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위급한 위리안치 중에도 임금을 걱정한 이양천의 절개
위리안치 되고 나서는 장독瘴毒을 머금은 안개가 어두침침하고, 독사와 지네가 베개와 자리에 얽혀 있어 해입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지. 어느 날 밤에는 큰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 마치 벽력이 이는 듯하므로 아랫것들은 모두 넋이 나가 구토하며 어지러워들 하였네. 내가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남쪽바다 산호야 꺾인들 어떠하리. 오늘밤 다만 근심 옥루玉樓의 추움일세.」라 하였다네. 旣在籬中, 瘴霧昏昏, 蝮蛇蜈蚣, 糾結枕茵, 爲害不測. 一夜大風振海, 如作霹靂, 從人皆奪魄嘔眩. 余作歌曰: 「南海珊瑚折奈何, 秪恐今宵玉樓寒.」 |
우여곡절 끝에 그는 흑산도에서 귀양생활을 시작했고,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안개는 장기瘴氣를 머금어 기혈을 삭히고, 거처에는 독사와 지네가 여기저기서 기어 나와 언제 해를 입을지 모르는 절박한 환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벽력같은 파도 소리와 함께 집채만한 물결이 휩쓸어 지나가자, 천지가 진동할 듯 모든 사람은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데, 이양천은 오히려 담담히 한 수의 「산호가珊瑚歌」를 지었다.
南海珊瑚折奈何 |
남쪽 바다 산호야 꺾인들 어떠하리 |
秪恐今宵玉樓寒 |
오늘밤 다만 근심 玉樓의 추움일세. |
남쪽 바다 산호는 이 험한 파도를 견디지 못해 꺾이고 만다 해도, 단지 나의 걱정은 산호에 있지 않고 玉樓에 계신 우리 임금께서 춥지나 않으실까 하는데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쪽 바다 산호의 원관념은 물론 자신이다. 자신이야 이 절해고도에서 아름다운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거꾸러져 죽더라도 상관없지만, 임금과 나라의 안위만은 근심치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두 겹의 이야기 구조를 읽게 된다. 처음 그는 이인상의 이야기를 황당하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종들이 벌벌 떨며 울부짖는 건곤일척의 상황 속에서 눈 속에 거꾸러져 마른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고목을 보고는 앞서 이인상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목에서 마른 대나무의 절개와 만나고 나자 그의 가슴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호연한 기상이 발발하게 솟아났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유배지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파도 소리 속에 하인들이 넋을 잃고 구토하며 어지러워 할 적에도 그는 의연히 곧추 앉아 ‘산호의 노래’를 담담히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인상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근자에 산호곡을 얻어보매, 완미하면서도 상심하지 않아 원망하고 후회하는 뜻이 없으니, 능히 환난에 잘 대처해가고 있더군. 접때 그대가 일찍이 잣나무를 그려달라 하더니만, 그대 또한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만하네 그려. 그대가 떠난 뒤, 잣나무 그림 수십 폭이 서울에 남았는데, 모두 이조吏曺의 벼슬아치들이 끝이 모지라진 붓으로 베껴 그린 것이라네. 그런데도 그 굳센 줄기와 곧은 기운은 늠연하여 범할 수가 없고, 가지와 잎은 무성하여 어찌나 성대하던지?」라고 하였더군. 내가 나도 몰래 실소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네. 「이인상은 몰골도沒骨圖, 즉 형체없는 그림이라 말할만 하구나.」 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좋은 그림이란 그 물건과 꼭 닮게 하는데 있지 않을 뿐이라네.’ 나 또한 웃고 말았었지. 元靈書報, 「近得珊瑚曲, 婉而不傷, 無怨悔之意, 庶幾其能處患也. 曩時足下嘗求畵柏, 而足下亦可謂善爲畵耳. 足下去後, 柏數十本, 留在京師, 皆曺吏輩, 禿筆傳寫. 然其勁榦直氣, 凜然不可犯. 而枝葉扶疎, 何其盛也?」 余不覺失笑曰: 「元靈可謂沒骨圖.」 由是觀之, 善畵不在肖其物而已.’ 余亦笑. |
그 뒤에 이인상이 유배지의 그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자네의 ‘산호의 노래’를 잘 읽어 보았네. 담긴 뜻이 완곡하면서도 상심함을 머금지 않았더군. 또 일찍이 원망하고 후회하는 뜻이 없으니, 능히 어려움을 잘 견뎌나가고 있다 하겠네. 지난 번 자네는 내게 잣나무를 그려 달라고 했지? 이제 보니 자네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세 그려. 자네가 서울을 떠난 뒤로 이조吏曺의 벼슬아치들이 모지라진 붓끝으로 베껴 그린 잣나무 그림 수십 폭이 서울에 남아 돌아다닌다네. 줄기는 굳세고 기운은 곧아 범할 수 없는 기상이 있고, 가지와 잎은 또 어찌 그리 무성하더란 말인가?”
그런데 이인상의 이 편지에서 뒤편의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십 명이나 되는 벼슬아치들이 앞 다투어 전사傳寫 했다는 잣나무 그림이란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잣나무 그림이란 애초에 그려지지도 않았지 않은가? 있지도 않은 잣나무 그림을 수십 명의 벼슬아치들이 모지라진 붓끝으로 베껴 그렸다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더욱이 그 그림의 기상이 장하여 꺾을 수 없는 기운이 넘쳐 났다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전후의 사정은 좀 더 살펴보아야겠으나, 추찰컨대 이 대목은 당초 이양천이 귀양 가게 된 상소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문제가 된 이양천의 상소란 당시 時任 영의정인 소론의 이종성李宗城을 탄핵했던 일을 말함인데, 조선왕조실록 영조 28년 10월 29일조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상소문을 읽고 격노한 영조는 곧바로 이양천에게 흑산도 위리안치의 명을 내린다. 그렇다면 수십 명 벼슬아치들이 그렸다는 잣나무 그림이란, 결국 조정안에 이양천의 상소에 공감했던 노론 소장파들의 모종 움직임을 암시한 것이 된다. 즉 그의 결연한 상소에 고무되어 뜻을 같이 한 이들이 수십 명에 달했던 것을 말함일 터이다. 다만 그 붓끝이 모지라졌다고 한 것은 그들의 뜻 또한 당시에 격렬한 시련 속에 놓여 있었으며, 그럼에도 그 기상은 충천해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 전문
인용
3. 위급한 위리안치 중에도 임금을 걱정한 이양천의 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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