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가렸기에 보여진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山斷雲連]”는 말이 나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구름 위에 삐죽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다. 그렇다고 구름 아래에 봉우리가 없는가.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辭斷意屬].”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름 위에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시인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구름 아래 감춰져 있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트 매클리쉬(Archibald MacLeish, 1892~1982)는 「시의 작법(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A Poem should not mean: but be).”고 하고,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A Poem shuold be equal to: Not true).”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해 간접화된 방식으로 의경을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한시에서 이러한 원칙은 이미 천 년이 넘는 문학적 전통 속에서 불변의 준칙으로 엄격하게 지켜져 왔다. 이는 다시 말해 시인은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하라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시인이 나서서 직접 시시콜콜한 자기감정을 주욱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시인이 걷어낸 180자를 찾아서
返蟻難尋穴 歸禽易見巢 | 돌아가던 개미가 구멍 찾기 어렵겠고 돌아오던 새는 둥지 찾기 쉽겠구나. |
滿廊僧不厭 一個俗嫌多 |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네 싫어 않고 하나로도 속객은 많다고 싫어하네. |
위 시는 무엇을 노래한 것인가. 개미는 왜 구멍을 찾지 못하며, 새는 둥지를 왜 쉽게 찾는가. 복도에 가득한 데도 스님네가 싫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속객은 왜 이것이 많음을 싫어할까. 이것은 정곡(鄭谷)이란 이가 「낙엽(落葉)」을 노래한 시이다. 낙엽이 쌓이는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의 모든 상황은 석연해진다. 그러나 스물여덟 자 어디에도 낙엽과 관계되는 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落葉歸根]이라 했다. 한 인연이 끝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도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스님네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함은 담긴 뜻이 유장(悠長)하다. 그러나 한 잎 낙엽조차 속객이 싫어하는 까닭은 세시이변(歲時移變)에 초조한 상정(常情)의 속태(俗態)를 내보임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정황 속에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이 어느덧 가슴을 가득 메운다.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이 200자의 할 말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20자로 줄여 말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180자를 걷어 낼 것인가로 고민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 낸 말, 즉 행간에 감추어 둔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시
다음은 두보(杜甫)의 유명한 「춘망(春望)」이란 시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 나라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 봄 성엔 초목만 무성해. |
感時花溅淚 恨別鳥驚心 | 때에 느꺼워 꽃을 대해도 눈물 쏟아지고 이별 한스러워 새 보아도 마음 놀라네. |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는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평하여 『온공속시화(溫公續詩話)』에서 이렇게 적었다. “산하(山河)가 남아 있다고 했으니 나머지 물건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이 우거졌다 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꽃과 새는 평상시에는 즐길만한 것인데, 이를 보면 눈물 나고, 이를 들으면 슬프다 하였으니 그 시절을 알 수 있겠다[山河在, 明無餘物矣, 草木深, 明無人矣. 花鳥平時可娛之物, 見之而泣, 聞之而悲, 則時可知矣].” 즉 시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태평성대에의 기억은 무참히 사라지고, 세상은 어느새 폐허로 변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와 슬픔 속으로 젖어 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나라는 망했지만 산하만은 남아 있다’는 것인데, 시인이 말하려 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보니 남은 것은 산하뿐이다’이며,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봄날 성에는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는 것이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전 사람들로 붐비던 성에는 사람의 자취를 찾을 길 없고, 단지 잡초만이 우거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일일이 다 언어로 설명한다면 여기에 무슨 여운이 남겠는가. 그래서 사마광은 윗글에 이어 “옛 사람은 시를 지음에 뜻이 말 밖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여 이를 얻게 하였다[古人爲詩, 貴於意在言外, 使人思而得之].”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다 말해 버려, 독자가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岐王宅裏尋常見 | 기왕(岐王)의 집에서 늘상 보더니 |
崔九堂前幾度聞 | 최구(崔九)의 집 앞에서 몇 번을 들었던고. |
正是江南好風景 | 정히 강남 땅에 풍경이 좋으니 |
落花時節又逢君 |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네. |
유명한 두보(杜甫)의 「강남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란 시이다. 필자는 이 시를 고등학교 시절 『두시언해(杜詩諺解)』를 배우면서 처음 접했다. 그 당시 이 시를 읽고 난 느낌은 무슨 시가 이렇게 싱거운가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의 집에서 익히 만나 알던 이구년(李龜年)이란 가수를 강남에서 좋은 봄날 또 만났다는 것이 이 시가 전달하고 있는 의미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무슨 시적인 표현이 있는가.
안사(安史)의 난리를 겪은 당나라는 이미 전날 태평성대의 자취는 찾아 볼 길 없었고, 당시 두보(杜甫)는 “서남의 천지 사이를 떠돌며[漂泊西南天地間]” 지내다가 강남땅에 다달았을 때였다. 꽃이 분분히 지는 모춘(暮春)의 때에, 그는 길에서 우연히 장안 시절 알고 지내던 당대의 유명한 가수, 그러나 이제는 생계를 위해 거리의 악사로 전락해 버린 이구년(李龜年)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안 시절에는 두보(杜甫)나 이구년이나 모두 당대의 귀족이었던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의 파티에 초대받을 정도로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한꺼번에 변하여 버려, 이제 두 사람은 지친 피난민의 신세로 하늘가를 떠돌다 낯선 거리에서 서글픈 상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3.4구는 그저 평담(平淡)한 듯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실로 침통하고도 무한한 감개가 서리어 있다. 3구는 앞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의 독법으로 헤아릴 수 있으려니와, 4구의 ‘낙화시절(落花時節)’은 그 담긴 뜻이 참으로 심장하다. 우선은 두 사람이 만날 당시가 ‘낙화시절’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는 다시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난 두 사람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며, 동시에 성세(盛世)의 번화(繁華)를 뒤로 보낸 당나라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다. 한 층 한 층 의미가 확장되면서 울리는 여운이 길고 가녀린 파장을 남기고 있다.
주변을 읊어 자기감정을 얘기하다
獨坐無來客 空庭雨氣昏 | 홀로 앉아 오는 손님도 없고 빈 뜰엔 빗 기운만 어둑하구나. |
魚搖荷葉動 鵲踏樹梢飜 | 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가 나무가지 흔들리네. |
琴潤絃猶響 爐寒火尙存 | 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남아 있네. |
泥途妨出入 終日可關門 |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 막으니 하루 종일 문을 닫아 걸고 있으리. |
서거정(徐居正)의 「독좌(獨坐)」란 작품이다.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 듯하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다는 1구는,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체념과, 그래도 혹시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의 마음이 뒤섞인 모순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오지 않고, 시인은 찌푸려 흐린 날씨에 빈 뜰을 그저 허허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3ㆍ4구에서 시인의 시선은 물고기가 흔들어 움직이는 연잎의 살랑거림, 까치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 나뭇가지의 일렁거림을 포착하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는 그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변화에 대한 그의 강렬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서재나 마루에서 빈 뜨락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니 마당 연못, 그것도 연꽃 아래 물고기의 모습이 보일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물고기가 흔들었다’는 진술은 시인의 추정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까치도 보지 못했으나 나뭇가지의 일렁임을 통해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 이렇듯 전 4구는 시인이 매우 고독할 뿐 아니라 권태롭고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5ㆍ6구를 보자. 이번에는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거문고와 싸늘하게 식은 화로가 등장한다. 거문고는 비 기운에 습기를 잔뜩 머금어 소리가 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뚱겨 보니 뜻밖에 소리가 난다. 화로는 손을 대어 보니 싸늘하여 불씨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헤집어 보니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왜 갑자기 거문고와 화로로 화제를 돌렸을까. 소리가 안 나는 거문고와 불씨가 꺼진 화로는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상태를 의미하고, 소리가 안날 줄 알았는데 소리가 나고, 불씨가 없을 줄 알았는데 불씨가 있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없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쓸모를 간직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거문고와 화로의 원관념은 바로 시인 자신인 것을 알 수 있겠다. 시인은 결국 지금 세상이 쓸모없다고 자신을 버려도, 나는 아직 가슴 속에 경국제세(經國濟世)에의 포부를 간직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로소 7ㆍ8구의 문맥이 소연(蕭然)해진다. 진흙탕 길이 정상적인 출입을 가로막고 있으니 나가지 않고 문을 닫아걸고 있겠노라는 것이다. 진흙탕 길은 곧 뜻있는 인사로 하여금 자신의 경륜과 포부를 펼칠 수 없도록 억압하고 제한하는 현실의 상황을 말한다. 대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야 우리는 서거정(徐居正)의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홀로 앉아 있음[獨坐]’의 참 의미는 하수상한 시절에 때를 기다리는 오롯한 몸가짐과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인이불발(引而不發)로 용맹을 드러내다
송나라 때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한나라 때 장수 이광(李廣)이 오랑캐 아이와 말을 빼앗아 적지에서 탈출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광(廣)은 아이를 옆에 낀 채 말을 몰아 남으로 달리면서 오랑캐 아이의 활을 빼앗아, 힘껏 당겨 추격해오는 기병을 겨누고 있었다. 화살이 곧바로 발사될 곳을 보니 사람과 말이 모두 활에 응하고 있었다. 이공린은 함께 그림을 보던 황산곡(黃山谷)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속된 자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한다면 마땅히 추격하는 기병이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그렸겠지요.” 황산곡은 그의 이 말을 듣고 그림의 격에 대해 크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시의 원리 또한 한 가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제모연곽상보도(題摹燕郭尙父圖)」에 나오는 이야기다.
꼭 이광(李廣)의 화살이 추격병의 가슴을 꿰뚫어야 만이 그의 용맹한 정신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의전신(寫意傳神)’의 본질을 해칠 뿐이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전(傳) 김홍도(金弘度), 「춘의도(春意圖)」, 18세기, 45X30cm, 개인 소장
대낮 섬돌 위에 남녀 신발이 한 켤레씩 놓였고, 방문은 굳게 닫혔고, 사방은 고요하고 인적도 끊겼다. 노골적인 남녀의 성애(性愛)를 그린 것은 춘화도(春畫圖)라 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만 나타낸 것은 춘의도라 한다. 수십 장의 연작 중 하나다.
인용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4. 정오의 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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