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노수신 - 만김대간(挽金大諫, 鸞祥)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노수신 - 만김대간(挽金大諫, 鸞祥)

건방진방랑자 2019. 2. 25. 16:40
728x90
반응형

대사간 김난상(金鸞祥)을 애도하며

만김대간(挽金大諫)

 

노수신(盧守愼)

 

 

珍島通南海 丹陽近始安

진도통남해 단양근시안

風霜廿載外 雨露兩朝間

풍상입재외 우로양조간

白首驚時晩 靑雲保歲寒

백수경시만 청운보세한

平生壯夫淚 一灑在桐山

평생장부루 일쇄재동산 穌齋先生文集卷之六

 

 

 

 

 

 

해석

珍島通南海 丹陽近始安

진주는 남해와 통하고 단양은 시안에 가깝다.

風霜廿載外 雨露兩朝間

풍상으로 20년을 시달렸으나 은혜를 두 왕조에서 누렸구나.

白首驚時晩 靑雲保歲寒

흰머리 느지막한 때가 놀라운데 청운에도 세한의 지조 지켰네.

平生壯夫淚 一灑在桐山

평생 함께 한 장부의 눈물, 한 번 교동의 산에 뿌리노라. 穌齋先生文集卷之六

 

 

해설

이 시는 대간 김난상을 애도하며 지은 시이다.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노수신은 진도에, 김난상은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노수신은 시안으로, 김난상은 단양으로 이배(移配)되었다. 노수신과 김난상은 중종 때 벼슬을 시작하여 명종 때 고초를 겪고 선조 때 조정으로 다시 복귀되었으니, 20여 년간 풍상을 겪고 두 임금께 은총을 입었다. 김난상은 벼슬에 물러나 있다가 54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백발이 되어 물러날 때를 알았고 청운의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절개를 지켰다(김난상은 정언(正言) 벼슬의 박점(朴漸)이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고 탄핵했으나, 사간원의 동료들이 반대하자 자신을 탄핵하고 벼슬에서 물러났음). 평생을 함께한 김난상을 위해 그의 무덤이 있는 강화도 교동에서 눈물을 흘린다.

 

허균(許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답이생서(答李生書)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언급하면서 노수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외져서 바다 모퉁이에 있으니 당()나라 이상의 문헌은 까마득하며, 비록 을지문덕(乙支文德)진덕여왕(眞德女王)의 시()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었던 것인지는 감히 믿을 수 없소. 신라(新羅) 말엽에 이르러 최치원(崔致遠) 학사(學士)가 처음으로 큰 이름이 났는데, 오늘로 본다면 문()은 너무 고와서 시들었으며 시()는 거칠어서 약하니 허혼(許渾)ㆍ정곡(鄭谷) 등 만당(晩唐)의 사이에 넣더라도 역시 누추함을 나타낼 텐데, 성당(盛唐)의 작품들과 그 기법(技法)을 겨루고 싶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려(高麗) 시대의 정지상(鄭知常)은 아롱점 하나는 보았다 하겠지만, 역시 만당(晩唐) () 가운데 농려(穠麗)한 시 정도였소.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는 더러 맑고 기이(奇異)하며 진화(陳澕)ㆍ홍간(洪侃)은 역시 기름지고 고우나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급기야 이제현(李齊賢)에 이르러 창시(倡始)하여, 이곡(李穀)이색(李穡)이 계승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ㆍ김구용(金九容)이 고려 말엽의 명가(名家)가 되었지요.

조선 초엽에 이르러서는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이 그 명성을 독점하였으니 문장(文章)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달()했다 칭할 만하여 아로새기고 빛나곤 해서 크게 변했다 이를 만한데 중흥(中興)의 공로는 이색(李穡)이 제일 크지요. 중간에 김종직(金宗直)이 포은(圃隱)ㆍ양촌(陽村)의 문맥(文脈)을 얻어서 사람들이 대가(大家)라고 일렀으나 다만 한()스러운 것은 문규(文竅)의 트임이 높지 못했던 것이오.

그 뒤에는 이행(李荇) 정승이 시에 입신(入神)하였으며, 신광한(申光漢)정사룡(鄭士龍)은 역시 그 뒤에 뚜렷하였소. 노수신(盧守愼) 정승이 또 애써서 문명을 떨쳤으니, 이 몇 분들이 중국(中國)에 태어났다면 어찌 모두 강해(康海)이몽양(李夢陽: 前七子詩文에 능함) 두 사람보다 못하다 하리오?

당세의 글하는 이는 문()최립(崔岦)을 추대하고 시()이달(李達)을 추대하는데, 두 분 모두 천 년 이래의 절조(絶調)지요. 그리고 같은 연배 중에서는 권필(權韠)이 매우 완량(婉亮)하고, 이안눌(李安訥)이 매우 연항(淵伉)하며 이 밖에는 알 수가 없소[吾東僻在海隅, 唐以上文獻邈如. 雖乙支, 眞德之詩, 彙在史家, 不敢信其果出於其手也. 及羅季, 孤雲學士始大厥譽. 以今觀之, 文菲以萎; 詩粗以弱. 使在許鄭間, 亦形其醜, 乃欲使盛唐爭其工耶? 麗代知常, 足窺一斑, 亦晩李中穠麗者. 仁老奎報, 或淸或奇, 陳澕洪侃, 亦腴艶, 而俱不出長公度內耳. 及至益齋倡始, 牧繼躅, , 爲季葉名家. 逮國初, 三峯陽村, 獨擅其名, 文章至是, 始可稱達. 追琢炳烺, 足曰丕變, 而中興之功, 文靖爲鉅焉. 中間金文簡得圃陽之緖, 人謂大家. 只恨文竅之透不高. 其後容齋相詩入神, 鄭亦瞠乎其後. 蘇相又力振之, 玆數公, 使生中國, 則詎盡下於康李二公乎? 當今之業,, 文推崔東皐, 詩推李益之, 俱是千年以來絶調. 而儕類中汝章甚婉亮; 子敏甚淵伉; 此外則不能知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338~340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우리 한시를 읽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정욱 - 송인부수안군(送人赴遂安郡)  (0) 2019.02.25
노수신 - 체우상(遞右相)  (0) 2019.02.25
이황 - 야지(野池)  (0) 2019.02.25
정사룡 - 기회(記懷)  (0) 2019.02.25
김정 - 증석도심(贈釋道心)  (0) 2019.02.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