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그리고 나서 글은 갑자기 계우季雨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이번에는 술미치갱이 이야기다. 술을 오죽 좋아 했으면 제 호를 주성酒聖이라 했을까. 성聖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니 그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닌 게다.
그런 그를 보고 이번엔 연암이 정문에 일침을 놓는다. “술에 취해 잊으려 말고, 맨 정신으로 잊어보게. 이왕지사 미치광이가 되려거든 큰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무엇을 생각지 말라는 것인가? 무슨 생각을 걷어내라 함인가? 기껏 겉만 번드르한 자들을 향해 혐오감을 비치는 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오히려 아직 그가 제 정신을 지녔다는 징표다. 큰 미치광이는 그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노닌다. 송욱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 제 답안지에 제가 점수를 매기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술 먹고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자네는 아직 미치광이가 아닐세. 정말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어줍잖게 미치지 말고 말일세. 정말이지 나도 미치고만 싶네 그려.
그리하여 계우는 제 집의 이름을 ‘염재念齋’라 하였다. 그렇다면 염재는 ‘생각하는 집’인가? 아니면 ‘생각을 잊는 집’인가? 이 집의 화두는 바로 ‘생각’이다. 그놈의 생각만 없어도 한 세상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바깥 세상의 소리도, 방안의 물건도 모두 제 자리에 놓여 있듯, 송욱은 여태도 술 덜깬 표정으로 그 이불 속에 팔자 좋게 누워 있었을 터인데, 그놈의 생각 때문에 그는 극심한 자아분열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염재’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집’이겠구나.
연암은 이렇게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송욱의 미친 짓으로 스스로를 권면하겠다니, 자신도 송욱과 같은 미치광이가 되었으면 싶다는 뜻이다. 그도 아직은 계우처럼 맨 정신으로는 미칠 수가 없었던 게다. 이 세상을 버텨내려면 아예 송욱처럼 신나게 미쳐 보든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그 미치겠다는 ‘생각’마저 걷어내 버리든지 할 일이다. 어정쩡하게 술에 취해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치자! 그것도 완전히 미치자!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가 되자! 그것만이 이 흐린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 될 테니까. 나는 연암의 이 글에서 그 배면에 묻어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읽는다.
▲ 전문
인용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 『논어論語』 「양화陽貨」 12에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라 한데서 따온 말이다.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함을 이른다. 집주集注는 실상은 없이 이름만 훔쳐 항상 남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는 자를 말한다고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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