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0자의 글자에 형상화하기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보면, 매요신(梅堯臣)과 시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요신은 “반드시 능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치를 형상화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어 말 밖에 드러나게 한 뒤라야 시가 지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을 형상화 하여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는다는 것은 어떤 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매요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짓는 사람은 마음에서 얻고, 보는 이는 뜻으로 깨달으니, 말로써 무어라고 꼬집어 진술하기는 어렵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또한 그 방불함을 대략 말할 수는 있다. 온정균(溫庭筠)의 “주막집 달빛에 닭은 울고, 판교(板橋)의 서리 위엔 사람 발자국[鷄聲茅店月, 人迹板橋霜 -「商山早行」]” 같은 것이나, 가도(賈島)의 “괴이한 새 광야에서 우짖어, 지는 해 나그네를 두렵게 한다[怪禽啼曠野 落日恐行人].”와 같은 것은 길 가는 괴로움과 나그네의 근심이 말 밖에 드러나 있지 않은가?
온정균의 시를 좀 더 살펴보자. 주막집 달과 닭 울음소리는 이른 새벽녘임을 말해준다. 판교(板橋)는 널판지로 만든 다리이다. 다리 위엔 밤새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 서리를 밟고 가는 사람. 그 뒤로 발자국이 또렷이 찍힌다.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판자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른 새벽, 서리를 밟으며 나그네는 어디로 걸음을 재촉하는가. 서리 내린 새벽의 뼈에 저미는 추위는 또 어떠한가. 이 모든 상황이 단지 이 열 글자 안에 농축되어 있다.
이국적인 정취를 담아내다
정몽주(鄭夢周)가 일본에 사신 갔을 때 지은 시인 「홍무정사봉사일본작(洪武丁巳奉使日本作)」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 매화 핀 창이라서 봄빛이 빠르고, 판잣집이라서 빗소리 크게 들리네. |
매화가 막 피는 계절이니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판자 지붕 위에는 빗소리가 자못 요란하다.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겪지 못한 섬나라의 기후와 풍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정작 이 시의 묘처는 ‘판옥(板屋)’이란 표현에서 찾아진다. 판옥(板屋) 즉 판자로 엮은 집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낯선 풍물로 읽는 이에게 이국정서를 촉발시킨다. 동시에, 판자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의 경쾌한 울림은 창밖으로 매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설레이는 마음까지를 담아 상쾌한 음향으로 독자의 정서 속으로 파고든다. 또 떠나올 때는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해를 넘겨 이역만리 타국 땅 여관에서 봄비 소리를 듣는 시인의 마음속에는 절로 떠오르는 아련한 고향 생각이 묻어 있다. 이것이 이 시구가 일본의 절창으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연유이다.
자연과 인간의 대비
이색(李穡)은 그의 「부벽루(浮碧樓)」에서 노래하였다.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 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 |
텅 빈 성과 조각달, 바위와 구름의 대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예전 번성했던 성엔 이제 사람의 자취는 찾을 길 없고 조각달만 옛 기억처럼 희미하게 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달마저 얼마 안 있어 그믐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바위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이 남았다. 그 위로 또 무심한 구름은 천년 세월을 덧없이 흘러갔다. 그 세월 동안 인간 세상의 영고성쇠는 또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이렇듯 각 구절의 사이에는 말하지 않고 남겨 둔 여운이 길고도 깊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얹다
또 김종직(金宗直)은 「불국사여세번화(佛國寺與世蕃話)」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靑山半邊雨 落日上方鐘 | 푸른 산 반절엔 비 내리고, 해질녘 상방엔 종 울린다. |
시인은 청산의 반쪽에 비가 온다고 말하여 다른 한 쪽에는 비가 내리지 않음을 보였다. 이편에는 비가 오는데 저편에서는 해가 진다. 떨어지는 해가 못내 아쉬운 듯 절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푸른 산과 붉은 해, 서늘한 비와 맑은 종소리. 경물과 마주하고 선 시인의 맑고 쇄락한 정신이 이러한 이미지들의 결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기러기에 자신의 감정을 얹다
차천로(車天輅)는 「영고안(詠孤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河孤影沒 天地一聲悲 | 산하엔 외로운 그림자 없어지고 천지에 한 소리만 비장하더라. |
날아가던 기러기의 외로운 그림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시인의 귀에는 천지를 가득 메운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야 무슨 외롭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깊은 밤 까닭 모를 근심에 겨워 잠 못 이루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러기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기교는 졸렬해 보인다
대개 이러한 것이 경물과 시인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는 양상들이다. 이렇듯 한 편의 훌륭한 시는 겉으로는 덤덤한 듯하지만 하나하나 음미해 보면 그 행간에 감춰진 함의가 무궁하여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는[言有盡而意無窮]’의 경계를 맛보게 해 준다. 시인의 진실한 느낌이 없는 시는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으로 휘갑되었다 하더라도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맹자(孟子)는 아무리 아름다운 서시(西施)와 같은 미인이라 하더라도 오물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이를 지나친다[西子蒙不潔, 則人皆掩鼻而過之]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한다면 읽는 이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는 본바탕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덕지덕지 분을 바른 여인의 분내를 경멸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는 글씨를 쓰다 남은 먹이 버리기 아까워 그린 듯한 갈필의 거친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어떤 그림도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가끔 그 기교가 우리를 감탄시킬 수 있을 뿐이다.
▲ 이인문, 「관수도(觀水圖)」, 18세기, 21X30cm, 개인소장.
지팡이 짚고 서서 물을 바라본다. 쉼 없이 흘러가는 저 물처럼 내 삶도 정체되지 않기를.
인용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4. 정오의 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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