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체제 밖의 삶을 선택한 조선시대 여성 인물
검녀가 향한 ‘절해공산(絶海空山)’은 ‘강호(江湖)’의 다른 이름이며, 규범 밖에 위치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강호는 ‘방외(方外)’와 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검녀가 선택한 강호를 방외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은 여성 중에서도 방외인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갖는 체제저항적인 힘, 체제를 거부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그녀의 면모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기존의 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세운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남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또 버리기도 했던 검녀는 자기 성의 주체로서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태도는 조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윤리와 부합되지 않는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성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불온한 일이었다.
검녀가 조선시대의 여성으로서는 드문 삶의 궤적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조선 사회의 질서를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성의 주체로서의 면모와 관련하여 조선 여성 중에 검녀와 비견할 인물을 찾는다면 황진이(黃眞伊))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조선시대에도 지인지감에 의해 남성을 선택하는 여성들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지인지감을 통해 남성을 선택하는 여성들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조선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여성의 미덕으로 귀결되고 기려지면서 조선의 질서 안으로 귀속된다. 이에 비해 검녀와 황진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는 조선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남성 인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검녀와 황진이의 이런 면모는 이 두 인물이 조선시대를 넘어서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설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황진이와 검녀는 둘 다 하층신분이면서 자기 성의 주체였다. 이사종과의 6년 동거나 이생과의 금강산 유람 등을 볼 때, 황진이 역시 당대의 제도를 넘어선 여성이었다.
그러나 「검녀」의 창작 시기인 18세기 말에 비해 황진이가 살았던 16세기는 여성에 대한 규율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작동했던 시기이다. 또한 황진이에 관한 조선 시대 기록은, ‘황진이의 모친이 받아 마신 물이 술로 변했다’ ‘황진이를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사흘이나) 방을 가득 채웠다’, ‘모친이 물을 마시고 감정이 통해 황진이를 임신했다’는 식으로 신화화되거나 전설화된 측면들이 있다. 조선의 담론에 의해 그녀는 신선이 되고 말았다. 황진이를 담론화 하는 조선 시대의 서술 방식은 그녀를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반면, 그녀를 저항적인 에너지를 가진 주체로 읽는 것은 막고 있다.
「검녀」의 서사가 그녀의 협기를 부각시키는 방면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에 들어 활발해진 협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유협을 숭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체제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자기 윤리를 가진 여성 협객인 검녀가 나타난 것이다.
검녀는 조선시대에 ‘방내’가 아닌 ‘방외’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여성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는 조선시대 여성상의 범주를 확대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체제 밖의 삶을 선택한 조선시대 여성 인물의 서사, 검녀의 인물 형상은 오늘날 여성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문제적이며, 검녀를 이런 방식으로 재해석해 내는 것은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이 검녀 캐릭터를 해석하고 창작해 나가는 데.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인용
1. 들어가며
5. 끝맺음
'한문놀이터 > 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혜란, 조선의 여협, 검녀 - 3. 「검녀」의 여성 캐릭터 분석 (0) | 2019.11.26 |
---|---|
조혜란, 조선의 여협, 검녀 - 5. 끝맺음 (0) | 2019.11.26 |
박희병, 조선 후기 한문소설의 발전 - Ⅰ. 기존 연구의 방향 (0) | 2019.11.26 |
차용주, 한국한문소설약사 - Ⅲ. 결론 (0) | 2019.11.26 |
차용주, 한국한문소설약사 - Ⅱ. 본론 (0) | 201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