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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8. 관물론, 바라봄의 시학 -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8. 관물론, 바라봄의 시학 -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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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관물론(觀物論), 바라봄의 시학(詩學)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지렁이를 두고 사람들은 수미(首尾)도 없고 배도 등도 없다고들 말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실지로는 수미(首尾)와 복배(腹背)가 있어 해를 피하고 리()에 나아가며, 정욕(情欲)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은 말한다. 물건의 어리석고 굼뜬 것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하물며 사람과 같이 칠규(七竅)와 오장(五臟)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것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말을 듣고 빛깔을 보아 지각함이 어둡지 않은데도, 사람 가운데는 간혹 방향을 잃어 길을 잃는 자가 있으니 슬프다.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해를 피해 나아가는 쪽이다. 배는 어느 쪽인가? 바닥에 닿는 쪽이다. 앞에 소금을 뿌려두면 지렁이는 고개를 돌려 반대쪽으로 달아난다. 흥미로운 관찰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관물편(觀物篇)에 보인다. 성호(星湖)의 관찰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칠규(七竅) 오장(五臟)을 갖추지 못한 지렁이도 제 몸의 해를 피해 이()를 향해 갈 줄 아는데, 사람 중에는 파망(破亡)이 뻔히 보이는 데도 눈 뜬 장님으로 그 길을 가서 결국 제 몸을 망치고 일을 그르치는 이가 있다.

 

 

꽃의 향기는 보성(保城)보다 짙은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특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많다. ()이 지나가다가 그 내음을 맡고 말하였다. 아름답구나! 그 향기가 더할 나위가 없도다. 네가 이러한 향기를 지녔더라도 이제 내가 감상하게 됨이 또한 다행일 것이다. 단지 내가 돌아간 뒤에도 끊임없이 향기를 내겠지만, 빈 들판 밖에 날려 흩어져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을 테니 애석하구나. 돌아와 이를 풀이하여 말하였다. 끊임없이 향기를 냄에 너의 본색이 있다면, 빈 들판에 날리어 흩어진다 한들 어찌 성품에서 어긋나는 것이겠는가.

 

 

들꽃은 궁벽한 곳에서 피어나 빈 들판 위로 그 향기를 날려 보낸다. 정작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간혹 들늙은이의 산책길에 이따금 문향(聞香)의 기쁨을 선사할 뿐이다. 꽃이 향기를 냄은 꽃의 본색에 지나지 않는다. 빈 들판에 날리어 흩어짐도 정해진 운명이 아닐까? 향기로운 꽃의 향기와 빈 들판에 흩어짐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꽃은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개의함 없이 향기를 뿜어댈 뿐이다. 인간이 나서 한 세상을 살다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귀인의 정원에서 정원사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피어나는 꽃이 있는가 하면, 산 속 깊은 곳에서 저만치 혼자서 피었다 지는 꽃도 있다. 능력 있는 인재와 그를 알아주지 않는 공평치 않은 세상길에 대한 탄식과 자조가 행간에 깔려 있다.

 

 

()이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길렀는데, 밤낮으로 굽어보니 그 편안함을 얻으면 기뻐하고, 다투게 되면 성을 내며, 죽으려 할 때에는 슬퍼하고, 쫓기게 되면 두려워하며, 서로 더불면 아끼고, 등지면 미워하며, 구함을 탐하면 욕심을 부려 무릇 형기(形氣)로 드러나는 칠정(七情)의 모습이 모두 갖추어졌다. 그러나 사단(四端)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조금도 있지 않았다. 이에 비로소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리()와 기()로 나뉘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물고기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고기도 있다. 편안함을 기뻐하고, 눈앞의 이익을 탐하며, 강한 적을 두려워한다. 물고기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가? 염치와 부끄러움,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가? 없다. 이것이 인간과 물고기를 갈라놓는 기준이 된다.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없다면 미물과 무엇이 다른가? 다시 한 두 예화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야생 거위를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주니까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었다. 그 뒤 문득 먹지 않으므로, 사람이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더욱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먹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몸이 가벼워져,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지혜롭고녀.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人有畜野鵝者. 多與煙火之食, 鵝便體重, 不能飛. 後忽不食, 人以爲病. 益與之食而不食. 旬日而體輕, 凌空而去. 翁聞之曰: “智哉! 善自保也.” 星湖全書

 

 

거위에게는 거위의 생리(生理)가 있다. 이를 벗어나니 병통이 된다. 그러나 보라. 자연은 자신의 리듬을 잘 알아 인위로 거스르는 법이 없다. 열흘이 넘도록 굶은 거위는 스스로를 잘 지켰다.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많이 먹고서 뚱뚱해져 날지도 못하는, 그러고도 그 맛에 길들어 살을 찌우다 마침내 제 몸을 망치는 인간 거위들은 얼마나 많은가.

 

 

개구리는 달아나고 뱀은 뒤쫓는데, 개구리가 빨리 가면 뱀은 천천히 가서 그 형세가 마치 미치지 못할 것 같이 한다. 그러나 개구리의 뜀은 처음에는 반드시 한 장 가량 뛰지만 조금 뒤엔 문득 멈추어 서고 만다. 그런 까닭에 뱀이 갑자기 와서 물어버린다. ()은 말한다. 개구리의 빠름이 해를 멀리 하기에 족한데도, 마침내는 다른 놈에게 물리는 바가 되는 것은 그 뜻이 게으른 때문이다. 재앙과 근심이 이르는 것은 흔히 이쯤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라가 가까운 적국이 밖에서 엿봄이 되는데도 느긋하게 요행으로 면하기만을 바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하겠다.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통을 맥 짚어 진단하는 말인 것만 같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한국인의 조급성은 개구리의 섣부른 자만과 무엇이 다른가?

 

관물편(觀物篇)이익(李瀷)이 안산에 한거(閑居)하면서 생활의 주변에서 사물을 보며 느낀 여러 가지 일들을 77항목에 걸쳐 그때그때 기록해 둔 것이다. 주변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 사물들에 담겨 있는 이치를 캐어, 이를 현실의 삶과 연관지으려는 그의 실학적 사고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이른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다.

 

 

 

 

인용

목차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2.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4. 유아지경과 무아지경

5. 속인과 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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