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김준오는 자신의 저서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이런 말도 남겼다.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1980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이 언술들은 필자가 읽기에 마치 김삿갓의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此竹彼竹化去竹 |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
風打之竹浪打竹 |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
飯飯粥粥生此竹 |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
是是非非付彼竹 |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
賓客接待家勢竹 |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
市井賣買歲月竹 |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
萬事不如吾心竹 |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
然然然世過然竹 |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
김삿갓의 「죽(竹)」이란 작품이다. ‘오심죽오심죽(吾心竹吾心竹)’은 ‘내 마음대로’로 읽고, ‘연죽(然竹)’은 ‘그런대로’의 뜻이다. 글자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탈절범속(脫絶凡俗)한 자태로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대로 되라’는 ‘대’로 전락하고 있다. 원문을 중국 사람에게 읽힌다면 무슨 암호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른바 이두의 원리를 이용한 ‘낯설게 만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해체의 현장이다. 이 시만 해도 조선 후기 시화집인 『몽유야담(夢遊野談)』에는 세사에 달관한 어느 정승의 일화 속에 포함되어 실려 있다. 글자에도 다소간 출입이 있다.
예전 정철(鄭澈)이 관동부사로 있을 때 일이다. 강릉 사람 전의민(全義民)이 시를 잘 지었는데, 송강이 그에게 말하며 읊조렸다. “내가 전에 평창(平昌)에 갔을 때 약수(藥水)라는 지명이 있길래 한 구절을 지었는데 그 바깥을 얻지 못했다”
地名藥水難醫疾 | 땅 이름 약수(藥水)인데 병 고치기 어렵고 |
그러자 전의민이 말하기를, “그 대구가 있지만 감히 여쭙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송강이 억지로 권하자 그가 말했다.
驛號餘粮未救飢 | 역 이름 여량(餘粮)인데 주림 구하지 못하네. |
여량(餘粮)은 강원도 정선 땅에 있던 역 이름이었다. 송강(松江)이 낯빛을 고치고 그를 대하였다. 대개 시 속에 풍자의 뜻이 담겼던 것이다. 『시평보유(詩評補遺)』에 보인다. 두 구절이 모두 지명을 가지고 훈으로 풀어 유희한 것이지만, 담긴 뜻은 진지하다.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무제(無題)」를 보자.
吉州吉州不吉州 |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
許可許可不許可 |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
明川明川人不明 |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
漁佃漁佃食無魚 |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
길주에 와서 허씨 성을 가진 집에 묵기를 청했는데 거절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 분풀이를 명천과 어전의 지명에 대로 풀었다. 똑같이 땅 이름으로 장난쳤지만 진지함은 없고 가벼운 말장난에 그쳤다.
邑號開城何閉門 | 고을 이름 개성(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
山名松嶽豈無薪 | 산 이름 송악(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
黃昏逐客非人事 | 황혼의 축객(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
禮義東方自獨秦 | 예의 동방 이 나라에 그대 홀로 오랑캐라. |
이것은 개성에서 김삿갓이 불 못 땐 찬 방에서 차마 재울 수 없다는 핑계로 축객(逐客)을 당하고서 그 집 대문에 써붙이고 갔다는 시다. 4구는 예전 나라가 외지인을 쫓아내는 축객의 정책을 썼던 일이 있어 이를 빗댄 말이다.
昨年九月過九月 | 작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
今年九月過九月 |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누나. |
年年九月過九月 | 해마다 9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노니 |
九月山光長九月 | 구월산의 빛깔은 노상 9월이로세. |
김삿갓의 「구월산(九月山)」이다. 무려 ‘구월(九月)’이란 어휘가 여덟 번 되풀이 된다. 시인은 이렇게 하고서도 말이 되지 않느냐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유희적 태도가 행간에 넘난다. 이런 말장난 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벼룩이나 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그의 시에서는 서슴없이 등장한다. 먼저 이[蝨]를 읊은 시를 보자.
飢而吮血飽而擠 | 주리면 피 빨고 배부르면 떨어지니 |
三百昆蟲最下才 | 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 |
遠客懷中愁午日 | 먼 길손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
窮人腹上聽晨雷 | 주린 이 배 위에서 새벽 우레를 듣는다. |
形雖似麥難爲麴 | 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 |
字不成風未落梅 | 글자 풍자(風字)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
問爾能侵仙骨否 | 묻노니 능히 선골(仙骨)도 범하려는가 |
麻姑搔首坐天台 | 마고(麻姑) 할미 머리 긁으며 천태산(天台山)에 앉았는데. |
역시 운자는 지켰다. 이(虱)를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격인데, 그 발상 또한 흥미롭다. 먼 길손의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3구는 무슨 말인가? 길 가던 나그네는 햇살이 따뜻하면 양지녁에 쭈그리고 앉아 저고리를 홀랑 뒤집어 놓고 이른바 이 사냥을 하게 마련이다. 4구의 우레소리는 주린 창자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다름 아니다. 보리알처럼 생겼음에도 누룩은 될 수 없고, ‘슬(虱)’자는 ‘풍(風)’에서 한 획을 뺀 것이니 헛김이 샐 밖에. 선골(仙骨)은 자신을 이름일 테고, 마고할미는 ‘마고소양(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새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7ㆍ8구는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어내는 마고할미가 천태성에 앉아 선골(仙骨)인 나를 지키고 있으니 감히 내게 붙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만은 면할 수 없어 해학으로 풀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주제는 ‘이야! 제발 내게서 떨어져 다오.’이다.
『도시시와 해체시』라는 책에서 이러한 시엔 “풍자정신 앞에 신성한 것, 숭고한 것, 초월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 지적 반응은 희극적 태도다.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p.21)”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스운 것 앞에서 뜻밖에 진지해지고, 진지한 것을 단번에 희화화해버리는 시인의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방 가운덴 모두 다 존귀한 물건뿐. |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 되어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
김삿갓이 고약한 시골 훈장을 기롱한 시로 전한다. 겉보기에는 심상한 시골 서당의 풍경을 노래한 듯하지만 각 구절 뒤의 세 글자를 독음으로 읽으면 흉측한 욕설이 된다. 다섯 글자로 시 흉내만 낸 것이지 정말 고약한 장난이다. 김삿갓의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욕설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僧首團團汗馬閬 | 동글동글 중 머리통 땀 난 말 불알 같고 |
儒頭尖尖坐狗腎 | 뾰족한 선비 대가리는 앉은 개 좆 같구나. |
聲令銅鈴零銅鼎 | 목소리는 구리방울로 구리 솥을 치는 듯 |
目若黑椒落白粥 | 눈깔은 검은 후추 흰 죽에 떨어진듯. |
아마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쨍알쨍알 하는 목소리의 중과, 어디 박혔는지 한참 찾아야 할 지경으로 눈이 작은 선비가 합세해서 김삿갓을 구박했던 모양이다. 위 시는 이때 김삿갓의 반격으로 전해지는데,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형국이다. 경박하기 그지없고, 언어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시인가?
시인은 현실의 온갖 추악한 모습을 비정하게 들추어낼 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147쪽
해체시에서 세계는 온갖 추악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해체주의 시인들은 절대적 진리도 선도 가치도 믿지 않는다. 김병익의 기술을 빌리면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 전할 수 있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욕설과 요설의 비틀린 언어는 이런 허무주의적 공허의식의 산물이다. -152쪽
일찍이 홍기문(洪起文, 1903~1992)은 김삿갓의 시를 두고 비천한 재담이지 시가 아니라고 혹평한 바 있고, 근세의 한학자 여규형(呂圭亨, 1848~1921)은 이런 시풍이 유행하여 정통의 한시가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소문이 이웃나라에 알려질까봐 걱정이라는 시를 남기기까지 했다.
풍자 일변도는 비가적(悲歌的)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비가적 세계관은 불만을 삶의 완벽한 기교로 채용한다. 그래서 비가적 시인에게는 계속 짖어야 될 부정의 세계를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바뀌면 그 바뀐 세계의 불만의 요소를 또 발견해야 한다. 비가적 세계관은 상황의 거대함과 자아의 왜소함 사이의 그 엄청난 불균형을 과장한다. 그것은 넋두리와 하소연의 무기력한 어조를 띤다. -21쪽
대체로 김삿갓의 장난시를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서글픔과 씁쓸함이다. 경국제세(經國濟世)에의 포부를 품고 배우고 익힌 학문과 지식을 고작 이깟 희학질에 썼더란 말인가? 그인들 이런 시를 짓고 싶었으랴만, 그로 하여금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시에서 이나 벼룩, 욕설과 섹스 등 비시적 대상의 시화가 지배적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김삿갓의 경우 조부의 훼절에 말미암은 개인적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김삿갓의 시정신은 당대 조선사회가 처했던 제반 역사 환경의 변모에 의해 안받침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시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四脚松盤粥一器 |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
天光雲影共徘徊 | 하늘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
主人莫道無顔色 |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
吾愛靑山倒水來 |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天皇崩乎人皇崩 |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
萬樹靑山皆被服 |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
明日若使陽來弔 | 밝는 날 햇님 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
家家畯前淚滴滴 | 집집 처마 마다 눈물이 뚝뚝. |
눈을 노래한 「설(雪)」이란 작품이다. 소담스런 서설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얀 소복(素服)으로 갈아입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흰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울리지도 말자던 노천명과는 달리, 시인은 엉뚱하게 흰 눈에서 주재자의 죽음을 떠올리고, 햇볕에 녹아떨어지는 낙수를 눈물로 환치시켜 버린다. 시상을 전개하는 시적 발상도 참신하려니와, 그의 무기력한 나른함과 뿌리 깊은 비애의 정조가 가슴을 씁쓸히 적신다. 그는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난오평생시(蘭嗸平生詩)」를 남겼다. 그 끝 네 구절은 이렇다.
身窮每遇俗眼白 | 궁한 신세 속인들의 백안시(白眼視)만 받았고 |
歲去偏傷鬢髮蒼 | 세월 가며 터럭만이 시들었구나. |
歸兮亦難佇亦難 |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
幾日彷徨中路傍 | 몇 날을 길 가에서 서성였던고. |
김삿갓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비감(悲感)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과체시(科體詩)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시체(詩體)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기고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체제(體制)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 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요즈음 사람들의 악취미다.
인용
2. 눈물이 석 줄
3. 김삿갓은 없다
5. 한시 최후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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