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좀비어택’ 카드게임을 만들다
그럼 이제부터 ‘좀비어택’이란 게임의 탄생 비화를 들어보도록 하자. 어찌 보면 이건 첫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우연하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단재학교에서 유행어가 된 ‘밑도 끝도 없이’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 15년 9월 2일. 우리끼리 프로젝트 중 단재웹툰 그리기를 하는 아이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작년부터 일주일 중 3시간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시간인 ‘우리끼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의,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수업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끼리 회의를 하여 한 학기 동안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했으면 하는 것을 정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수업들은 단재웹툰 만들기, 팀별로 궁금한 내용을 조사해서 발표하기, 단재학교 티셔츠 디자인하기, 캐릭터 보고 따라 그리기 등의 다채로운 활동들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1년이 넘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아이들도 아이디어가 떨어졌고, 늘 하던 것(영화보기, 그림 그리기)만을 그저 하던 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며, 그로 인해 이 시간 자체가 지지부진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색다른 것을 생각해보고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2학기 시작과 함께 회의를 할 때, “이번 학기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 그걸 수업 시간에 해보자”고 전제를 달았던 것이다.
▲ 단재웹툰의 캐릭터 소개. 무려 이 캐릭터들도 13편의 웹툰을 만들었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팀별로 색종이 접기를 해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보자”라던지,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라던지, “다과회를 하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등등의 의견이 나온 것이다.
역시 이런 상황을 통해 볼 때마다 우치다 타츠루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말하고 싶은 게 만들어진다’는 통찰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 알게 된다. 아마도 누구도 회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계획을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이러 이러한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아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자리가 마련이 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에 말이 덧붙여지며, 여러 의견들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며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급조됐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자연스런 분위기속에서 계획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팍팍 튀는 여러 아이디어 속에 바로 바로 ‘보드게임 만들기’가 있었고 그 덕에 우린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 회의 결과 이렇게 다양한 수업내용이 만들어졌다.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보드게임 만들기’는 10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막상 ‘보드게임 만들기’라는 주제로 시작하긴 했지만, 난처하긴 매 한가지였다. 카드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블루마블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젠가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제한된 선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아무런 지침도 없이, 아무런 틀도 없이 만드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도, 오히려 사람은 그럴 경우 너무도 혼란스러워 시작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다.
▲ 열심히 회의를 하는 아이들. 머리가 아주 지끈지끈했을 거다.
아이들은 열띠게 토론을 했고 결국 카드 형식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요즘 『부산행』이란 영화로 핫한 ‘좀비’라는 소재를 얹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학생들은 겁도 많고 무서움을 많이 느끼면서도 짜릿한 쾌감 때문인지 ‘공포’를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여행을 가면 꼭 ‘공포체험’을 하려하고, 영화를 볼 때에도 꼭 ‘공포영화’만 보려 한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롯데월드에선 좀비특집을 했는데, 색다른 경험이라며 거기에도 갈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공포가 카드게임에 반영될 것은 뻔하디 뻔한 거였다. 이쯤에서 주제는 ‘좀비가 이기냐, 사람이 이기냐 그것이 문제로다’라 할 수 있다.
▲ 이런 괴기스럽고 요상한 것을 여학생들이 매우 좋아한다. 그러니 학교 여행에도 담력훈련은 꼭 들어간다.
드디어 아이들의 두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나쁘지만은 않다. 거기엔 ‘창조성’이란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에 나가보면 아이들은 모래에 손을 넣고 두꺼비집을 만든다. 그건 머지않아 바람에 부서질 것이고, 파도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아이들은 전혀 속상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두꺼비집을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한다. 어른의 관점으로 보면 ‘참 의미 없는 짓’이라 단정 지을 테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성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서질지라도 한낱 의미 없는 게 될지라도, 끊임없이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 그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카드게임의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그 순간 아이들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을 테지만, 무언가를 만든다는 뿌듯함에 표정은 해맑았다.
▲ 3주간 게임 룰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전체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고, 종이를 찍어 약식으로 카드까지 만들었다. 막상 게임을 해보니, 나름 전체적인 룰은 꽤 그럴듯하더라. 나름 무기로 좀비를 죽이는 맛도 있고,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맛도 있어, 긴장감이 넘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이 남았을 때 긴장도는 현격히 떨어지고 시간은 지지부진 길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며 미비한 부분들에 조금씩 다듬으며 게임을 완성시켜 나갔다. 그래서 막상 만들기 시작한지 3주 만에 ‘좀비어택 완전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좀비어택 고퀄리 카드까지 제작하며 완성을 드디어 했다.
인용
2. 모르기에 갈 뿐
8. 단재학교 영화팀 5번째 작품, ‘DREAM’ 제작기
10.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11. 돈 앞에서도 배려심을 발휘한 단재학교의 대중지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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