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우리 한문학 유산의 국문학에로의 계승 문제는, 그동안의 거듭된 논란 끝에, 이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거의 긍정쪽으로 정착이 되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무나 호한(浩汗)하고도 난삽(難澁)함으로 해서, 아직도 많은 국문학도들로부터 은근히 경원(敬遠) 내지 소외되어 오고 있음이 오늘의 실상이다.
유일무이한 표기수단이었던 한자
우리는 그 옛날 우리 선인들의, 그 다정다감한 가슴속에 무시로 피어오르던 문학적 정서와, 무엇에 의해서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강한 욕구와 충동으로 애타하던 정황을 상상해 본다.
당시 만일 우리 주변에 보다 편리한 표기 수단이 달리 있기라도 했었더라면, 사정은 사뭇 달라졌으리라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한자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수단이었던 만큼, 이러한 때 이에 의지하게 됨은 필연적인 귀결일 뿐, 달리 무슨 길이 있었으랴 싶다.
이리하여 우리 선인들은 본의 아니게, 또는 하는 수 없이, 우리의 사상 감정을 한자에다 담을 수밖에 없었으니, 훈민정음 제정 이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후로도, 그것이 보편화 일반화되기까지는, 오랜 관행과 사회통념으로 하여 전래의 수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민족 어운으로 귀화한 한자
여기서 우리는 잠시, 우리 한문학 유산이 소외당하게 되는 근본 이유인 한자의 국적에 대하여, 새삼스럽기는 하나,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자가 원래 중국 태생이기는 하나, 그것이 널리 동양 각국으로 전해지면서는, 가는 곳마다 동화되어 민족 어운(語韻)으로 귀화(歸化)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그 자음(字音)만 하더라도, 그 본고장과는 아주 딴판으로, 우리가 다르고, 일본이 다르고, 동남아 각국이 서로 각각 다르게 되었음과 같다. 물론 당초에야 같으려 했겠지만, 민족이 다르고 어운이 다른 만큼, 제각기 자가의 바탕으로 소화되고, 동화되는 필연적인 경로로 숙성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자는 범동양적(汎東洋的) 공통 문자인 동시에 귀화한 민족 문자로 위상(位相)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로마자가 그 태생 민족에 아랑곳없이, 두루 서구 각국의 문자로 공용되고 있으되, 그 음운은 저마다 각자의 민족 어운에 동화되어 있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로마자가 저마다 귀화한 그 민족의 구어(口語)를 담당하여 타민족과의 교류를 단절하는, 독자적, 비보편적인데 반하여, 귀화 한자는 청각적으로 개별적이면서 시각적으로 공통적인 점과, 구어가 아닌 문어(文語)로 나타남이 저네들과 서로 다를 뿐이다.
우리의 한시문도 거기 내포되어 있는 성어(成語)로서의 한자 어휘를 제외하고는,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나타나 있다. 물론 이 또한 엄연한 우리말의 한 체(體)임에는 틀림없으나, 매우 불편함은 사실이다. 이에 선인들은, 이 불편을 극복하기 위하여 요소마다 토를 달아[懸吐] 문어를 구어화했던 것이니, 선인들의 이같은 지혜와 그 고충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처럼 동서양이 제각기 일장일단의 우열이 있기는 하나, 다 같이 이문자(異文字)를 순치(馴致)하고 복속(服屬)하여, 각자의 혼을 불어넣어, 저마다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음은, 극히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하마터면 공백(空白)일 뻔한 우리의 고문학사(古文學史)에 끼쳐 준, 찬란히 빛나는 막대한 문학 유산은, 그 귀중함이 각별하고, 또한 그 귀중한 유산을 온전히 간직하다가, 그 전승을 끝내는 대로, 조용히 명예로운 퇴역을 기다리고 있는, 한자의 소임과 그 공로는 극구 찬양되어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한시는 선인들의 아름다운 정서의 꽃일 뿐만 아니라, 그 음률(音律) 또한 점차 우리 가락으로 숙성되어 왔으니, 이는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민족의 정혼이 배어들고 스며들면서 자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후에 이를 공언(公言)한 이들은 실학파 학자들로서, 성호(星湖), 연암(燕巖), 초정(楚亭) 같은 분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다산(茶山)은 「노일일쾌사(老人一快事)」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 나야 조선 사람이기에 달게 조선 시를 짓노라. |
한시를 한시로 짓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로서 짓는다고 당당히 외쳤던 것이다.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은 『동문선(東文選)』 서문에서 설파했다.
우리 나라의 글은 송나라 원나라의 글이 아니며, 또한 한나라 당나라의 글도 아닌, 바로 우리 나라의 글일 뿐이다. 마땅히 역대의 글과 함께 천지간에 아울러 행해질 것이니, 어찌 민멸(泯滅)하여 전하지 않게 될 수 있으랴?
我東方之文, 非漢ㆍ唐之文, 亦非宋ㆍ元之文, 而乃我國之文也. 宜與歷代之文, 幷行於天地間, 胡可泯焉而無傳也哉.
이 얼마나 깊이 긍경(肯綮, 사물의 요긴한 부분)을 맞힌, 지언(至言)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가락인 한시의 운율적 특성
이제 우리 가락으로 조율된 귀화 한시의 운율적 특성을 일별(一瞥)하면:
자음(字音)에 있어, 저들과 우리의 차는 황해(黃海)의 폭만큼이나 먼 아주 딴 음임은 물론, 그 자음을 지시 규제(指示規制)하여 고저 장단(高低長短)케 하는 제2의 음소(音素)인 운소(韻素) 또한 우리 가락으로 조율되어, 우리의 독특한 율조미(律調美)로 나타나 있다.
곧, 같은 평성(平聲) 또는 측성(仄聲)일지라도 거기에 우리말의 음운적 배려에 의한 자음(字音)의 선택 — 이를테면, 유성 자음(有聲子音)의 유성화(有聲化) 파장(波長)이나, 비음(鼻音)의 공동적(空洞的) 확산(擴散), 경ㆍ격음(硬激音)의 긴장과 충격, 개방음(開放音)ㆍ폐쇄음(閉鎖音)의 창서(暢叙)와 수렴(收斂) 등, 자음의 선택 안배에 따른 음성 영상(音聲映像)이나 청각 인상(聽覺印象)을 고려, 그것이 우리 민족의 미의식(美意識)에 충족되도록 세심한 배려로 선택되어 있음이다.
옛날 서당 교육에서의 여름 한 철은 시를 익히는 계절이었으니, 그 독송(讀誦)의 가락은, 평측보(平仄譜)에 따른 기본적 음률에, 우리 음운의 멋과 흥이 가세하게 된 데다가, 4ㆍ3[七言] 또는 2ㆍ3[五言]으로 마디를 지어, 거기 1ㆍ2언(言)의 ‘토(吐)’를 첨가하였으니, 이를테면:
‘江頭誰唱美人曲고? 正是孤舟月落時라. -이안눌, 「龍山月夜」’ 또는,
‘雪月은 前朝色이요, 寒鐘은 故國聲이라. -권겹, 「松都懷古」’ 또는,
‘孤舟自向迢迢去ㄴ데, 送我何人이 更倚樓아? -이만용, 「 大同江舟中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토(懸吐)는 문어를 구어화하는 구실로도 중요하지만, 정형(定型)을 엇가락화(化)하는 그 음악적 율동적 너울너울한 멋거리는, 자음(字音)만으로 붙여 읽을 때의 단조로움과는 딴판으로, 그때 그때의 감흥에 따라 멋대로 멋을 부릴 수 있는, 말하자면 자유 분방한 가변 율조(可變律調)인 것이다. 이를테면 :
‘江頭에 誰唱美人曲하느뇨? 正是孤舟에 月落時로다.’ 또는,
‘雪月은 前朝色인데 寒鍾도 故國聲이로구나.’ 또는,
‘孤舟는 自向迢迢去하는데, 送我何人이야 更倚樓했는고?’
와 같이 얼마든지 맛을 달리할 수 있는, 순수한 우리의 멋가락인 것이다.
한시는 그 한편 한편의 시 속에 그 자체의 악보가 내재하고 있으니, 그 고저 장단의 지표인 평(平仄)은 한시의 율동적 기본으로, 음악에 국경이 없듯, 저네들의 가락이자 우리의 가락인 것이다. 그러나 그 매자(每字)의 속성인 평측은 따로이 익히자 해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독송 ― 특히 시 같은 운문의 독송(讀誦) 있어 ― 자음(字音)을 각각 소정의 운가(韻價)대로 발음함으로써만 시로서의 감흥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평측 또한 자연스럽게 체득되어져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낮고 높고 짧고 길게 춤추듯 기복(起伏)하는 시의 운율은 그 독송에 있어, 고금이 따로 없고, 경향이 따로 없이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여출일구(如出一口)로, 그 시에 내재하는 평측보(平仄譜)에 따른 가락대로 한결같았다.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매자의 평측이 스스로의 발음에서 저절로 구별되기 때문에, 자유로이 정서를 펼 수 있었으며, 그것이 필경 우리말의 70퍼센트를 상회하는 한자어의 고저 장단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한시가 우리 가락이 아니란 비판
그렇건만, 꽤 명성이 있다는 어떤 학자는 ‘우리 한시의 음률은 중국 사람들이 중국의 사성(四聲)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는 다만 기계적으로 따를 뿐이다’라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우리 나라 한시의 기본적 성격은 음악적이기보다는 개념적이다’라고, 어엿이 모두 문자화해 놓고 있다.
추측건대, 이런 분들이야말로 글을 읽되 이른바 ‘장작글(고저장단을 구별하지 못하는 채 마구잡이로 읽는 독서)’을 읽은 탓으로, 평측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마는, 그런데도 함부로 실상을 왜곡함은 차마 민망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분들이 있어, 선인들의 유작을 이국적시(異國籍視)하거나 서얼시(庶孼視)하는가 하면, 그 문학이 별것 아닌 양, 조업(祖業)을 폄하(貶下) 단절(斷絶)하려함은, 실로 모만(侮慢)의 심함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위기일발에서 광복한 우리말에의 감격. 감상에만 사로잡혀 있기에는 이미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는 오늘날이거늘, 여태도 순수 국문학의 가뜩이나 요요(寥寥)한 경역(境域)안에 자폐(自閉)하여, 한정된 전적의 천착만으로 능사를 다하고 있는 양함은, 이야말로 국수주의 와실(蝸室)에 칩거(蟄居) 안주(安住)하고자 하는 협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는 일부 고루한 국수주의 문학의 고집이겠지마는, 그러나, 그 국수주의 문학에서마저도, 한문학 유산이 기실 그의 근본이요 모태이었던 만큼, 이의 단절을 시도하면 할수록 이율배반적으로 양심적 내출혈의 속앓이를 수반하게 됨은 또한 어쩔 수 없는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오늘날 오히려 우리 국문학도들의 과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광활한 원림을 개척하여 국문학의 경역으로 편입 확충하는 일 ― 곧, 선인들이 남겨 준 이 찬란한 문화의 꽃을 국어 국자에로 환원하는 일에 정성이 모아져야 할 일이다.
전승되어 오는 각종 선집(選集)은 물론, 여러 문헌, 각가의 문집 등에서 진품을 발굴 선별하는 일차적 작업에 이어, 이를 우리 그릇에로 환원 정착시키는 한편, 그 가치의 소재를 확인 천명하는 이차적 작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본고(本稿)는 그 1 · 2차적 작업의 한 초단계적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한시의 감상태도
무릇 모든 시가 다 압축적 표현 아님이 없지마는, 그러나 한시에서만큼 압축성이 강한 시는 달리 그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는 한자 자체가 근본 표의문자인지라, 그 한 자 한 자가 다 알찬 의미의 덩어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자는 거의 다 일자다의(一字多義)라, 그 자리에 특채(特採)된 자의(字意)외의 여타(餘他) 자의들도, 대개는 그 주변에서 은연중 분위기나 뉘앙스로 작용하는가 하면, 또한 한자의 그러한 속성으로 해서 자간(字間) 행간(行間)에 은근히 부치는 암유(暗喩), 상징(象徵), 풍자(諷刺), 기탁(寄託), 우의(寓意) 등, 언외(言外)의 함축(含蓄)을 가능케 하여, 필경 한시란 불과 수십자의 사각(四角) 축조물(築造物) 속에 실로 엄청난 시 세계를 압축 수용해 놓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를 깊이 있게 감상하려면, 비록 소품의 즉흥(卽興)·즉사(卽事)일지라도, 우선 그 의경(意境)의 역내(域內)로 깊숙이 진입하지 않고는 그 진경(眞境)에 이르지 못하게 되며, 따라 그 시혼(詩魂)에 접신(接神)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하물며 인생의 깊은 무게가 실려 있는 작품에 있어서 임에랴?
우리가 시를 대할 때 우선 더위잡을 일차적 근거는 물론 시어(詩語)에 의한 개념에서 실마리가 잡힐 것이나, 진정한 공감대(共感帶)는 오히려 저 언외의 함축에서 교감(交感)되는 것으로, 그것은 마치 자장(磁場)에 자화(磁化)되듯, 심금(心琴)에 와 부딪히는 전심령적(全心靈的) 공명(共鳴)에 의해서만, 몽롱에서 방불로, 방불에서 윤곽이 잡히고, 이목이 드러나고, 마침내 그 심혼의 실체와 만나게 됨으로써, 팽창토록 압축되어 있는 미분화(未分化) 상태의 언외(言外)에서 긴긴 사연이 가닥잡혀 풀려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한시의 국역
번역도 창작이란 말은 시에 있어 더욱 절실하고, 역시(譯詩)도 시이어야 하기에, 그 치르는 산고(産苦)는 창작시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시가 자연과 인생의 질서요, 조화의 한 유기체일진대, 이러한 시로서의 생명은 역시에서도 손상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점화(點化)된 작자의 시심(詩心)이 역자의 가슴에로 재점화(再點化)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사무적 축자해(逐字解)는, 비시(非詩)에로 전락되게 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부분적인 뜻에 집착하다 보면 시정신이 실종되기 쉽고, 미사여구로 옮겨 줄바꿈해 놓았지만, 운율은 이미 죽어 있는, 역시에서 흔히 보는 그런 비시비문(非詩非文)의 기형(畸型)은, 이미 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암유, 상징, 풍자, 기탁 등의 함축이나, 끝나고도 끝이 없는 긴긴 여운(餘韻) 등, 그윽히 음미(吟味) 상탄(賞嘆)하며 스스로 향수(享受)해야 할 독자의 몫을, 앞질러 노정(露呈)함으로써, 시로서의 감동이나 유수미(幽邃味)를 희석(稀釋)하거나 감쇄(減殺)하게 되어서도 아니될 일이다.
그러므로, 원시의 뜻이 부분적으로는 크게 무시되는 한이 있더라도, 총체적으로는 행간에 수용되면서 시로서의 생명은 살아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극복해야 할 제약은 오히려 창작시에서보다 더하다 할 것이다.
본연의 자태로 되돌아가는 시작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동물인지라, 항시 동물적 본능의 사주(使嗾)를 받게 되나, 그러나 또한 인간인지라, 이를 제어 극복하려는 데에 고뇌와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그래서 흔히 ‘마음을 비운다’고들 한다. 이 말은 그러한 일체의 고뇌ㆍ갈등 따위 잡념을 끊어, 차라리 무념 무상(無念無想) 무아무심(無我無心)의 허심(虛心)한 경지에 처하고자 하는, 꽤나 운치로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에 담긴 물건을 비우듯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우고 나면 또 딴 것이 담기고, 쏟아 버리고 나면 또 무엇인가 채워진다. 그러므로, 잡념이란 무지막지하게 내몰려고만 해도 소용 없다. 오히려 실험실에서 플라스크 안의 물질을 딴 물질로 치환(置換)하듯, 잡념을 시심(詩心)으로 바꿔먹는 일이야말로 매우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故林歸未得 排悶強裁詩 | 옛 산천 그리면서 못 돌아가니 시름 밀어내자 억지로 시를 짓네. 「江亭」 |
라고 읊은, 두보(杜甫)의 배민 재시(排悶裁詩)도 일종의 치환법일시 분명하다.
시를 생각하는 시간은 순수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명리(名利)를 떠나 고뇌를 떠나, 신분이나 빈부에 얽매임 없이, 긴장과 경계에서 놓인, 자유로운 성정(性情)의 본연의 자태에로 되돌아간, 무사(無邪)한 시간이며, 진선미(眞善美)한 시간이다.
인생을 올바르게 사람으로 사는 공부는 시를 짓거나 시에 접하는 일보다 더함이 없으니, 그것은 그때마다 은미한 깊은 곳에 내재하고 있는 참 자신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시작 공과(詩作工課)는 인생을 깊이 있게 성찰(省察)하는 길이며, 오염(汚染)을 씻어내는 자가정화(自家淨化)의 길이며, 부단히 자신을 고양(高揚)하는 수련의 길이며, 새로운 세계에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기에, 예로부터 권학(勸學)ㆍ거인(擧人)의 요목(要目)이 되어 왔던 것으로, 필경 이것이 생활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라 따로 없고, 정치인, 관료, 야인, 천민, 기녀에 이르기까지, 무릇 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에 참여하여, 저마다의 정서를 펼쳐왔던 것이다.
선정(善政)을 베푼 현관(顯官)들은 현직에 있으면서도 짬짬이 시작(詩作)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시인으로 자처하지도 표방하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심성의 소재(所在)를 확인ㆍ관리하는 자세로, 부단히 시심을 가꾸어 왔던 것이다. 이는 권좌(權座)에 있을수록 달라붙기 쉬운 탐진치(貪瞋癡)한 사심(邪心)을 뿌리치는 길이며, 가식(假飾)과 위선(僞善)에서 놓여나는 길이며, 무디어지려는 양심을 회복하는 길인 자정 작업(自淨作業)이기도 했다. 이는 또 잠들어 가는 동심(童心)을 일깨우는 길이며, 메말라 가는 감정을 보습(補濕)하는 길이었으니, 한 마디로 상실(喪失)해 가는 인간성에의 초혼(招魂)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시의 양태
그렇다고 시작을 한갓 심성 수양이나 사회 교화의 수단으로만 보는 견해는 옳지 않으니, 그것은 다만 시의 공리성(功利性)만을 내세움으로써, 정작 시의 본질을 저버리는, 한 편견에 빠질 위험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시의 본질이란, 우주의 생명적 진실이 정서적 감동을 통하여, 언어의 율동적 표현으로 조형(造形)된 제2의 자연이며 인생인 것이다. 그것은 감성(感性)의 태반(胎盤)에 착상(着床)하여 전인격체(全人格體)로 출산된 한 유기적 생명체인 것이다.
거긴 가슴 벅찬 꿈이 있고, 설레는 낭만이 있다. 아름다운 사랑과 도타운 인정이 있으며, 안개비같이 젖어 드는 시름과, 잠들지 못하는 원한, 혹은 만만치 않은 저항도 있다. 어느 경우나 다 감동을 통해서 수태(受胎)ㆍ출산(出産)된 귀한 생명체인 것이다.
각화(角化)한 감성에는 감동도 감탄도 일어나지 못한다. 찡 울어나는 눈물의 관개(灌漑) 없는, 시심(詩心)의 불모지대(不毛地帶)에서 인간 심정의 윤택(潤澤)을 바랄 수는 없다. 자잘한 일상에서도 매양 느꺼워할 줄 아는 마음은 아름답다.
시심의 모태(母胎)인 감동ㆍ감탄은, 그에서 출산된 시의 감상 과정에서도 재현된다. 그것은 어떤 경우, 직접 체험인 시인의 그것보다, 간접 체험인 감상 과정에서 더 오붓하고도 정갈스러운 고농도(高濃度)의 감동ㆍ감탄을 얻는 수가 많으니, 그것은, 그 시인의 각고(刻苦)한 예술적 시공(施工)의 효과가, 그 시상에 성공적으로 작용했음에 힘입은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시에는 침사고음(沈思苦吟)에서 우러나온 생의 절규(絶叫)가 있는가 하면, 그때그때의 즉흥을 가볍게 처리한 풍월류(風月類)도 있다. 문우(文友)의 해후(邂逅)로 술잔이 오가는 자리는 으레 시를 수작(酬酌)하는 자리이기도 하니, 만나는 자리마다 술이 있고 시가 있는 것은 한시만의 멋이요, 풍정(風情)이다. 그런가 하면 만나지 못하는 그리운 사이의 터회(攄懷)에는 차운증답(次韻贈答) 형식의 시가 있고, 시공(時空)을 달리한 고금인(古今人)의 대수(對酬)로는 화운(和韻) 형식의 시가 있으니, 이러한 선인들의 폭넓은 시세계와, 유연(悠然) 생활 풍도(風度)는, 열에 뜨인 듯 악착스럽게 오늘을 살고 있는 한 삭막 현대인에 있어서, 잠시나마 땀을 들이며 목을 축임직한 마음의 샘터이기도 하다.
그리운 옛 사람의 정을 따라
정(情)은 인간이기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堡壘)이다. 물질 만능 시대의 산업 사회에서 겪고 있는 심각한 환경 오염만큼이나 오염되어 가고 있는 인간의 감정! 눈물이 말라 버린 석심철장(石心鐵腸)으로 비인간화(非人間化)되어 가는 가공(可恐)할 오늘날의 추세에서, 새삼 절감되는 것은 정이다. 그것은 감물지정(感物之情)이며, 애련지정(哀憐之情)이며, 염치(廉恥)ㆍ의리(義理) 등의 자유지정(自有之情)이다. 그것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영혼의 체온이며, 사랑과 자비를 양조(釀造)하는 효소원(酵素原)인 것이다.
오늘날 초미(焦眉)의 과제인 인간 회복도 이 정(情)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는, 이 부도덕한 시대의, 이 심각한 정신적 공해 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누원(漏源)은 고갈되고, 심령은 냉각(冷却) 경화(硬化)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로 자기 진단과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때이다. 또한 우리는 이에서 구원되기 위하여는, 대성자(大聖者)의 참 가르침에 눈떠야 하고 위대한 철학자의 권고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성자나 철학자의 대중을 향해 부르짖는 엄숙한 교훈의 목소리는, 청자(聽者)의 이성(理性)에 의해서야 수용되고, 그 의지에 의해서야 실천되지만, 시인의 그것은, 직접적으로 독자의 감정에 공명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가 되게 마련인 것이다.
보라. 진실한 삶의 느꺼움을 혼잣말로 나직이 노래한 시인의 부드럽고도 정겨운 서정의 목소리는, 대지(大地)의 실핏줄에 봄비가 스며들 듯, 은은한 달그림자에 꽃향기가 번져 가듯, 경화된 심장(心陽)에 혈맥이 돌아, 까맣게 잊고 있던 영혼의 본향(本鄕), 정(情)의 옛 뜰에, 거기 어느덧 옛 모습으로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고인의 서정의 목소리는, 기실 자신의 것이면서 우리 모두의 것,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우리 전체의 목소리임을 깨닫게 해준다.
시심의 은막(銀幕)에 노을처럼 어리비치는 인간 관계의 갖가지 영상들! 그 곱고 아름다운 마음과 마음들의, 그리움 같은 슬픔 같은 것을, 봄구름같이 아지랭이같이 가슴 가슴에 피우다가 간, 고인들의 그 티없는 정이, 그 분네들의 유작(遺作)을 통해 오늘의 우리 가슴에도 이리 아른아른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운 정으로 고운 일생을 살고 간 ― 진정 사람으로 살고 간, 그 옛 사람들의 정이 어찌 그립지 아니한가?
복고적 감상이냐 상실된 기억의 떠올림이냐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것은 한갓 무기력한 복고적 감상(感傷)이라고……
극도의 물질주의로 싸느라이 식어 있는 사람들, 또는 이념(理念)을 위하여는 스스로 야차(夜叉, 梵語로 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귀신)이기를 자담(自擔)하는 열에 뜨인 사람들, 또는 감성(感性)을 매도(罵倒)하는 지성(知性) 일변도(一邊倒)의 사람들의 이러한 논리는, 가뜩이나 오염된 심전(心田)을 더욱 황폐하게 하는 주인(主因)이 아닐 수 없다.
이에서 구출하는 방도는, 오직 경화되기 이전의, 생래(生來)의 고운 정의 부활에 기대할 수밖에 없고, 그 가장 가까운 길은, 부단히 망각 속의 자료들을 가시청역(可視聽域)에 베풀어, 인간 본원(本源)에의 향수(鄕愁)를 유발함으로써, 스스로 상실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여기 갈피갈피 펼쳐진 고운 인정을 보라. 그 시사(詩思)의 궤적(軌跡)을 따라가다보면, 거기 고인을 만나게 되고, 가슴 가슴의 부딪침이 있게 되리라. 순간 뭉클함이 있고, 목메임이 있고, 후끈 달아 오르는 것이 있고, 때론 왈칵 쏟아지는 것이 있으리라.
그것은 홍진(紅疹, 홍역)에 열꽃 일듯, 봄 나무 발정(精)하듯, 한 가슴 활짝 열어젖힌, 속의 속살의 개화(開花)가 아닐 수 없다.
선인들의 느꺼워하던 느꺼움을 천재하(千載下)에서 다시 그 느꺼움에 젖어 보는 느꺼움은, 진정 ‘나’로만 살던 좁고도 짧은 인생 백년이, 천고를 더불어 사는, 길고도 폭넓은 삶으로 확충(擴充)되는 감개(感慨)와도 만나게 되리라.
한 편의 시를 올바로 감상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는 일이란, 어렵기도 하려니와 위험 부담 또한 적지 않다. 그러므로, 내 그 일에 비자격자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사도(斯道)의 길이 날로 거칠어 가는 터라, 매양 팔짱 끼고 앉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노혼(老昏)을 무릅쓰고 감히 붓을 든 바이나, 그러나 묻혀만 가는 선인들의 유주(遺珠)를 본래의 광채대로 닦아 빛내려는 본의와는 달리, 혹이나 오류ㆍ독단으로 도리어 티를 끼친 결과가 되지나 않았는지 두려움 또한 적지 않다. 대방(大方)의 질정(叱正)을 바랄 뿐이다.
1992년 12월
손종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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