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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편해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편해

건방진방랑자 2021. 6. 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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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 제십일(先進 第十一)

 

 

편해(篇解)

 

 

주희는 이 편을 가리켜 공자가 제자들의 현부(賢否: 현명한 정도)를 평한 것이 많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이 편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 만큼 전편이 공자만년의 학단에 있어서의 사제(師弟)의 언행을 채록한 양식으로 일관 되어 있는 유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보편타당한 교훈이라든가 대기설법(對機說法)적인 교훈이나 자술적 교훈이 아닌,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들에 관한 공자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의 성격이나 덕성, 그리고 만년 학단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추상적 메시지가 아닌 인간 내음새로 가득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에는 공자말년 노나라 공자학단을 리드했던 중요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 하고 있다. 우선 제2장에 그 유명한 사과십철(四科十哲)등장하고 있다: 안연(顔淵)ㆍ민자건(閔子騫)ㆍ염백우(冉伯牛)ㆍ중궁(仲弓)ㆍ재아(宰我)ㆍ자공(子貢)ㆍ염유(冉有)ㆍ자로(子路)ㆍ자유(子游)ㆍ자하(子夏). 이들은 신입생들이 아닌, 공자의 장정에 참여한 관록이 있는 거목들이며 또 말년학단을 리드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제17장에서 자고(子羔), 증삼(曾參), 자장(子張, 단손사顓孫賜) 3인이 추가된다. 그 외의 장에서는 남용(南容, 5), 공서화(公西華, 2125), 증석(曾皙, 25)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6명이나 된다.

 

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편이 공야장(公冶長)의 전반부(1~13)옹야의 전반부(1~14)인데, 그런 의미에서 공야장, 옹야, 선진(先進)3편은, 세부적인 편집의도가 사정은 차이가 있다 해도, 동성질의 자료를 공유하며 전체적으로 유사한 성격의 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편의 제일 마지막에는 논어에서 가장 긴, 315()에 달하는 하나의 단편문학이 붙어있다. 자로ㆍ증석ㆍ염유ㆍ공서화가 공자를 시좌(侍坐)하고 벌어지고 있는 이 마지막 장의 분위기는 공자 말년학단의 호학의 풍경을 전하는 것처럼 꾸며져 있고, 또 사제(師弟)의 언행을 수집한 전편의 분위기를 마무리하는 총결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우발적인 편입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선진(先進)편은 25이 성립한 시기에 최종편집된 것으로 확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25장은 전혀 공자학단의 실제 광경과는 무관한 픽션이다. 직전제자의 구송에 의거하지 않은 후학의 상상력에 의한 문학작품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25장은 노나라 말년 공숙(孔塾)의 리얼리티가 거의 사라진 시대에 성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공자의 사후 100년을 넘어선 45전 제자의 시대의 자료일 것이다.

 

따라서 선진편의 성립은 맹자가 산 시대 즈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이 후대에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 내용이 편집 당시의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6장의 계강자가 묻는 장면은 옹야2와의 애공이 묻는 장면과 실제적으로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니까 이 두 파편은 동일사실의 이전(異傳)인 것이다. 그리고 제5장의 남용(南容) 이야기도 공야장(公冶長)1B의 남용이야기와 동일사실(공자의 형의 딸을 남용에게 시집보내다)의 이전(異傳)이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나는 동일자료의 다른 전승의 문제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마지막 제25장과 제5ㆍ제62, 3장을 제외한 나머지 22장은 모두가 공자만년학단에 있었던 직전제자들로부터 유출되어 나온 전송(傳誦) 자료들로 보여진다. 이러한 자료들을 제25장을 창조한 모 그룹이 최종편집했을 것이다. 25장에 증자의 아버지인 증석(曾晳)이 아주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미화되고 있어서, 우리는 이 편의 편집자가 증자의 문인(門人)이라고 유추해볼 수도 있지만, 17증삼은 아주 노둔한 녀석[參也魯]’이라는 쿨한 멘트가 있고, 또 일체 증자(曾子)’로 호칭하는 파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본편은, 말년 공문에 있어서 증자가 전혀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무명의 신입생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나이의 자유(子游)ㆍ자하(子夏)는 사과십철에 끼었는데 증삼은 명함도 못 내밀었던 것이다. 25장에 증석이 올라간 것도, 이미 증삼의 학문이 미쇠해진 상황을 역으로 반영할 수도 있다. 25장의 증석의 존재는 관념적인 픽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본편은 다양한 70제자 전승이 시대를 걸러가며 각 학파들의 학통에 의해 경쟁적으로 축적되어 온 것을 증자의 문하가 아닌 모 그룹의 사람들이 제25장이 성립했을 즈음에 편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년 공문의 분위기를 전하는 제자 군상(群像)의 이미지가 잘 부각된 탁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편은 제자의 현명함과 현명치 못함을 논평한 공자의 말씀이 많다. 모두 25장이다.

此篇多評弟子賢否. 凡二十五章.

 

호인이 말하였다: “이 편에서 민자건(閔子騫)의 언행을 기록 한 것이 4장이 되는데, 그 중 1장은 곧바로 민자(閔子)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 민자건에 관한 것은 민자건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

胡氏曰: “此篇記閔子騫言行者四, 而其一直稱閔子’, 疑閔氏門人所記也.”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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