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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인회, 조선시대 사대부의 한글 사용과 의미 - Ⅲ. 사대부들의 우리말 음가의 표현, 1) 한자음의 혼란과 운서의 편찬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인회, 조선시대 사대부의 한글 사용과 의미 - Ⅲ. 사대부들의 우리말 음가의 표현, 1) 한자음의 혼란과 운서의 편찬

건방진방랑자 2019. 11. 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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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대부들의 우리말 음가의 표현

 

 

1. 한자음의 혼란과 운서의 편찬

 

한자의 정확한 음이 무엇인가는 사대부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한자의 정확한 음가 표기는 한글 창제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될 만큼 중요한 문제였으며 학술의 중요 토론거리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문헌 도처에서 한자의 정확한 음이 논란이 되거나 정확한 음을 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3-1]

주강할 적에 상께서 자의 음과 뜻을 물으셨는데 승지 유전이 음이 ()’입니다하였고 나는 모르겠으니 물러가 자서를 상고해보고 알외겠습니다하였다.

晝講. 上問觔字音義如何. 承旨柳㙉對以音斤. 希春對以未詳, 請退考字書, 然後乃啓.”(1568715);

 

15일 주강 때 신이 시강관으로 입시했는데 상께서 자를 하문하시기에 신이 모르겠으니 물러가 자서를 참고해보고 알외겠습니다했는데 물러와 상고해보니 바로 자의 별자(別字)일 뿐 다른 자가 아니었습니다. 승문원에서 쓴 사대문서에서 자를 쓴 이유는 자가 획이 적어 고치기 쉽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 음이 같고 통용되는 자를 쓴 것입니다.

十五日晝講, 臣以侍講官入侍, 自上下問觔字, 臣對以未詳, 當退考字書以啓, 退而考之, 則卽筋字之別作, 非他字也. 承文院事大文書所寫觔字, 蓋因筋字畫少易改之, 避而書音同通用之字耳.”(1568717);

 

사역관이 경서 맹자를 강하는 데 채택할 점이 많았다. 그중 글의 뜻을 모르거나 오착이 이어진 곳은 내가 모두 가르쳐주었다. ‘자의 음을 ()’로 하지 말고 와 같이 음을 내야 한다든가 구법(九法)은 구주(洪範九疇)의 뜻이라는 등의 유가 그것이다.

司譯之官, 講經書. 孟子多有可採, 其不曉文義, 誤錯相承處. 余皆敎之, 於終如挫字, 不當音札, 而當音坐, 九法乃是九疇之類.”(157348);

 

조계옥이 훈몽자회를 가지고 왔다. ‘자의 음은 이고 경사(傾斜)의 뜻이다.

趙啓沃持訓蒙字會來, 歪字音傾斜也.”(1574426);

 

이웃에 사는 병조참판 박계현이 편지로 통감』 「한기趙過代田과 조광한의 構會吏民의 뜻과 자의 음을 물어왔기에 자세히 답해주었다.

鄰居朴兵叅啓賢 以書問通鑑漢紀趙過代田, 趙廣漢構會吏民之義, 及祋字音. 余皆卽詳答.”(1574629);

 

시강관이 서경』 「목서편今商王受惟婦言是用대목을 강했는데 주석에 자의 음을 []’로 읽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상이 말씀하시기를 이 자를 어찌 이렇게 읽어야 하는가하자 노수신이 강력히 고집을 하므로 상께서 억지로 따랐다.

侍講官, 講牧誓今商王受惟婦言是用, 傳背字以音佩讀. 上曰, 此字豈可如此讀. 盧守愼力執, 上姑勉從.”(1574720);

 

꿈에 큰 파리를 보았다. ‘의 음은 ()’이다.

夢見大蠅, 蠅音升.”(1576519). -柳希春, 眉巖日記.

 

 

유희춘(1513-1577)미암일기에서 한자의 음과 관련된 기록을 뽑은 것이다. 당대의 대학자였던 유희춘이 지금 우리가 매우 손쉽게 읽고 있는 한자의 음을 특별히 적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일기에서 한자의 음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이 글자들의 음이 박식한 유희춘의 수준에서도 그날 처음 알았거나,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에서는 맹자를 읽으며 글자의 음을 엉뚱하게 읽은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논어맹자등에 나오는 글자조차도 그 음이 혼동되거나 잘못 알려진 경우가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서는 한자의 정확한 음가가 밝혀지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서경의 특정 구절에서 자의 음을 로 읽는 것에 대한 논란을 적으며 유희춘이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은 자신도 그 이유를 몰라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의 기록은 흥미롭다. ‘자의 음을 라고 한글로 밝혀놓은 것이다. 이는 유희춘이 한글을 알고 있었으며 한자음 표기에서 한글의 효용성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자음의 혼란은 학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운서의 편찬이다.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운서는 고려 말 삼운통고가 있어 독서되고 있었지만 성조만 표시되어 있을 뿐 글자의 음이 적혀 있지 않아 불편했다. 삼운통고가 글자의 음을 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물론 표기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의 음을 표시한 최초의 운서는 한글 창제 후 편찬한 동국정운이다. 이후 중국 한자음을 표기한 홍무정운등의 운서나 중국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을 아울러 표기한 규장전운등 여러 종의 운서가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하게 되었다여러 운서의 성과와 관계에 대해서는 정경일, 한국 운서의 이해(아카넷, 2002) 참조.. 정확한 한자의 음을 알기 위해 운서를 읽기 위해서도 사대부들에게 한글 학습은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초로 한자의 음을 한글로 표기한 운서인 동국정운은 이런 혼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을 절충하여 통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자음의 음가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시도는 물론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 한자음을 중국의 음에 가깝게 변화시키려고 한 초기 운서편찬자들의 의도는 선명히 읽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서 한자의 음이 어긋나는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가진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초기 사전 편찬자들은 중국의 음이 원본이기 때문에 중국의 한자음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중국 중심적인 세계관이 당연하던 시대에 오히려 우리나라의 독자성을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3-2]

(박상순 문:) 태자선마(太子洗馬)에서 자는 앞서다라는 말로 마땅히 으로 읽어야 하지만 시속에서는 로 읽으니 당연히 로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대전과 언해에서 글자의 음이 같지 않은 것이 많은데 모두 세속의 음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박세채 답:) 마땅히 자로 읽어야 하고, 그 나머지는 마땅히 사서대전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한자음이 중국과는 크게 다르므로 진실로 명백한 것이 아니라면 우선 언해에 의하여도 무방하다.

太子洗馬, 洗之言先也. 當以先讀, 而諺音作世, 當以世讀否. 凡大全與諺解字音多有不同者, 率皆從諺否,

當以先字讀, 其餘當從大全. 然我國聲音與中國大異, 苟非十分明白, 則姑依諺解無妨. -朴世采, 南溪集46 答朴一和問 小學.

 

 

한자음의 변화와 혼란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박세채(1631~1695)는 중국 한자음에 대한 우리 한자음의 독자성을 인정하려는 인식을 보여주어 주목된다. 예문 3-2에서 太子洗馬의 자음 가운데 의 음이 사서대전과 언해에서 로 차이나는 현상을 말하며 기본적으로는 사서대전을 따라야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사용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했다. 이것은 조선 한자음에 대한 긍정의 인식을 보인 것이다.

 

박세채의 이러한 태도는 세종대왕이 한자음을 사대교린과 관계되는 것으로 파악하여 의주와 요동 등지에 사람을 파견하여 실제의 중국한자음을 배우게 하고자 하고세종실록25(1443) 1213., 동국정운을 통해 한자의 중국음과 한국음을 통합하려고 한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조선시대 17세기 사대부에게서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지적될 수 있겠지만 한글 학습을 통한 우리음의 자각과 더불어 사대부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창작하던 국문시가를 중요한 이유로 제시하고자 한다.

 

 

 

 

인용

목차 / 지도

I. 머리말

II. 사대부를 위한 번역

1. 번역의 전통과 사대부

2. 표준번역으로서의 언해

III. 사대부들의 우리말 음가의 표현

1. 한자음의 혼란과 운서의 편찬

2. 시가의 가창과 한글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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