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소화시평』 권상 88번의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땐 신이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종교계열의 이야기엔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으론, 일상적인 이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천지창조 이야기랄지,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랄지, 단군의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종교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무작정 수긍해야 한다거나, ‘어디서 그런 뻥카를’이란 생각으로 거부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읽고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엔 융이 말했던 ‘집단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이한 것으로 가렸을 뿐 그 집단이 생각하던 것들, 이상으로 여기던 것들이 모두 총 망라되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일례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는 단순히 그 짐승 자체를 말하고 있다기보다 곰을 토템으로 여기는 민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여기는 민족 중에 곰을 토템으로 여기는 민족이 최후 승자가 되어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이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신이한 이야기는 여러 부분에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고, ‘과연 이 이야기를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 거야?’라고 접근해야 맞다. 그럴 때 그 이야기가 전해진 내력, 그리고 그걸 통해 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말들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주제로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 춘천교대에 찾아가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선생님에게 듣는 얘기는 옛 이야기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했다.
그런 식으로만 단순히 이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려 했는데 김형술 교수님은 단순히 소화시평 본문만을 보여주지 않고 여러 참고 자료까지 함께 보여준다. 하나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해야 한다는 걸 손수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 4월부터 소화시평을 함께 공부하게 되면서 교수님은 단순히 소화시평을 함께 강독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공부의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강의를 진행했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공부란 ‘주어진 텍스트에 귀속되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다양한 자료들을 종횡무진 찾고 누비며 학문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공부’였던 것이다.
『소화시평』 권상 47편에선 이숭인과 정도전의 「오호도」에 대한 일화를 담고 있다. 원래 하던 방식대로 한다면 그저 소화시평의 내용만 이해하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정도전이 이색에게 폄하당한 작품까지 같이 제시하며 “왜 이색은 이숭인의 작품에 대해선 칭찬을 했지만, 정도전의 작품에 대해선 폄하하면서 ‘이 작품은 누구나 여유롭게 지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던지는 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란 이렇게 해야 맞다. 100% 이색이 그 말을 하게 된 의도에 가 닿을 순 없다 해도, 두 작품을 비교해보며 그 생각을 역추적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공부해야지만 두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자신의 생각임을 전제하며 “도은의 시엔 누구도 의식하지 않으며 전횡과 그의 식객만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반해, 삼봉의 시엔 자신을 드날리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고 두 시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듣고 나니 두 작품의 차이가 분명히 보이는 듯했고 이색의 생각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듯했다.
▲ 공부란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많은 자료를 참고하며 알아봐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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