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1. 주례가 가시화된 서울
子曰: “武王ㆍ周公, 其達孝矣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무왕과 주공은 효에 통달했도다!’ 達, 通也. 承上章而言武王ㆍ周公之孝, 乃天下之人通謂之孝, 猶孟子之言達尊也. 달(達)은 통한다는 것이다. 윗장을 이어 무왕과 주공의 효를 말하여 곧 천하 사람들의 공통인 효를 말하였으니, 맹자가 「공손추」하2에서 말한 ‘달존(達尊)’과 같다. |
주자 주를 보면, “달(達)은 통(通)이다. 이 글은 18장을 이어서 하는 말인데, 무왕.주공의 효가 천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일컫는 효라고 말했다. 맹자(孟子)가 말한 달존(達尊)과 같은 말이다[達 通也 承上章而言武王周公之孝 乃天下之人 通謂之孝 猶孟子之言達尊也].”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편에 보면, “천하에 달존(達尊)이 셋인데, 작(爵)이 그 하나요, 치(齒)가 그 하나요, 덕(德)이 그 하나다[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라는 말이 있는데, ‘맹자지언(孟子之言)’은 이걸 말합니다. 천하 사람이 누구나 통틀어 일컫는 효가 ‘달효(達孝)’지요. 이 달효(達孝)를 18장의 ‘달호제후대부(達乎諸侯大夫)’와 연결시킨다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효’, ‘누구에게나 미칠 수 있는 효’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이 말한 효(孝)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아빠 말씀 잘 듣는 식의 ‘필리알 파이어티(filial piety)’, 즉 한 가족 내에서의 공경과 순종 같은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 덕목으로서의 사회질서를 형성하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가치가 됩니다. 중용(中庸)에서는 ‘달(達)’이란 말이 아주 중요한데, 누구에게나 달성되어야할 보편적 덕목이 곧 ‘효’라는 뜻입니다.
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효자란 사람의 뜻을 잘 계승하고, 사람의 일을 잘 술(述)한다. 上章言武王纘大王ㆍ王季ㆍ文王之緖以有天下, 而周公成文ㆍ武之德以追崇其先祖, 此繼志述事之大者也. 윗장의 무왕은 태왕과 왕계와 문왕의 실마리를 이어 천하를 소유했고 주공은 문왕과 무왕의 덕을 이루어 그 선조를 추숭(追崇)했으니, 이것이 뜻을 계승하고 일을 서술한 것의 큰 것이다. 下文又以其所制祭祀之禮, 通于上下者言之. 아랫 문장은 또한 제정한 제사의 예가 위 아래에 통한다는 것을 말했다. |
효란 ‘잘 계승하는 문제’로 연속성이 중요하다
‘계(繼)’는 ‘술(述)’의 다른 표현이고, ‘인(人)’은 다른 사람(other)입니다. 사실, 부모도 타인이지요. 타인의 훌륭한 뜻을 잘 잇는 것이 효란 말입니다. 효는 부모-자식 간에 국한되는 좁은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여러분들이 나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여러분들 삶 속에서 잘 이어갈 수 있다면(물론 그것이 좋은 것이어야겠지만), 그것이 곧 ‘효’란 말입니다. 효의 핵심은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입니다. 좀 비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조선문명에 대해 불효한 사람들이예요. 조선문명의 위대한 점을 잇지 못한 쌍놈들이 되어버렸거든요. 좋은 것을 ‘선계(善繼). 선술(善述)’해야만 문명의 질서가 축적되는 것인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서원을 놓고 봐도 그래요. 일림(一林)과 이림(二林)이 다르고, 이림(二林)과 삼림(三林)이 다릅니다. 일림(一林) 때는 문제가 참 많았어요. 학생도 교수진도 서원의 물리적 조건도 모두 다 말입니다. 우선 재생 여러분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책상이 없었어요. 그냥 땅바닥에 엎드려서 휴식시간도 없이 강행군을 했으니. 일림(一林) 수강한 재생들 기억나지? 쓰라린 기억이야! 그런데 이림(二林) 때에, 디자인 회사 「민 인터네셔날(MIN INTERNATIONAL)」으로부터 책상을 기증받았거든요. 이림(二林) 재생들은 그때 함께 책상 귀신에게 제사 드리고 그랬던 것 기억나죠? 내가 그 회사에 가서 디자인에 대한 폭넓은 강의를 하고서 사례형식으로 받은 건데, 그렇게 하고 나서야 서원에 질서가 잡혔어요. 딱 폼이 나잖아요? 이림(二林)이 일림(一林)을 잇고, 삼림(三林)이 이림(二林)을 잇고, 이렇게 해서 우리 도올서원도 분위기가 잡혀가는 겁니다. 공력이 쌓이는 거죠.
서울은 주례(周禮)의 체제가 가시화된 곳이다
‘서울’의 모습은 정확하게 ‘주례(周禮)’ 체제로 되어 있는데, 이런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경복궁 뒤의 삼각산은 중국으로 치면 곤륜산(崑崙山)에 해당하는데, 삼각이란 피라미드는 곧 하늘의 정기를 받아 땅에 통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기(氣)가 경복궁 근정전을 통해 용상(龍床)에 정확히 내려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임금이 앉아 ‘남면(南面)’하는 것입니다. 남면해서 왼쪽에 종묘(宗廟), 오른쪽에 사직(社稷)이 있죠[좌묘우사左廟右社].
사직(社稷)은 땅과 하늘, 즉 자연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사직은 모든 사물에 보편적이고 횡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면, 종묘(宗廟)는 인간의 제도와 종적 위계질서 관계를 상징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묘. 사직이 망한다는 말은 인간 문명의 질서와 그 지지기반이 완전히 허물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일본놈들이 근정전을 딱 막아 세우고 소위 ‘중앙청’이란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악랄한 짓이지. 이건 조선민족을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의도란 말야.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의 그 터라는 것은 도저히 감히 택할 수 없는 위치 아닙니까? 중앙청은 참으로 흉악한 건물입니다. 조금만이라도 비켜서 다른 곳에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거기다 지었다는 것이 얼마나 악질적이냐고. 그래서 내가 제안하기는, 일본 정부가 고오베 지진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이 건물을 자기 나라로 뜯어가는 게 어떻겠냐는 겁니다. 이런 건물을 지금 짓기도 사실 힘 드는 일인데, 완전히 허물어서 없애버릴 수도 없고 하니,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일본 정부가 동경이나 어디에든 자기네 땅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단 말이예요.
19장 2. 선조를 제사지내는 법
春秋修其祖廟, 陳其宗器, 設其裳衣, 薦其時食. 봄과 가을에 선조의 종묘를 수리하며 제기를 진열하고 선조의 그 의상을 펴 놓고서 제철의 음식을 올린다. 祖廟, 天子七, 諸侯五, 大夫三, 適士二, 官師一. 조묘(祖廟)란 천자는 7묘, 제후는 5묘, 대부는 3묘, 적사(適士)는 2묘, 관사(官師)는 1묘다. 宗器, 先世所藏之重器, 若周之赤刀ㆍ大訓ㆍ天球ㆍ河圖之屬也. 종기(宗器)란 선대의 소장했던 중요한 기물이다. 주나라의 적도, 대훈, 천구, 하도와 같은 것들이다. 裳衣, 先祖之遺衣服, 祭則設之以授尸也. 상의(裳衣)은 선조의 남겨준 의복으로 제사지낼 때 그것을 진설하여 시동에게 입힌다. 時食, 四時之食, 各有其物, 如“春行羔豚, 膳膏香”之類是也. 시식(時食)은 사계절의 먹는 것으로 각각 합당한 물건이 있다. ‘봄에 양이나 돼지를 써서 기름으로 조리하여 향기롭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
‘조묘(祖廟)’란 종묘를 말합니다. 나는 아직 종묘에 가보지 못했는데, 종묘가 없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다는 것은 굉장한 챈스(Chance)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고대(古代) 주례(周禮)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먼저 정면에 태묘(太廟)가 있고 좌측에 조묘(朝廟, ‘朝’는 ‘昭’, ‘밝음’을 뜻함), 우측에 목표(穆廟, ‘穆’은 ‘어두움’을 뜻함)가 있어요.
太廟 |
二代 四代 · · |
穆 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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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 廟
朝 廟 |
一代 三代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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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묘(太廟)에는 제일 으뜸가는 조상을 안치하고, 그 다음부터로 조묘(朝廟), 목묘(穆廟)에 한 대(代, Generation)을 걸러 가면서 번갈아 배열합니다. 거대한 훼밀리 구조도 이렇게 계통을 세워 놓으면 그 계보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나는 어렸을 적에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이면, 어머니가 이쪽은 누구고 저기는 누구고 하면서 죽 설명을 해줘도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게 어디 좀 복잡합니까? 당숙의 셋째니, 누구의 손자니, 뭐 전라도 삐뚤이 아주머니 아들의 동생이니. 그런데 종묘에서처럼 이렇게 쫙 세워 두면 한 눈에 착, 가닥이 잡히겠지요? 아, 얘가 이쪽, 쟤는 저쪽 계통(lineage)이구나 하면서 머릿속에 정리가 될 겁니다. 사실 ‘제사’라는 게 죽은 사람을 추모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대가족이 이런 한 장소에 모여서는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서열을 확인하고 단합을 이루는 축제 같은 의미도 있거든요. 그래서 종묘에는 종묘제례악이 펼쳐지잖아요.
주례(周禮)에 봄에 지내는 제례를 ‘사(祠)’, 여름 제례는 ‘약(禴)’, 가을 제례는 ‘상(嘗)’, 겨울 제례는 ‘증(烝)’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봄ㆍ가을만 대표로 예를 들었습니다.
‘수(修)’는 수리한다는 거죠. 기와도 올리고, 열쇠 녹슨 것도 새것으로 갈고. ‘진(陳)’은 제기(祭器)를 다 진열한다는 겁니다. 이걸 보니 생각나는데, 어렸을 적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마당에 다 모여서 놋그릇을 사금파리로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던 광경이 떠오릅니다. 놋그릇은 한 번 사용하면 푸르딩딩 녹이 슬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닦아야 했거든요. 옛날 사람들 그걸 그렇게 힘들게 닦아야 했으니, 어디 여자들 손이 성할 수 있겠어요?
‘상(裳)’은 아랫도리, 치마고, ‘의(衣)’는 윗도리입니다. 그렇지만, 의(衣)도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는 길게 도포처럼 내려왔을 겁니다. 상(裳)을 여자옷, 의(衣)를 남자옷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죽은 사람의 옷을 펼쳐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고례(古禮)는 ‘헛 제사’가 아니라 ‘실(實)제사’를 지냈거든요. 시동(尸童)이란 것이 뭔지 모르죠? 할아버지 제사에 그 손자 중 한 명을 골라 목욕재계 시키고, 할아버지 옷을 입혀서는 제사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손자를 살아생전의 할아버지처럼 실제로 앉혀 놓고 거기다 절한단 말입니다. 상의(裳衣)를 설(說)한다는 말은 그런 말이예요.
시식(時食)을 올린다는 것은 춘하추동 계절에 맞는 음식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여름에 겨울철 음식을 바치고, 겨울에 딸기나 수박 같은 여름 과일을 바치면, 귀신이 놀라서 미칠지도 몰라요. 요즘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이런 걸 생각 않고 마구 음식을 올리는데 큰일 납니다. 귀신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주자 주에, “봄에는 찐 염소나 돼지를 올린다[春行羔豚膳膏香之類].”고 했는데, 이것은 고례(古禮)라기보다는 주자시대 당시 송나라 때의 관습입니다. 중국의 고례(古禮)에는 개고기를 많이 썼지요. 한국 사람들이 아직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건 역시 고례(古禮)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증거라고 봐야겠습니다.
19장 3. 제사에서 앉는 차례
宗廟之禮, 所以序昭穆也. 序爵, 所以辨貴賤也; 序事, 所以辨賢也. 旅酬, 下爲上, 所以逮賤也; 燕毛, 所以序齒也. 종묘의 예(禮)는 소묘(昭廟)와 목묘(穆廟)에 사람들을 차례짓는 까닭이요, 관작(官爵)에 따라 서열하는 것은 귀천을 분별하는 까닭이요, 직분의 서열을 정함은 현명한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함이요, 술잔을 아랫사람이 윗사람들 위해 권하는 것은 아랫사람에게까지 제례에 참여하게 하는 까닭이요. 잔치에 머리털을 보고 앉히는 건 나이를 구분하는 까닭이다. 宗廟之次: 左爲昭, 右爲穆, 而子孫亦以爲序. 종묘의 차례는 왼쪽이 소(昭)가 되고 오른쪽이 목(穆)이 되니 자손 또한 이것으로 차례 짓는다. 有事於太廟, 則子姓ㆍ兄弟ㆍ羣昭ㆍ群穆咸在, 而不失其倫焉.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면 아들과 손자, 형제 여러 소(昭)와 여러 목(穆)이 다 모여 차례를 잃지 않는다. 爵公ㆍ侯ㆍ卿ㆍ大夫也. 事, 宗祝有司之職事也. 벼슬이란 공(公)과 후(侯), 경(卿), 대부(大夫)다. 사(事)란 제사의 여러 일을 담당하는 직책을 말한다. 旅, 衆也. 酬, 導飮也. 旅酬之禮, 賓弟子ㆍ兄弟之子, 各擧觶於其長, 而衆相酬. 여(旅)는 무리라는 뜻이다. 수(酬)는 마시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여수(旅酬)의 예는 빈객의 아우와 아들, 형제의 아들이 각각 그 어른에게 잔을 들고 무리가 서로 수작례(受爵禮)하는 것이다. 蓋宗廟之中, 以有事爲榮, 故逮及賤者, 使亦得以申其敬也. 대저 종묘에서 일을 맡음이 영화로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한 사람에게도 미치는 것은 또한 하여금 공경함을 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燕毛, 祭畢而燕, 則以毛髮之色別長幼, 爲坐次也. 齒, 年數也. 연모(燕毛)는 모발의 색깔로 나이 듦을 구별하여 앉는 차례를 삼은 것이다. 치(齒)는 나이다. |
‘서(序)’는 종사로 차례 짓는 순서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에 나왔던 ‘작일치일덕일(爵一齒一德一)’에서 본 것처럼 ‘치(齒)’란 나이를 말하는 것인데, 작(爵)도 치(齒)와 관련되는 위계질서를 말합니다. 물론 내가 보는 ‘작(爵)’은 ‘작제(爵制)’의 문제와 함께 논의되는 거대한 주제입니다만, 여기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주자 주에, ‘작(爵)은 공(公)ㆍ후(候)ㆍ경(卿)ㆍ대부(大夫)’라고 했는데, ‘공후(公侯)‘는 중앙의 관직으로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이고 경(卿)·대부(大夫)는 지방의 제후(諸侯)·대부(大夫)입니다(「萬章」) 계속 주자 주를 보면, “직분이란 종축(宗祝)이나 유사(有司)와 같은 직책을 말한다[事宗祝有司之職事也].” ‘종(宗)’은 종백(宗伯)·종인(宗人) 등 제사 담당관을 가리키고, 축(祝)은 소축(小祝), 대축(大祝)과 같은 기도 담당관, 즉 축문을 읽는 사람을 말하며, 유사(有司)는 그 외의 세부적 직책을 담당하던 사람들 말합니다.
‘수(酬)’는 수작(酬酌)이란 말이 남아있듯이 술잔을 주고받는 것이죠. 수(酬)가 술을 권하는 것이고, 작(酌)은 받는 거예요. “수(酬)는 하(下)가 상(上)을 위해서 한다.” 제사에는 아랫사람이 참여할 기회가 적으니까, 술잔을 권할 때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순서를 택하면, 아랫사람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입니다. 제례가 다 끝나고 연(燕, 뒷풀이)이 베풀어질 때는, 머리털을 보고 허연 사람들은 위에 앉히고 그 다음 희끗희끗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새까만 사람을 나중에 앉힌다 이겁니다.
김우중씨는 젊었을 때를 회고하면서 말하기를, 한국 사회에서 머리가 흰 것을 천행(天幸)이라고 했습니다. 대우를 일으켜 서울역 앞에 거대한 사옥을 지을 때, 그의 나이 불과 30대 초반이었어요. 당시 장관과 면담하고 협상할 때, 그의 머리가 완전히 하얗기 때문에 얼마나 득을 봤는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머리가 까맣거나 나같이 머리칼이 없는 박박머리 놈은 무턱대고 애숭이로 취급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선 역시 머리가 희면 대접받는 것 같아요.
19장 4. 제사와 통치의 상관관계
踐其位, 行其禮, 奏其樂, 敬其所尊, 愛其所親,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孝之至也. 그 지위를 밟아서 그 예(禮)를 행하고, 그 악(樂)을 연주한다. 선왕(先王)이 높인 바를 공경하고, 살아생전에 친했던 사람들을 아끼며, 죽은 자를 섬기되 산 사람을 섬기듯이 하고, 묻혀서 없어진 자를 섬기되 있는 것 같이 하는 것이 효의 극치이다. 踐, 猶履也. 其, 指先王也. 所尊ㆍ所親, 先王之祖考ㆍ子孫ㆍ臣庶也. 천(踐)은 리(履)와 같다. 기(其)는 선왕을 가리킨다. 존경하는 것과 친하게 여기는 것이란 선왕의 조상과 자손, 신하들이다. 始死謂之死, 旣葬則曰反而亡焉, 皆指先王也. 처음으로 죽었을 때를 사(死)라 하고 이미 장례지내고 돌아와서는 망(亡)이라 하니, 모두 선왕을 가리킨다. 此結上文兩節, 皆繼志ㆍ述事之意也. 여기선 윗 두 문장을 결론지었으니 모두 뜻을 계승하고 일을 기술한다는 뜻이다. |
여기서 예악(禮樂)이 나옵니다. 예(禮)와 악(樂)은 항상 병행(竝行)하는 것으로서, 엄격히 차서(次序)를 정하면서도 서로 어울림을 잃지 않는 것이죠. ‘애(愛)’는 ‘아낀다’로 정확히 번역되는데, 우리말에 ‘아낀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색하다’는 의미와 ‘귀히 여겨 잘 쓰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역시 사랑하는 감정은 아낀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아끼니까 함부로 쓰지 않고, 귀하게 여기고. 부부간의 사랑도 서로 아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死)와 망(亡)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여기서는 문장 구조상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사(生死)와 존망(存亡)이 짝을 이루어 비슷한 의미로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죽은 자를 산 자와 같이 섬긴다는 이런 정신이 매사에 적용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없어도 있는 것처럼! 예를 들어서, 공자가 죽고 난 다음에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자의 사상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인간의 경건함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또한 효의 극치이기도 하구요. 동양인들은 이렇게 효의 의미를 깊게 새깁니다.
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 宗廟之禮, 所以祀乎其先也. 明乎郊社之禮ㆍ禘嘗之義, 治國其如示諸掌乎!” 교(郊)와 사(社)의 례(禮)는 상제(上帝)를 섬기는 까닭이요, 종묘의 예(禮)는 그 선조를 제사지내는 것이다. 교(郊)ㆍ사(社)의 예(禮)와 체(禘)ㆍ상(嘗)의 의(義)에 밝은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마치 손바닥 들여다 보는 것처럼 훤히 알 것이다. 郊, 祭天. 社, 祭地. 不言后土者, 省文也. 교(郊)는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것이다. 사(社)는 땅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하늘 신인 상제(上帝)만 말하고 땅의 신인 후토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문을 생략한 것이다. 禘, 天子宗廟之大祭, 追祭太祖之所自出於太廟, 而以太祖配之也. 체(禘)는 천자가 종묘에서 드리는 큰 제사이니, 태조가 시작된 바의 선조를 태묘에서 추제하고 태조로써 그 선조와 배향(配享)하는 것이다. 嘗, 秋祭也. 四時皆祭, 擧其一耳. 禮必有義, 對擧之, 互文也. 상(嘗)은 가을제사다. 사계절에 모두 제사를 지내지만 그 하나만을 들었을 뿐이다. 교사지례(郊社之禮)는 반드시 체상지의(禘嘗之義)가 있어야 하니 상대적으로 그것을 들었으니, 호문(互文)이다. 示, 與視同. 視諸掌, 言易見也. 此與論語文意大同小異 記有詳略耳. 右第十九章. 시(示)는 시(視)와 같다. 시저장(視諸掌)은 보기 쉽다는 말이다. 이장은 「팔일」11의 문장의 뜻과 거의 같으나 약간 다르니, 기록에 자세하거나 간략하거나 함이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는 19장이다. |
‘교(郊)’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로서 그 대상이 상제(上帝)이고, ‘사(社)’는 땅에 지내는 제사이니 대상이 후토(后土)이죠. 여기서는 운(韻)을 맞추기 위해서 상제(上帝)만 쓰고 후토(后土)는 쓰지 않았습니다. “종묘는 선조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교사(郊社)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였다.”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 문명을 관장하고 운영하는 모습은 구색이 딱딱 맞게 치밀합니다. ‘체(禘)’는 천자(天子)가 5년에 한 번 지내는 특별한 대제(大祭)이고, ‘상(嘗)’은 가을에 지내는 제사인데, 나머지 세 계절을 대표해서 쓰였습니다.
『논어(論語)』 「팔일(八佾)」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가 체의 절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린다면 이걸 보듯이 쉬울 것이다’하면서 손바닥을 가리켰다[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이와 같이 『논어(論語)』나 『중용(中庸)』에서처럼, 같은 공자의 말씀을 여기저기 기록한 것이 고전에는 많이 있습니다.
“체의 차례와 내용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처럼 환할 것이다.” 이 말은 옛날 제정일치 사회에선 제사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세를 훌륭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때에 따라 모든 인간관계에 질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제사는 당시 사회제도 운영의 근간이었고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한 확인절차였던 것입니다.
17장과 18장과 19장은 모두 ‘작예악(作禮樂)’에 관한 것으로서, 유교문명의 작(作)의 내용을 서술한 것인데, 다음 20장부터는 『중용(中庸)』의 철학적 맛을 본격적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서론(introduction)이었고, 진짜 맛은 이제부터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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