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좀비어택’이란 게임을 발표하기까지의 우여곡절
처음 이 게임을 만들 때만 해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함께 재밌게 해볼 생각만 있었지, 다른 곳에 알리거나 소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막상 미경쌤이 좋은 정보를 주긴 했지만, 과연 하게 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하지만 뭐든 이루어지려 하면 큰 지장 없이 이루어지곤 한다. 이럴 때 사람은 ‘필연’이란 딱지를 붙여, ‘그건 애초에 될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려 한다. 애초에 될 일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일이었는지는 각자의 판단마다 다를 테니 놔두기로 하고, 잠시 영화 『타짜』에 나오는 내레이션을 들어보도록 하자.
곤이가 스물여섯 살 때 목숨을 못 끊었죠. 생각해보면 다 우연이예요. 그날 곤이는 박무석이를 만났고 곤이 누나는 남편에게서 위자료를 받아왔고 우연 참 지독해요. 박무석이를 찾아 반년동안 전국을 뒤졌대요. 그러다 인천의 허름한 화투판에서 더 지독한 세 번째 우연을 만나요.
가구 공장 노동자였던 곤이가 화투판의 기술자 타짜가 되기까지 지독한 세 명의 우연들과 겹쳤기 때문이었음을 설명한 내레이션이다. 하나의 우연이 겹치기도 힘든데 세 우연이 얽히고설켰으니 이건 우연이라기보다 필연이라 해도 될 정도다.
▲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여 카드게임을 만들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도 마치 위의 내레이션과 같이 여러 우연이 섞이며 만들게 된 것이다. 위의 내레이션을 패러디해서 말해보도록 하자.
생각해보면 다 우연이예요. 분명한 건 그날 우린 보드게임을 만들었고, 그날 미경쌤이 와서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봤고, 한참을 보던 미경쌤은 ‘아이디어 발표대회’ 신청원서를 나에게 주면서 “아이들이 게임을 만들었네요. 그거 발표대회에서 발표하면 좋을 거 같은데요”라는 말을 했고 우연 참 지독해요.
우연과 우연이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상이 만들어지는 매우 우연적인 과정인 셈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과연 우리가 발표대회에 나갈 수 있는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발표대회는 1차 서류심사, 2차 심사자들 앞에서 발표, 3차 꿈틀이 축제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꾸며진다. 만드는 것이야 서로 의견을 모아 만들면 되지만, 막상 발표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건 어디까지나 경쟁이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무대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어려움들이 있으니 얼핏 아이들에게 “이런 좋은 발표대회가 있고, 상품도 준다고 하니까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다가, 아이들은 단번에 “그런 생각일랑 넣어두세요”라고 거절을 당했다. 아무래도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닌, 발표를 두 번이나 해야 하고 상 또한 나눠야만 하니, 그럴 바에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처음에 운을 뗐을 땐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외쳤다. 그래서 규빈이 설득이 제일 먼저였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당당히 선, 현모양처 단재팀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 간 아이가 바로 규빈이다. 그러니 발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것만큼이나 규빈이의 의사를 듣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규빈이에게 가서 대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가 이미 만든 게임이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규빈이는 면접이 얼마 남지 않아 정신이 없기에,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것 같다고 거절하더라. 그 마음이 뭔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밀어붙이진 못하고, “발표한 사람에겐 그만한 혜택을 더 줘야지”라는 말로 여지를 두었다.
모둠활동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되는 게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만약 그 부분을 얼버무리며 ‘어쨌든 모두 다 함께 한 것이기에, 모두 같은 점수를 받아야지’라고 했다간, 오히려 열심히 한 사람만 바보가 되어 누구 하나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둠활동은 협동심을 높이고 서로에 대한 배려심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것임에도 무임승차를 허용하면 오히려 극단적인 이기주의만 판치게 되어 개별활동을 하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
▲ 모둠활동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도 그런 부분에선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발표를 준비하고 막상 무대에 서서 발표한 사람에겐 조금 더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은 손사래를 쳤음에도 규빈이는 “그럼 한 번 해봐요”라고 말하더라. 바로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 덕에 우리는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꿈틀이 축제 때는 당당하게 발표까지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발표대회에 나갔고 엄청난 상까지 받게 됐다. 물론 상이 전부는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의견을 모으고 서로를 배려하며 만들어갔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대에 서서 상을 받을 때 그걸 보고 있는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하더라. 함께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현모양처 단재팀 모두 모두 애썼고, 모두 모두 자랑스럽다.”
▲ 1차 발표대회 전에 리허설을 하는 아이들.
다음 후기는 마지막 후기로 김민석 감독이 만든 『DREAM』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엔 김민석의 성장담도 들어 있고, 단재학교 영화팀의 저력도 숨어 있으니, 그리고 가장 핫한 이야기인 상금 분배에 대한 뜨거웠던 신경전을 다루며 후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무대엔 4명만 올라갔지만, 7명의 아이들이 협동하여 만들어낸 게임 '좀비어택'. 아주 아주 재미지다오~
▲ 규빈이와 재홍이가 열심히 만든 발표자료.
인용
2. 모르기에 갈 뿐
8. 단재학교 영화팀 5번째 작품, ‘DREAM’ 제작기
10.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11. 돈 앞에서도 배려심을 발휘한 단재학교의 대중지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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