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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인회, 조선시대 사대부의 한글 사용과 의미 - II. 사대부를 위한 번역, 2) 표준 번역으로서의 언해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인회, 조선시대 사대부의 한글 사용과 의미 - II. 사대부를 위한 번역, 2) 표준 번역으로서의 언해

건방진방랑자 2019. 11. 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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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표준 번역으로서의 언해

 

경서 외에도 사대부들을 위한 번역은 다양하게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두시언해이다. 이 책이 간행된 이유에 대해서는 장유(1587~1638)가 쓴 서문에 자세하다.

 

 

[2-6]

시는 마음속으로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주해 따위를 낼 필요가 있겠는가. 주해도 낼 일이 없는데, 더구나 우리말로 번역할 필요가 있겠는가. 견식이 뛰어난 자의 입장에서 논한다면야 물론 이 말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마음속으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을 경우 어찌 주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 주해를 보아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 경우 어떻게 번역을 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점이 바로 두시언해가 시인들에게 공이 있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시는 두보에 이르러 고금을 모두 통틀어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것이다. 소재 선택의 범위도 그렇게 넓을 수가 없고, 내포된 의미도 심오하기 그지없으며, 어휘의 구사도 참으로 변화무쌍하기만 하다. 그러니 가슴에 국자감(國子監)이 들어 있지 않으면 두보의 시를 볼 수가 없다는 옛사람의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주해를 낸 사람들이 천가(千家)로 일컬어질 만큼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비밀스러운 뜻과 오묘한 말에 대해서는 드러내 밝혀놓은 것이 적기 때문에 읽는 이들이 이를 병통으로 여겨온 지가 오래되었다.

詩須心會, 何事箋解, 解猶無所事, 況譯之以方言乎. 自達識論之, 是固然矣. 爲學者謀之, 心有所未會, 烏可無解, 解有所未暢, 譯亦何可已也. 此杜詩諺解之所以有功於詩家也. 詩至杜少陵, 古今之能事畢矣. 庀材也極其博, 用意也極其深, 造語也極其變, 古人謂胸中無國子監, 不可看杜詩, 詎不信歟. 註解者稱千家, 謂其多也. 至其密義粤語, 鮮有發明, 讀者病之久矣. -張維, 谿谷集6 重刻杜詩諺解序.

 

 

장유는 위 서문에서 언해가 필요 없는 경우와 언해가 필요한 경우를 구분하여 두시언해를 다시 펴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장유는 원래 한문에 능통하여 시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주석이나 번역이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데 두보의 시는 소재를 취하는 범위도 넓고, 내포한 뜻도 깊으며, 시를 짓는 솜씨도 다양했다. 두보의 시는 가슴에 국자감이 들어 있지 않으면 두보의 시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던 것이다. 때문에 시를 배우려는 사람은 시를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석이 필요했으며, 주석이 선명치 않았기 때문에 언해가 필요했다는 것이 장유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두시언해는 반드시 초학자만이 보는 책은 아니었다.

 

 

[2-7]

중외(中外) 두보 시에 대한 제가의 주해를 구입하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집현전으로 하여금 두시에 대한 여러 사람의 주석을 참고 교정하여 하나로 만들도록 하였으므로 구입하도록 한 것이었다. -세종실록25(1443) 421.

 

[2-8]

성화 신축년(1481)에 상이 홍문관전한 신 유윤겸 등에게 명하시기를 대략 이와 같이 하셨다. 두보 시에 대한 여러 주석가의 주석은 [] 뭇 설이 분분하여 서로 모순되므로 실상을 조사하여 통일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부디 편찬하도록 하라이에 여러 주를 널리 모아 번다한 것을 제거하고 잘못된 것을 정리하였으며, 지리(地理인물(人物자의(字意) 가운데 난해한 것은 절을 나누고 간략하게 의미를 소통시켜(逐節略疏) 독서에 편하게 하였다. 또한 우리말로 그 뜻을 번역하였다.

成化辛丑秋, 上命弘文館典翰臣柳允謙等, 若曰, “杜詩諸家之注詳矣. 然會箋(草堂詩史)繁而失之謬, 須溪(高崇蘭編次本 集千家註批點分類杜工部詩集) 簡而失之略. 衆說紛紜, 互相牴牾, 不可不硏覈而一. 爾其纂之.” 於是廣摭諸註, 芟繁釐枉, 地理人物字義之難解者, 逐節略疏, 以便考閱, 又以諺語, 譯其意旨. 向之所謂難澁者, 一覽瞭然. 書成, 繕 寫以進, 命臣序. [] 成化十七年二月上澣 [] 臣曺偉謹序. -曺偉, 重刻杜詩諺解』 「[初刊本 序].

 

 

두시 주석서의 여러 판본을 모아 찬주분류두시의 간행을 명령한 세종이나 분류두공부시언해의 언해를 명령했던 성종은 모두 방대한 주석의 번다함과 주석이 상호 모순되는 오류를 지적하며 이들 주석을 하나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분분한 제가의 설을 정리하여 통일된 정론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두시언해는 경서의 번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두보의 시에 대한 주석과 풀이를 표준화하고 있는 것이다.

 

두시언해는 표준화된 번역과 간결하고 분명한 자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이 번역서가 두보의 시에 대한 이해와 번역에 표준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유가적 문학관 속에서 두시를 문학의 전범으로 세우는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본화된 두시언해는 시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름난 시인 학자 또한 보게 되었다. 장유도 예문 2-6의 다른 곳에서 어렸을 때 두시언해를 빌려 보았지만 다시 보려고 했을 때는 끝내 얻지 못해 한스럽게 여겼다고 했고 정철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골집에 있는 두시언해전질을 가려오라고 하고 있다行間, 切勿入州府紛華處, 以虧繩檢, 把表策兩冊, 溫理爲可. 鄕家所藏諺解杜詩全帙, 持來爲可. -鄭澈, 松江集別集 卷1 家間書 寄子..

 

한글은 당대의 학문적 역량을 결집하여 표준 제시를 하는 데 대단히 큰 공헌을 했다. 당대 학문의 조류를 따라가기 위해서도 사대부들의 한글 학습은 필요한 것이었다.

 

 

 

 

인용

목차 / 지도

I. 머리말

II. 사대부를 위한 번역

1. 번역의 전통과 사대부

2. 표준번역으로서의 언해

III. 사대부들의 우리말 음가의 표현

1. 한자음의 혼란과 운서의 편찬

2. 시가의 가창과 한글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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