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 한시로 아부하는 방식
관료로서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의 시는 여러 편을 봤었다. 권상 34번에 나오는 곽예는 시에서는 하릴없이 공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한 관리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가로이 근무하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이며 조정의 정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동양 사회에 이런 식의 태평성대에 대한 찬양이 생긴 것은 태평성세의 전범으로 삼는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
鑿井而飮 耕田而食 | 우물을 파마시며 밭 갈아 먹으니, |
帝力何有於我哉 | 임금의 정치가 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
이 시는 얼핏 보면 무정부상태를 칭송하는 글 같아 보인다. 조정의 정치 따위는 필요도 없이 백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먹고 산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노래를 불렀던 농부는 정말 그런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조정을 힐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에 이 노래는 유학자들이 이상향으로 삼던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이야기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에는 아예 격양가만 들어도 절로 태평성대가 생각날 정도로 판에 박힌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바로 이 격양가의 사상이 곽예의 시에도 오롯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위의 방식은 은근히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크게 반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얼핏 들으면 나태한 자신에 대한 추궁 같기도 해서 아리송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직접적인 얘기를 하기보다 비유적으로, 우회적으로 하는 게 때론 더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면 ‘뭔가 지금 나에게 콩고물이라도 바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 얘기를 듣는 당사자도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민망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상 51번에 실린 삼봉의 시가 바로 이런 민망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다. 대놓고 조정을 극찬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이건 조정을 찬양하다 못해 바짝 엎드린 시다’라는 느낌이 오니 말이다. 조정에 상서로운 기운이 몰려오고 있고 그 안엔 희망이 넘실거린다. 그곳에 자신은 근무복을 입고 궁화까지 꽂고 잔치에 참여했으니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전혀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은 어느 때에도 비길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비틀거리며 수비대 앞을 지나가도 누구도 제지하질 않는다.
정도전은 조선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를 얼굴마담으로 세웠지만 실질적인 조선에 대한 구상은 그의 머릿속에서 다 나왔으니 말이다. 경복궁이 임금의 권위보다 신하들의 권위가 더 크게 작용하도록 설계된 것이랄지, 좌측엔 종묘ㆍ우측엔 사직단[左廟右社]의 배치랄지, 사대문과 사소문의 명칭과 위치랄지 하는 것들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그가 전범으로 삼고자 하는 명나라 황실(전대의 원나라는 오랑캐국가라는 생각했고,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정통 황실이란 인식이 있었다)에 초정을 받아 가게 됐으니 위와 같은 아부조의 시를 짓는 것도 크게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저건 단순한 아부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그대로를 담은 것일 테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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