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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눈 속의 잣나무, 사생寫生과 사의寫意 - 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본문

책/한문(漢文)

눈 속의 잣나무, 사생寫生과 사의寫意 - 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건방진방랑자 2020. 3. 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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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얼마 후 학사 이양천 공은 세상을 뜨고 말았네. 내가 그 시문을 편집하다가 적소謫所에 있을 때 형에게 보낸 편지를 얻었는데, 쓰여 있기를 근자에 아무개의 편지를 받아보니, 날 위해 당로자當路者에게 석방을 구해보려 한다는데, 어찌 저를 이리도 박하게 대우하는지요. 비록 바다 가운데서 썩어 죽을망정 나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었네. 내가 그 글을 들고서 슬피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학사는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로구나. 선비는 궁하게 된 뒤에 평소 품은 뜻이 드러나는 법이다. 환란과 재앙을 만나서도 그 절조를 고치지 아니하고, 높고도 외로이 우뚝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찌 날씨가 추워진 때라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었네.“

旣而, 學士歿, 余爲編其詩文, 得其在謫中所與兄書, 以爲近接某人書, 欲爲吾求解於當塗者, 何待我薄也. 雖腐死海中, 吾不爲也.’ 吾持書傷歎曰: ‘李學士眞雪中柏耳. 士窮然後見素志. 患害愍厄而不改其操, 高孤特立而不屈其志者, 豈非可見於歲寒者耶?’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이양천은 세상을 떴다. 연암은 처숙부인 그의 시문집을 엮으려고 원고를 정리하다가, 흑산도에서 형님인 이보천李輔天(1714-1777)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낸다. “형님! 듣자니, 아무개가 절 위해 當路者에게 저의 석방을 탄원하려 하는 모양인데, 어찌 저를 이다지도 박하게 대우한단 말입니까? 아우는 바닷가에서 잊혀져 썩어 죽을망정, 남에게 청탁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빌지는 않으렵니다.” 이 편지를 읽고서 연암은 혼자서 되뇌인다. “! 이학사야 말로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였구나. 선비가 궁하게 되면 평소 품은 본 바탕이 낱낱이 드러나는 법이다. 환난과 재앙 속에서 그 절조를 고치지 않고, 높고 외로이 우뚝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분명히 드러나는 법이로구나.”

 

 

이제 우리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아! 사함은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이란 말인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내 장차 그대의 집에 올라보고 그대의 동산을 거닐면서 눈속에서 대나무를 구경해도 좋겠는가?

今吾士涵, 性愛竹. 嗚呼, 士涵其眞知竹者耶? 歲寒然後, 吾且登君之軒, 而涉君之園, 看竹於雪中, 可乎?

그제서야 이야기는 다시 불이당죽원옹에게로 돌아온다. 대나무 한 그루 없어도 그 가슴 속에 대나무를 지니고 있을 진데, 그는 죽원옹이다. 왜 대나무가 없는데 죽원옹이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 심사정의 묵매도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사함은 가슴 속에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불이不移의 기상을 지니고 있기에, 그 거처에 한 그루의 대나무가 없더라도 죽원옹을 일컫기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 여보게 사함. 추운 겨울이 되면 내 장차 그대의 집에 올라보고, 그대의 동산을 거닐면서 눈 속에 서걱이는 대바람 소리를 듣고 싶네 그려. 허락해 주겠는가?

이렇게 해서 연암의 불이당기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처음 연암은 명실名實이 상부하지 않은 불이당의 주변을 슬쩍 희롱하고는 그것으로 글의 실마리를 열었다. 그리고는 심사정과 이인상 등 당대 1급의 두 화가를 한 자리에 올려놓고, 형사形似와 심사心似의 문제로 이 이야기를 확대시켰다. 대나무 있는 집에 살면서 호를 죽원옹이라 하는 것은 매화를 쓴 시를 보고 매화 그림을 얹는 심사정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등 이상할 것도 없고 신기할 것이 없다. 그러나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데 대나무 동산이라고 말하니, 이것은 그려 달라는 잣나무는 안 그려주고 전서로 설부를 써서 보내주는 이인상의 동문서답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신기하고 이상한 것만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문서답이 더 윗길이 된다는 뜻도 아니다.

형체를 보고 사실과 꼭 같게 핍진히 재현해내는 것은 손끝의 재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다만 형사形似일 뿐이다. 그러나 천지 가득한 눈 속에서 홀로 푸름을 간직하고 서있을 승상 사당 앞의 잣나무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는 마음으로 잣나무를 그려낸 것이니, 이것은 분명 심사心似가 된다. 연암은 이양천의 입을 빌어 그것을 몰골도沒骨圖로 표현한다. 뼈대가 없고 보니 형체도 없다. 그러나 그 몰골무형沒骨無形 속에 그림의 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데 있지 않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고는 훌륭한 그림이랄 수 없다.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의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속에 푸르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 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낙목落木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대나무도 없는 집인데 죽원옹이란 호를 짓다

2. 잣나무는 그려달라는 부탁에 글만 적어 보낸 이유

3. 위급한 위리안치 중에도 임금을 걱정한 이양천의 절개

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5. 모양이 아닌 정신을 그리다

6. 시란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고목이 버섯으로 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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