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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8. 풍요 속의 음지(황진이)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8. 풍요 속의 음지(황진이)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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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黃眞伊, ?~?, 本名 眞, 一名 眞娘, 妓名 明月)는 중종(中宗) 때의 명기(名妓)로 시서(詩書)와 음률(音律)에 능통하였다. 그는 황진사(黃進士)의 서녀(庶女)로 출중한 미모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 15세에 기적(妓籍)에 투신한 이후 당대의 문인 명유와 교유하여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당시 생불(生佛)이라 일컬어지던 천마산(天磨山)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킨 일과 시조 한 수로 벽계수(碧溪守)를 매료시킨 일, 소세양(蘇世讓)과의 교유, 서경덕(徐敬德)과의 사이에 사제관계(師弟關係)가 이루어진 사연 등은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특히 그는 서경덕(徐敬德)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우게 되어 그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스스로 서경덕(徐敬德)과 박연폭포(朴淵瀑布), 그리고 자신을 일컬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한 것이 그러한 보기가 될 것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등의 시조집에 수록되어 있는 6수의 시조는 참신한 유와 세련된 언어 구사, 풍부한 서정성이 함축되어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의 한시는 시조처럼 높은 수준을 과시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성들의 정한(情恨)을 자유분방하게 풀어내어 시조의 정조와 부합되는 측면이 많다. 그러나 그의 시조가 남녀간의 사랑과 별리의 여성적 정한을 읊은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한시의 세계는 이보다도 다양하다. 별김경원(別金慶元), 봉별소판서세양(奉別蘇判書世讓)은 별한(別恨), 영반월(詠半月)은 원정(怨情), 만월대회고(滿月臺懷古), 송도(松都)는 지나간 역사의 애상(哀傷),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웅혼한 기상까지 일게 해준다.

 

이로써 보면 황진이(黃眞伊)의 한시는 세련된 기교와 풍부한 정감과 웅혼한 기상의 혼융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됨 직하다.

 

 

황진이(黃眞伊)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영반월(詠半月)을 보면 다음과 같다.

 

誰斲崑山玉 磨成織女梳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다듬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牽牛離別後 愁擲碧空虛

직녀는 견우와 이별한 뒤에 부질없이 창공에 던져두었네.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우리나라 기류(妓流)들의 한시는 후세에 전해지는 작품이 드물다 하고 황진이(黃眞伊)의 이 시와 계생의 취객(醉客)을 가리켜 특히 시재(詩才)의 기이함을 칭송하였다. 이 작품은 물론 반달과 빗의 모양이 비슷한 것에서 취재(取材)한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반달을 직녀가 견우와 이별한 뒤에 창공에 던져버린 빗으로 환치시켜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님과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여인에게 빗이란 소용없는 치장도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여성의 시답지 않게 웅혼한 시상이 돋보이는 황진이(黃眞伊)박연폭포(朴淵瀑布).

 

一派長天噴壑壟

긴 하늘에 한 줄기를 골짝에 뿜어내니

龍湫百仞水叢叢

백 길이나 되는 용추폭포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물줄기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인가 의심나고

怒瀑橫垂宛白虹

성난 폭포 가로비껴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물벼락 어지러이 달려 골짝에 가득하고

珠聳玉碎徹晴空

구슬을 찧고 부순 듯 창공에 맑아라.

遊人莫道廬山勝

놀이꾼들이여, 여산이 보다 낫다고 말하지 마라,

須識天磨冠海東

모름지기 천마산이 해동 최고임을 알겠네..

 

수련(首聯)에서 경련(頸聯)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폭포의 외경(外景) 묘사를 통하여 이 시의 구도가 장대함은 쉽게 알 수 있거니와, 이 작품에서 시인이 남아다운 호기를 부린 것은 미련(尾聯)이라 할 것이다.

 

중국에서도 크기로 유명한 여산(廬山)보다도 우리나라 천마산(天磨山)의 승경(勝景)을 칭도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천마산(天磨山)에 있는 박연폭포가 해동(海東) 제일의 승경(勝景)이라 한다면 자신도 해동의 제일임을 은근히 빗대어 말한 것이라 볼 수도 있으므로 생각이 이에 미치면 이 시의 운치가 한층 살아날 수도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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