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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학이 제일 - 1. 배우니 기쁘고, 찾아오니 즐겁고, 인정욕이 없으니 군자로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학이 제일 - 1. 배우니 기쁘고, 찾아오니 즐겁고, 인정욕이 없으니 군자로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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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우니 기쁘고, 찾아오니 즐겁고, 인정욕이 없으니 군자로다

 

 

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 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1-1.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子曰)의 의미

 

자왈(子曰)’이라는 표현은 논어에서 모두 예외없이 공자님께서 말씀 하신다는 뜻이다. 이때 라는 것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높여 부른 말이다. 제자들이 아닌 타인들, 즉 방외(方外)의 사람들이 말할 때는 공자왈(孔子曰)’과 같이 보다 객관화된 표현을 쓴다. 그리고 라는 것은 매우 특이한 용법이다. 아마도 공자 이전에는 ()’라는 것은, 성씨를 나타내거나 특별한 작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었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의 자()의 첫글자가 로 시작하는 예가 많은데, 아마 그것도 그런 과거의 신분적 유습이 보편화된 특수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공자학단으로부터 의 의미가,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master’, ‘teacher’의 뜻을 갖는 맥락으로 통용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자가 신분과 관계없이 유덕자(有德者)의 존칭으로 사용된 것은 공자학단의 용례로 보편화된 것이다. 다음 구절유자왈(有子曰)’과 같은 표현도, 그것은 유약(有若, 여우 르우어, You Ruo)의 제자들이 그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자왈(子曰)’과 구분키 위하여 유자왈(有子曰)’이라고 한 것이다.

 

 

()의 의미

 

논어의 관()을 차지하는 이 말은 얼핏 생각하면 매우 진부하게 들린다. ‘배워서 예습ㆍ복습 잘 하니 기쁘다는 얘기가 뭐 그다지도 위대한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한의 말이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창세기의 말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고 비속하고, 너무 일상적인 쇄사(瑣事)로 들린다. 여기에 우리는 해석학적 인식의 지평의 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공자 전기작가들이 이 세 마디의 함축적인 공자의 말을 공자의 청년시절, 그러니까 왕성하게 공부하려고 하던 시절의 의욕이 넘치는 언급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은 공자의 전 생애를 압축시킨 말년의 달인으로서의 회상으로 풀이한다. 대철인(大哲人)이 죽기 전에 그의 전 생애에 대해 남긴 매우 함축적인 언사였을 것이다. 이 언급이 바로 유자13세 연하, 33세ㆍ36세ㆍ43세 연하설도 있다와 증자46세 연하와 같은 공자 말년의 제자들의 말과 같이 편집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정황을 시사한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공자의 ()’의 의미는 반드시 일차적으로 공자라는 발신자(S1)와 수신자인 그 제자들(R1) 사이에서 통용된 이해구조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우리말로 공부하고 예습 복습 잘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발신자(S2)와 오늘날의 수신자(R2) 사이에서 일어난 이해의 구조 속에서 해석된 것이다. 단순히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고 하는 현재의 우리말의 메시지(M2)가 의미하는 바는 모두 우리 현존재의 일상적 체험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학교에 가고, 학교에 가서 영어ㆍ수학 공부하고, 집에 와서 예습 복습 잘 하다가 언뜻 뭔 뜻인지 깨달음이 올 때, 즐거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옆의 친구나 엄마에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를 외친다면 과연 그것이 정당한 논어의 이해가 될 것인가?

 

오늘 나의 논어이해는 분명 나의 체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험의 의미체계는 반드시 공자와 공자제자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MIR1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어떤 상황에 맥락적으로 상응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S2   S1

Response
반응의 체계

상응(해석)

Response
반응의 체계
R2   R1

S: source / R: receptor

 

공자는 우리처럼 학교에 다니고 학점을 따고 입시를 걱정하고 박사학위를 획득할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니다. 공자는 기존의 어떤 커리큐럼이 존재하고 그 커리큐럼이 규정하는 제도권내에서 배움을 지향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공자 이전에도 궁정내에서 국자(國子)를 가르치는 사씨(師氏)ㆍ보씨(保氏)와 같은 관학이 있었고, 궁정 밖에도 상()ㆍ서()ㆍ학()ㆍ교()나 그 이전의 고대전통을 이은 성균(成均)ㆍ고종(瞽宗)ㆍ반궁(泮宮), 그리고 상상(上庠)ㆍ동서(東序)와 같은 제도교육이 엄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 당대에는 이러한 교육기관들이 주나라 종실의 권위 몰락과 더불어 생명력을 상실했으며, 귀족 교육을 담당했던 악관(樂官)이나 집례자(執禮者) 전서자(典書者)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녹(祿)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자는 이러한 시대에 과거 귀족자제만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배움의 패러다임을 창출하려고 노력했다. 공자가 말하는 ()’이란 바로 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서의 학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그리고 그러한 동경은 관념적인 성격이 아니라 실제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무형문화재들을 발굴해가면서 그들이 보지하고 있는 사문(斯文)의 예술을 습득하는 실증적 과정이었다.

 

그가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이라 했을 때의 은 구체적으로 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일생을 통해 추구한 학()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Wissenschaft)’이 아닌, ‘()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로 통칭되는 육예(六藝)를 말한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ㆍ악()이라는 개념이다. 중국고대의 관립교육기관의 교관(敎官)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모두 악사(樂師)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국립국악원의 정악 악사들이 다 궁정학교의 최고급 교수들(professors)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실제로 모든 궁정예법을 정교하게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외교적ㆍ의례적 상황에서는 어떤 제기를 설하고, 어떤 의복을 입고, 어떤 가락의 어떤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지, 그 세목을 다 알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고대사회에서 예()라는 것은 악()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악이 있어야 예가 예다워지고, 악도 예가 있어야 악다워지는 것이다. 고대사회의 문화의 핵심은 예와 악이 조화된 장에 참가한 사람들이 정중한 황홀경을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카스적인 것과 아폴로적인 것이 조화된 세계였다. 예기』 「악기에 악()이란 천지의 화(), ()란 천지의 서()라고 하여 예ㆍ악을 같이 논한 것도 이러한 바카스적 화()와 아폴로적인 서()의 혼융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육예(六藝)는 이러한 예악사상의 자유로운 변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 할 때, 우선 갈 ()’ 자가 정확하게 학()을 반복하여 목적으로 받은 지시대명사가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구어의 리듬에서 발생한논어의 문체는 당대의 구어였다 막연한 조사에 불과한 것이다. ‘()’은 학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 익힌다)’이라는 것은, 학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를 갖는다는 것이다.

 

 

()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피상적으로 읽어, ‘시습지(時習之)’때때로 익힌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서 때때로(occasionally)’의 뜻이 아니라 때때로’ ‘때에 맞추어(timely)’의 뜻이다. 율곡이 이를 흔하여 이르기를:

 

ᄌᆞᄀᆞᄅᆞ샤ᄃᆡ ᄒᆞᆨᄒᆞ야 시로 습ᄒᆞ면 ᄯᅩᄒᆞᆫ 열ᄒᆞᆸ디아니랴

 

율곡이 시로 습ᄒᆞ면이라 한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때에 맞추어로 해석한 황간의 소를 박()하여 줄곧 계속하여 익힌다[時時習之]’의 뜻으로 새기고 있으나, 내가 생각컨대 다산의 생각은 암암리 주희의 설에 치우쳐 있다. 다산은 대체로 고주를 반박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 구절의 해석에 있어서는 황간의 설이 더 적확하다. 다산의 고금주는 때로 발명하는 바가 있으나 많은 경우 너무 사소한 문제에 구애되어 대체(大體)를 보지 못한다. 문무(文武)가 통합된 육예를 익히는 과정이란 반드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서()ㆍ수()를 할 수는 있으나 사()ㆍ어()를 할 수는 없다. 장년이 되어도 여름의 맑은 날씨에 말달리고 활을 쏠 수는 있으나 추운 겨울날씨에 빙판에서 말달리는 일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황간은 신중시(身中時), 연중시(年中時), 일중시(日中時)의 삼시(三時)를 말하고 있다. 배움의 익힘이란 내 몸의 상태, 즉 유()ㆍ약()ㆍ장()ㆍ강()ㆍ애()ㆍ기() 등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익힘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요(身中時), 또 계절의 형태에 따라(年中時), 또 하루 중에서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日中時) 익힘이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가르침이요, ()의 가르침이요, 노자동선시(動善時)’라 말한 바요, 맹자성지시(聖之時)’라 한 뜻의 ()’일 것이다. 때를 잘못 맞추어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자는 평생을 통해 때에 맞추어끊임없이 정진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한 뜻이 어찌 요즈음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가련한 수험생들의 학습(學習)에 비유할 수 있으리오.

 

카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는 이 시()는 실자(實字)로서 때에 맞다라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별 의미 없는 조사로 쓰였으며, 그러한 조사적 용법이 고대의 용법이라고 주장한다. 헌문14시연(時然)’도 그러한 뜻이라 한다. 그렇다면 배우고 이에 익힌다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대단한 신석(新釋)인 것처럼 주장하나 별 설득력이 없다.

 

 

()과 락()

 

불역열호(不亦說乎)’라 한 구문에서 ()’의 뜻도, 딴 즐거움도 있는데 이것 또한즐겁다라는 식으로 새기면 안된다. 여기서 이란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또 동시에 타인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강조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이 아니라 기쁨의 절대적 경지를 구가하는 것이다.

 

주자집주본에는 不亦說乎로 되어 있지만 정평본(正平本), 황본(皇本)에는 모두 不亦悅乎로 되어있다. 주자는 과 같다고 주석을 달고 있지만 원래의 하얀집해본은 당초에 로 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에 나오는 구문의 불역락호(不亦樂乎)’()’과 첫 구문의 ()’은 어떻게 다른가? 반드시 명료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 = 은 나의 실존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뜻이요, ‘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한다. 열은 즉자적(卽自的)이요, 락은 대자적(對自的)이다.

 

() ()
내면에서 우러난 기쁨 인간관계에서 성립된 즐거움
즉자적(卽自的) 대자적(對自的)

 

 

먼 곳에서 벗이 온다는 것의 의미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라 할 때, ‘유붕(有朋)’의 유는 잘 해석이 되질 않는다. ‘우붕(友朋)’이라고 한 텍스트도 있다고 당대의 경전석문이 지적하고 있으나, 논어붕우(朋友)’라는 용례는 8번 나오고 있으나 우붕(友朋)’의 용례는 한 번도 없다. 필사과정에서 자형 상 ()’()’는 쉽게 혼동될 수 있을 것이나 구태여 우붕으로 고쳐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본사람들처럼, ‘친구 있어, 원방에서 오니라고 읽을 수도 있다. 또 달리 생각하면, 시경유하(有夏)’ ‘유주(有周)’의 용법처럼 별 의미 없는 접두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의 해석이다. 이 구문의 뜻 또한 S2-R2 간의 좁은 인식체계에서 해석될 수 없다. S1-R1의 오리지날한 인식체계로 환원시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공자의 삶의 전체의 조망이다. 여기서 공자는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만에 타지에 가 있는 동창생이 찾아와서 그 날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유붕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야하고 고달픈 세파를 안위하는 그런 자위의 탄성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은 다산도 잘 지적하고 있다.

 

공자는 인생을 통하여 학에 대한 자각의 염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자기 삶의 현세적 의미를 철저히 추구하였다. 공자에게서 그 실존의 추구가 인류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공자 개인의 내면의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추구되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바로 공자의 교단은 민간의 차원에서 자생한 학을 위한 최초의 자발적 집단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의 전형을 정립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friend)’가 아니다. ()이란 고금의 주소가 다 지적하고 있듯이 붕당(朋黨)’이요, ‘동문이요, ‘동지(同志)’.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학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이란 실 제로 그의 학단을 구성한 제자들이었다. 공자에게 있어서 붕이라는 의미는 친구제자의 명료한 구분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하이어라키 감각도 그에게는 없었다. 자로는 제자이자 친구였다. 어린 안회도 제자이자, 그에게 무한한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벗이었다. 이런 동지들이 큰 뜻을 위하여, 배움을 위하여, 정치적 개혁을 위하여 사방에서 모여든다!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원방(遠方)’의 해석에 있다. 여기서 원방(먼곳)’이란, 노나라 도성 내의 사람들만이 아닌 먼 나라 사람들까지 찾아온다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공자의 제자들은 위()나라, 송나라, 제나라,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원방(遠方)’의 더 중요한 의미는 국과 국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국을 벗어난 비야(鄙野)의 세계, 즉 편벽한 서인(庶人)의 세계까지를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즉 자로와 같은 변() 땅의 야인(野人)들도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공자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을 위하여 배움을 같이 하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것, 공자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유월(兪樾)은 붕()은 복수이며, ()은 병()의 뜻으로 방래같이 온다’, ‘나란히 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고증학 자의 졸렬한 해석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에서 ()’[他人]’의 뜻이다. 옛말에서는 인(: )은 기(: 자기)와 대비되는 말이다. ‘부지(不知)’는 단순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의 인생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명군을 만나기 위하여 주유(周遊)한 삶이었다. 결국 인부지(人不知)’란 뜻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정치적으로 등용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소인(素人)으로서 마감한다는 뜻이다. ‘()’이란 부끄럽다라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안의 말대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怒也]’, 일본말로 우라미(うらみ)’, 우리말로 ()’에 해당되는 말이다. 소라이(荻生徂徠)불울(怫鬱, 울체된 답답함)의 심정이라고 풀이하였다. 나는 평생을 통해 나의 이상의 현세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다! 왜냐? 바로 군자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는 이러한 맥락에서 료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과 군자라고 하는 도덕적 이상과의 갈등 사이에서 궁극적으로 공자는 군자라는 도덕적 이상을 선택한 것이다. 이 마지막 구문을 역설적으로 뒤집는다면, 공자의 일생은 분노와 한에 찬 인생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최후의 위안은 바로 자신이 군자요 대인유(大人儒)라고 하는 자부감, 즉 소인으로부터의 탈출의 기쁨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본다면 이 세 병치되는 탄성처럼 공자의 인생의 토탈리티(Totality)를 그려내는 명구도 드물 것이다. 공자의 그칠 줄 모르는 호학 정신, 붕당을 통한 학단의 형성, 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덕성의 정도(正道), 그리고 정치적 좌절로 인한 새로운 문명패러다임의 창조와 도약, 이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논어는 결국 이 주제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공자는 이 세 마디로 논어라는 위대한 재즈의 서곡을 연주한 것이다.

 

 

은 열()과 같다. ()’의 말 됨은 본받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지마는, 깨닫는 것에는 반드시 선ㆍ후가 있다. 후에 깨닫는 자는 반드시 먼저 깨닫는 자의 행동을 본받아야만, 그 선한 본성을 밝힐 수 있고 또 그 단초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란 글자 모양대로, 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자주 나는 것과 같다. 배우기를 그치지 않는 것은 새끼 새가 자주 날개를 파닥거려 푸른 하늘을 나는 것을 배우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란 기쁘다는 뜻이다. 배워서, 또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면, 배우는 자는 그것에 익숙하게 되고 가슴 내면으로부터 희열이 우러나오게 된다. 그리하면 그 나아감이 스스로 그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정이천 선생이 말씀하였다: “()이란 거듭 익힘이다. 때때로 반복하여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 가슴속에 젖어들게 하고 곧 기쁨이 충만케 된다.” 또 말씀하셨다: “배운다는 것은 장차 그것을 행하려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면, 그 배운 것이 내 속에 있게 되니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시습時習)이라 하는 것은 익히지 아니 할 때가 없다는 것이니, 앉을 때 시동(尸童)과 같이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은 앉을 때의 익힘이요, 서있을 때 재계(齋戒)하는 것처럼 함은 서있을 때의 익힘이다.”

, 悅同. 學之爲言, 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 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說, 其進自不能已矣. 程子曰: “,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謝氏曰: “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

 

 

주자학의 도학적 본색이 잘 드러나는 주석이라 할 것이다. 배움을 말하는데 인간본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도학적 틀 속에서 연역적으로 논어를 이해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나, 공자의 삶에 대한 바른 접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습(時習)에 대한 해석도 지극히 편협하고 도덕주의적이다. 조선의 유생들이 이런 주석 때문에 소갈머리가 밴댕이 콧구멍만 해진 것이다. 어떻게 앉을 때 시동처럼 앉고, 설 때 재계자처럼 서있는단 말인가? 공자는 그렇게 앉고 선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씨는 북송(北宋)의 사람, 사량좌(謝良佐, 시에 리앙쭈어, Xie Liang Zuo, 1050~1103)를 가리킨다. 자는 현도(顯道). 보통 상채선생(上蔡先生)이라 부르는데 하남성 상채(上蔡, 상차이, Shang-cai) 출신이다. 이정자(二程子)의 고제(高弟)로서 상채학파의 조()가 되었다. 유작(游酢)ㆍ여대림(呂大臨)ㆍ양시(陽時)와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이라 불리웠는데 황종희는 그가 정문의 제일이라고 평하였다. 천리(天理)의 우위를 주장하고, ()을 각()과 생의(生意), ()을 실리(實理)로 풀었다. 그리고 경()상성성(常惺惺)’이라고 풀었다. 여기 인용된 구절을 보면 매우 소견이 좁은 사람 같지만, 실은 선()인 기풍을 수용하여 불교의 견성(見性)과 유학의 궁리(窮理)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궁리도 결국 천리(天理)의 체현이라는 것이다. 상채는 이정철학에 선미(禪味)를 가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 후대의 심학(心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전조망(全祖望)은 육연(陸九淵)이 상채의 학문을 대성하였다고 평하였다.

 

 

의 음은 낙()이다. ()’이라는 것은 동류(同類)같은 무리, 같은 그룹라는 뜻이다.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온다는 것은 가깝게 있는 자들은 더 잘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정자가 말하였다: “선으로써 타인에게 베풀면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은 내 마음 내면에 있는 것이다. ()은 발산(發散)을 주로 하는 것이니, 그것은 외면에 있는 것이다.”

, 音洛. , 同類也. 自遠方來, 則近者可知. 程子曰: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又曰: “說在心, 樂主發散在外.”

 

은 우문(紆問) 반이다. ()’은 노여움의 뜻을 품은 말이다. 군자는 덕을 이룬 자의 명칭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 있는 것이요,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이니, 노여울 건덕지가 뭐가 있겠는가?” 정자가 말하였다: “남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야말로 즐거운 일이기는 해도, 나의 옳음을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답답함이 없어야 이른바 군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키에는(주자 자신의 생각임), 남에게 미쳐서 즐거운 것은 순()하여 쉽지마는,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노여움이 없는 것은 역()방향이라 어렵다. 그러므로 오직 덕을 이룬 자래야 그것에 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덕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배움의 바름에 있고, 익힘의 익음에 있고, 기뻐함의 깊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에 말미암을 뿐이다. 정자가 말하였다: “()은 열()에 말미암은 연후에 얻어지는 것이니, 낙까지 이르지 아니 하면 군자라고 말할 수 없다.”

, 紆問反. , 含怒意. 君子, 成德之名. 尹氏曰: “學在己, 知不知在人, 何慍之有.” 程子曰: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 乃所謂君子.” 愚謂及人而樂者順而易, 不知而不慍者逆而難, 故惟成德者能之. 然德之所以成, 亦曰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耳. 程子曰: “樂由說而後得, 非樂不足以語君子.”

 

 

우문 반이라는 것은 반절법(反切法)을 가리킨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글자의 발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발음기호 같은 것이 없어서 한 글자에 대해 같은 중국 글자 두 개를 모아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것을 반절(反切)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도 불경의 역경자들 사이에서 개발된 방법이라 하고, 위진(魏晋)시대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는데, 북송조의 광운(廣韻)은 반절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운서이다. 앞글자에서 성모를 취하고 뒷 글자에서 운모를 취하여 합한다. ‘德紅切이라고 하면 덕()에서 을 떼어내고, ()에서 을 떼어내어 합치면 이 되는 것이다. ()이라고도, ()이라고도 표기한다. 주자 때에는 대개 절()로 통일이 되었는데, 주자는 고풍스럽게 반()이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있다. 성운학의 중요한 자료이다.

 

윤씨는 양송(兩宋)의 사람, 윤순(尹焞, 인 툰, Yin Tun, 1071~1142)이다. 자는 언명(彦明, 옌밍, Yan-ming)이다. 1094년 진사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원우당인(元祐黨人)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한 구법당을 주벌()하라는 시제(試題)에 반발하여 시험을 거부하고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화정처사(和靖處士)라고 불리 운다. 정이(程頤)에게 대학』 「서명」 『을 배웠으며 정이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사설(師說)을 돈독히 지켜 단지 경자 위에서 공부한다[只就敬字上做工夫]”라고 했는데 주자는 그가 경() 공부에 공이 있다고 평하였다. 실천을 강조하는 궁행파로서 거인욕(去人欲), 존천리(存天理)’의 학설을 고수하고, 성인은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귀로 망령되게 듣지 않고, 눈으로 망 령되게 보지 않고, 입으로 망령되게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 망령되게 생각하지 않으면 곧 성인이 된다고 하였다[要做到耳不妄聽, 目不妄視, 口不妄言, 心无妄思, 四者不妄, 則可爲聖人]. 전조망은 그를 평하기를 낙학(洛學)에 있어 가장 늦은 인물이지만 사설을 지키는 데 가장 순수하다라고 하였다. 강렬한 주전파로서 금나라와 항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상서(上書)를 올리어 재상 진회(秦繪)의 노여움을 샀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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