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간성군의 삼일포에서
삼일포(三日浦)②
최립(崔岦)
浦南厓, 有丹書述郞徒南石行六字, 鄭西川認南石爲四仙之一, 恐謬.
三入岳陽人不識 世暄巖客坐詩成
四仙豈覺留丹字 應恨當時南石行 『簡易文集』 卷之八
해석
浦南厓, 有丹書述郞徒南石行六字,
포구의 남쪽 벼랑에 ‘述郞徒南石行’ 6글자가 붉게 쓰여 있는데
鄭西川認南石爲四仙之一, 恐謬.
서천 정곤수(鄭崑壽)는 남석(南石)이 네 명의 신선 중 한 명이라 인식했는데 아마도 잘못된 것이리라.
三入岳陽人不識 삼입악양인불식 |
악양에 세 번 들어간 건 사람들이 모르지만 |
世暄巖客坐詩成 세훤암객좌시성 |
바위의 나그네가 앉아 시를 쓴 것만이 세상 시끄럽네【악양은 진주목(晉州牧)에 속한 하나의 현(縣)으로, 관곡(官穀)을 출납하는 창(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간이가 진주 목사로 부임한 이래 이곳을 왕래하며 국가를 위해 공헌한 일은 알려지지도 않은 채, 그저 사선(四仙)이 삼 일 동안 삼일포에 머물면서 노닐었던 고사만 회자(膾炙)되고 있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사람들이 중국의 악양루(岳陽樓)가 유명하다는 것만 알 뿐, 진주에 악양현이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라는 뜻을 담은 이 표현 역시 간이의 골계적(滑稽的)인 수법이 생생하다고 할 것이다.】. |
四仙豈覺留丹字 사선기각류단자 |
네 명의 신선이 어찌 붉은 글자 남길 걸 의식했으리오? |
應恨當時南石行 응한당시남석行 |
응당 당시에 남석으로 가는 걸 한스러워했겠지. 『簡易文集』 卷之八 |
해설
이 시는 위의 시에 이어서 쓴 시이다.
사람들이 중국의 악양루(岳陽樓)가 유명하다는 것만 알 뿐, 진주에 악양현이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라는 뜻을 담은 이 표현은 간이의 골계적(滑稽的)인 수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83번에서, “우리나라 시는 위로 고려시대부터 아래로 근대시에 이르기까지 볼만한 경련이 적지 않다. …… 동고 최립의 명나라에 가며」에 ‘종남산과 위수는 옛날 본 듯한 모습이요, 무적과 개원의 시대(무적은 당 고조의 연호이고, 개원은 현종의 연호로, 태평시대를 일컬음)를 다시 만났구나.’라 하였는데, 고아하고 전중하여 마치 은나라 이와 주나라 정이 동쪽에 차례대로 의젓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과 같다[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 崔東皐「朝天」詩: ‘終南渭水如相見, 武德開元得再攀.’ 高雅典重, 如啇彛周鼎, 儼列東序].”라 하였으며,
또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선 허균(許筠)의 말을 인용해 “간이의 시작은 본래 스승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스스로의 풍격을 창조하였으니, 뜻은 깊고 시어는 옹골차다. 성률을 갈고닦으며, 풀과 꽃을 주워 엮은 자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간이의 시가 문장보다 낫다고 생각한다[許筠以爲簡易詩, “本無師承, 自創爲格, 意淵語傑, 非切磨聲律. 採掇花卉者, 所可企及. 吾以簡易詩爲勝於文”云].”라 하였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68~6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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