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이 시집가던 날의 추억과 아련히 겹치는 현재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ㆍ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 여덟 해 전의 일이다.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效婿語, 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
그런데도 연암은 그 비통함을 말하는 대신, 전혀 엉뚱하게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자신과의 사이에 있었던 절로 미소를 자아내는 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있다. 신부 화장을 하고 있던 누님 곁에서, 허공에 대고 발을 동동거리며 새신랑 흉내로 누이를 놀리던 여덟 살짜리 철없던 동생. 누이는 부끄러움을 못 이겨 “아이! 몰라.”하며 머리 빗던 빗을 던졌고, 그 빗에 이마를 맞은 동생은 “때렸어!”하며 악을 쓰고 울었다. 그래도 누이는 “흥!”하며 야단하는 대신, 패물 노리개를 꺼내 주며 동생을 달래었다. 아! 착하고 유순하기만 한 누이여.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으니, 덧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 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 立馬江上遙見, 丹旐翩然, 檣影逶迤, 至岸轉樹, 隱不可復見.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江光如鏡, 曉月如眉. 泣念墮梳. 獨幼時事歷歷, 又多歡樂. 歲月長, 中間常苦離患, 憂貧困, 忽忽如夢中. 爲兄弟之日, 又何甚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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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가 떠나가고 있다. 자형, 그리고 조카아이들과 하직의 인사를 나누고, 배는 새벽 강물 위로 미끄러져 간다. 바람에 펄럭거리는 붉은 명정, 돛대의 그림자를 흔드는 푸른 물결, 그나마도 언덕을 돌아가서는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처남! 세월이 좋아지면 내 수이 돌아옴세”하며 떠나던 자형의 말이 귀 끝에 맴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알기에 그 허망한 기약은 외려 가슴 아프다. 이제 누님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는가. 그러나 보라. 강물의 원경으로 빙 둘러선 새벽 산의 짙은 그림자는 마치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배 떠난 뒤 잔잔해진 수면은 내가 침을 뱉어 더럽혔던 그 거울 같지 아니한가. 또 저 너머 초승달은 화장하던 누님의 눈썹만 같다. 그러고 보면 누님은 떠난 것이 아니라, 강물로 달빛으로 먼 산으로 되살아나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다.
▲ 전문
인용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3-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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