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른의 관점을 버리고 학생의 성장을 바라봐야 한다
단재학교에선 재작년부터 트래킹을 하고 있다. 2013년부터 영화팀은 등산을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갔기 때문에, 그걸 영화팀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바로 트래킹이었다.
처음엔 등산도 하고, 가볍게 산책도 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인데, 아이들은 트래킹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저건 등산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는 것에 꽂힌 듯했다. 아무래도 움직이길 좋아하지 않고 최대한 걷지 않으려 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그래서 사전에서 찾아보니 ‘트레킹trekking은 느리지만 힘이 드는 하이킹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개념 자체가 되게 아리송송한 편이기에, 서로가 원하는 것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우면산 둘레길을 갈 땐 교사가 계획하고 학생은 따르는 방향으로 했지만, 그 이후부턴 아이들이 계획을 짜서 함께 움직이는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 야외활동이 많은 단재학교 답게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지민이의 고군분투는 그 아이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작년엔 금요일마다 바쁜 일정들이 꽉 차 있어서 트래킹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남산을 따라 거닐었던 게 작년의 유일한 트래킹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트래킹이라는 것 자체가 어색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계획을 짜야 하는 아이들은 끊겨진 흐름에 기겁해야 했던 것이다. 승태쌤은 수요일 오후에 학생회장인 지민이에게 “금요일엔 트래킹을 가니, 몇 가지 계획안을 만들어 오면, 목요일엔 아이들과 회의해서 결정하는 걸로 하자”고 말했다. 지민이는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한 번도 계획을 짜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도 못 댔다. 이럴 땐 차라리 자신이 아는 정도 내에서 조금이라도 해보며 도움을 요청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누군가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탓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목요일 아침에 학교에 온 지민이는 “아는 곳도 없고,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하는 줄 몰라서 아이들과 회의하여 정하도록 해볼게요.”라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건 너무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방기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떠맡으려 하는 것이 지민이에겐 얼마나 큰 변화인 줄 알기에 가만히 두고 보기만 했다. 사람의 성장은 일직선상으로 진행되지 않고 비약적으로, 불규칙적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순간 생각이 많아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기면 책임감을 가지기도 한다. 예전의 지민이었으면 회장을 맡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선 짐짓 남의 탓을 하며 내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도망치려 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해내려 하는 것이니 응원해줄 수 있었다.
아이들과 만나며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어른의 관점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하는 점이다.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성숙해보이고, 미진해보이며, 늘 책임감도 부족하고,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만 보여 못마땅한 것만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면서도 유독 아이들에겐 완벽한 인간상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주기보다 가로막는 역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에선 어른의 관점(이상적인 관점, 불멸의 아이를 추구하는 관점)을 버리고, 어떻게 아이의 관점(현실적인 관점, 역사적인 아이를 받아들이는 관점)을 회복하려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 당당하게 앞에 서서 아이들을 이끌며 회의를 진행한다.
우리 지금 노는 건가요?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았고 회장인 지민이는 전면에 서서 회의를 진행한다. 지민이는 “트래킹을 가고 싶은 장소를 말해주세요”라고 안건을 이야기하니, 아이들은 각자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조차 진지함보다는 장난식으로 받아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올림픽공원’, ‘석촌호수’가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이 두 곳은 단재학교에서 가깝기 때문에 체육활동을 하러 가는 곳임)했고, 심지어 제주도, 일본과 같이 허무맹랑한 얘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그러다 간혹 ‘하늘공원’, ‘검단산’과 같이 꽤 그럴듯한 의견이 나오면 상황이나 사정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비난부터 하기에 바쁘다. 물론 단재학교는 소규모 학교이기에 서로가 친하고 어떤 생각이든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에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난을 쳐야 하는 순간이 아닌, 진지해야 하는 순간마저도 그걸 구분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성장해 간다는 것은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시선을 거두어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려하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어떤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시나브로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무언가를 정하고 있다.
인용
1. 어른의 관점을 버리고 학생의 성장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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