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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자한 - 27. 한계에 이르러야만 가치를 알게 되는 것들 본문

고전/논어

논어 자한 - 27. 한계에 이르러야만 가치를 알게 되는 것들

건방진방랑자 2021. 10. 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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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계에 이르러야만 가치를 알게 되는 것들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氏曰: “小人之在治世, 或與君子無異. 惟臨利害, 遇事變, 然後君子之所守可見也.”

氏曰: “士窮見節義, 世亂識忠臣. 欲學者必周於德.”

 

 

 

 

 

 

해석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공자께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걸 아느리라.”라고 말씀하셨다.

氏曰: “小人之在治世, 或與君子無異.

범조우(范祖禹)가 말했다. “소인은 치세(治世)엔 혹 군자와 함께 다르지 않다.

 

惟臨利害, 遇事變,

오직 이해(利害)의 상황에 이르거나 갑작스런 상황에 닥치고 난 후에야

 

然後君子之所守可見也.”

군자가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氏曰: “士窮見節義,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선비는 궁해지면 절의를 보이고,

 

世亂識忠臣.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충신을 알아보게 되며,

 

欲學者必周於德.”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덕에 넉넉해지려 한다.”

 

김정희1844년에 제주도 유배지에서 논어’ ‘자한(子罕)’편의 이 글에 담긴 뜻을 세한도로 그려내고 안중근은 19103월에 만주 뤼순(旅順) 감옥에서 이 글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조선 전기의 이행(李荇)이 유배지 거제도에 지은 작은 정자를 세한정(歲寒亭)이라 하고 김부필(金富弼)이 거처하는 당을 후조당(後彫堂)이라 한 것은 군자(君子)는 환난(患難)을 당하더라도 지조(志操)를 지켜야 한다는 이 글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성어가 이 장()에서 나왔다.

세한(歲寒)은 날이 추워졌다는 말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짐을 비유한다. 이런 역경(逆境)에도 신념을 지켜나가겠다는 굳은 마음을 세한심(歲寒心)이라 하고 시절이 어려워도 절조(節操)를 잃지 않겠다는 맹세를 세한맹(歲寒盟)이라고 하며 그 절조를 세한조(歲寒操)라 한다. 연후(然後)는 그렇게 된 뒤라는 뜻이다. 송백(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상록수를 가리킨다. ()는 조()와 같아, 시든다는 뜻이다. 조락(凋落)의 의미이다. 후조(後彫)는 뒤늦게 시든다는 말인데, 사실은 다른 초목들이 모두 시들어도 끝까지 시들지 않고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송백(松柏)을 후조(後彫, 後凋)라 부르게 됐다.

역사에는 지조(志操) 있는 사람의 일화가 많다. 한나라 성제(成帝) 때 주운(朱雲)의 절함(折檻) 고사도 한 예이다. 주운은 성제에게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을 주시면 간신 한 사람을 참수하여 사람들을 징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상방서의 칼은 말을 벨 정도로 예리하다고 해서 참마검이라 했다. 성제가 간신이 누구냐고 묻자 주운은 성제의 인척인 장우(張禹)라고 대답했다. 성제가 노하여 그를 끌어내라고 했지만 주운은 직간(直諫)하면서 어전(御殿)의 난간을 꽉 붙잡고 있었으므로 난간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이 시대에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전형(典型)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歲寒圖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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