호음(湖陰)과 가깝기도 하다. 한편 정렴(鄭磏)ㆍ정작(鄭碏) 형제와 박지화(朴枝華) 등 도선가(道仙家)의 시작(詩作)도 목릉(穆陵)의 풍요(豊饒)를 이룩하는 데 일조(一助)를 했다.
한편 조선의 시단이 본격적으로 당을 배우고 익혀 당풍(唐風)이 크게 일어난 것도 이때이다. 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박순(朴淳)이며, 세칭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는 이달(李達)ㆍ백광훈(白光勳)ㆍ최경창(崔慶昌) 등이 모두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을 배워 고경명(高敬命)ㆍ임제(林悌) 등과 더불어 호남시단을 함께 빛나게 하였다. 권필(權韠)과 최립(崔岦)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지만, 특히 권필(權韠)의 시와 최립(崔岦)의 문장을 쌍벽으로 일컫는 것은 최립(崔岦)의 문명(文名)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시업(詩業)으로 일가를 이룬 시인으로는 허봉(許篈)ㆍ이호민(李好閔)ㆍ차천로(車天輅)ㆍ유몽인(柳夢寅)ㆍ이안눌(李安訥)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호민(李好閔)의 「용만(龍灣)」시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는 가장 빼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이안눌(李安訥)의 동악시단(東岳詩壇)은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유전되고 있다.
천류(賤類) 가운데서도 유희경(劉希慶)ㆍ백대붕(白大鵬) 등이 시로써 이름을 얻었으며 황진이(黃眞伊)ㆍ이매창(李梅窓)ㆍ이옥봉(李玉峰)ㆍ허난설헌(許蘭雪軒)은 여류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육가잡영(六家雜詠)』에 시편(詩篇)을 싣고 있는 최기남(崔奇男)ㆍ김효일(金孝一)ㆍ최대립(崔大立) 등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위항시(委巷詩)의 선성(先聲)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집단적으로 그들의 온축을 스스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위항문학이 이에 이르러 그 기반이 구축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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