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협(女俠), 검녀(劒女)
조혜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1. 들어가기
이 논의는 고전문학의 연구 결과가 새로운 문화콘텐츠【문화콘텐츠는, 기존의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보다 좁은 범주의 내용물을 가리킨다. IT나 디지털기술을 이용하지 않고도 문화적 내용물을 생산하고 서비스했던 산업을 문화산업이라고 한다면, 문화콘텐츠는 방송,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전자책 등 영상미디어나 디지털미디어와 같은 뉴미디어를 이용하여 저장, 유통되는 문화예술의 내용물들을 일컫는다.】 창작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즉 문화콘텐츠 창작 원천 소스(sauce)로서의 연구가 되기를 염두에 두면서 진행된 작업으로, 본고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인물은 조선후기 한문단편 「검녀(劒女)」)에 등장하는 여성 검객이다.
조선시대에 여성이 검객으로 강호와 시정을 누비다니, 조선시대에 대한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혹은 조선시대 문학에 나타난 여성인물상을 염두에 둘 때, 이 연구의 대상은 예외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에서 이런 예외성은 오히려 신선함, 호기심 등과 연결되면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인물을 접했을 때 비슷한 예외성을 전제로 한 예로 ‘다모(茶母)’를 들 수 있다. 다모라는 캐릭터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설정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조선시대 기록 가운데에서 ‘다모’와 관련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다모라는 명칭 및 다모가 수행했던 일들은 실제로 조선시대에 여성들이 맡았던 일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일례(一例)로, 송지양(宋持養, 1782∼?)은 「다모전」에서 여성 피의자들을 수색, 검거하는 일을 맡은 다모의 이야기를 입전해놓았다. 이 ‘다모(茶母)’는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연재되었던 방학기의 만화 「다모 남순이」를 시작으로 하여, MBC 드라마 「다모」 및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 듀얼리스트」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다양한 설정으로 재생산되었다.】.
고전문학의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등장인물로 적합한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기존의 콘텐츠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이면서 주제 면에서 보편적인 가치와 함께 현대적인 가치로 재해석될 만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모색의 결과, 기존에 덜 알려진 예외적인 인물, 아웃사이더와 같은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탐구가 더 필요하리라는 판단 하에 논의 대상으로 여성 검객을 선택하였다.
검녀는 여성들의 공적 활동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순종적인 면모만을 강조했던 조선시대에 등장한 여성 협객이다. 따라서 시대와 인물이 만들어 내는 대조의 효과가 극명하다.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캐릭터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 논의만 보더라도 인물 연구는 그 성과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인물 연구는 인물에 대한 이념적 관심 및 평가가 연구의 중심에 놓여 있거나 혹은 인물을 유형별로 범주화하여 설명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성과들이 많다. 곧 개별 인물들의 서사(敍事)나 시각적인 요소 등은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는 해당 인물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한, 인상적인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왜냐면 오늘날의 문화콘텐츠는 대개 멀티미디어 기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화콘텐츠의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구현이 가능해야 하는데 기존 논의들은 인물의 시각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술적인 연구의 축적 및 이론의 발전을 위한 인물 연구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문화에서 고전문학이 살아있는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 방법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은 우리나라 고전에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원천 소스의 한계가 창작 결과물의 한계로 이어지는 결과들을 보여준다.
보기를 들어, 애니메이션 「신 암행어사」는 「춘향전」, 「어사 박문수」 등 우리나라의 고전문학 작품들을 끌어들였지만 고전 인물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으로 캐릭터 재해석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여기에 고전문학 또는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오늘날의 문화콘텐츠와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연구가 문화콘텐츠를 염두에 둔다고 해서 그 연구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 아니다. 고전 연구자의 연구가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기능적인 요소들만 지적하고 제시해 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 및 관점까지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들까지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 때, 고전 작품을 토대로 한 새로운 창작도 깊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 같은 입장을 토대로 하면서 「검녀」를 분석하고, 이 작품 및 검녀 캐릭터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을 시도하려고 한다.
인용
1. 들어가며
5. 끝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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