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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전(麴醇傳) - 1화: 국순네 집안의 화려한 초창기 본문

한문놀이터/한문소설

국순전(麴醇傳) - 1화: 국순네 집안의 화려한 초창기

건방진방랑자 2020. 11. 2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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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순네 집안의 화려한 초창기

 

임춘(林椿)

 

 

麴醇子厚, 其先隴西人也. 九十代祖, 后稷粒蒸民有功焉. 所謂貽我來牟.” 是也.

始隱不仕曰: “吾必耕而後食矣.” 乃居畎畝. 上聞其有後, 詔以安車徵之, 下郡縣所在敦遣. 命下臣親造其廬, 遂定交杵臼之間, 和光同塵. 薰蒸漸漬, 有醞籍之羨. 乃喜曰: “成我者朋友也, 豈不信然.”

旣而以淸德聞, 乃表旌其閭焉. 從上祀圓丘, 以功封中山侯, 食邑一萬戶, 食實封五千戶, 賜姓爲. 五世孫輔成王, 以社稷爲己任. 致大平旣醉之盛.

 

 

 

 

 

 

해석

麴醇子厚, 其先隴西人也.

국순(麴醇)의 자()는 자후(子厚)이니, 그 선조는 농서 사람이다.

 

九十代祖, 后稷粒蒸民有功焉.

90대 조상인 모()가 후직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으니,

 

所謂貽我來牟.” 是也.

시경에 이른바, “내게 밀 보리를 주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始隱不仕曰:

()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으며 말했다.

 

吾必耕而後食矣.” 乃居畎畝.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을 것이다.” 이내 전묘(田畝)에서 살았다.

 

上聞其有後, 詔以安車徵之,

위에서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를 내려 안거(安車)安車: 앉아서 편히 타는 수레를 뜻한다. 수레는 서서 타는 것이 보통이나, 은퇴한 국가의 원로나 重望이 있는 인사를 徵召할 때에는 안거를 하사하며 예우하였다.로 부르며,

 

下郡縣所在敦遣.

()ㆍ현()에 명하여 곳마다 후히 예물을 보내도록 했다.

 

命下臣親造其廬, 遂定交杵臼之間,

하신(下臣)을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 사이에서 정하고

 

和光同塵.

빛에 화()하며 티끌과 같이 하게 됐다.

 

薰蒸漸漬, 有醞籍之羨.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 온자(醞藉)한 맛이 있었다.

 

乃喜曰: “成我者朋友也,

그래서 기뻐하며 말했다. “나를 이루어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豈不信然.”

과연 그 말이 옳구나.”

 

旣而以淸德聞, 乃表旌其閭焉.

드디어 맑은 덕()으로써 알려지니, 위에서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從上祀圓丘, 以功封中山侯,

임금을 좇아 원구(圓丘)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하니,

 

食邑一萬戶, 食實封五千戶,

식읍(食邑) 일만호(一萬戶) 식실봉(食實封) 오천호(五千戶),

 

賜姓爲.

()을 국씨(麴氏)라 하였다.

 

五世孫輔成王, 以社稷爲己任.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으로 자기 소임으로 삼아

 

致大平旣醉之盛.

태평하고 취한 성대(盛代)를 이루었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목차

1: 국순네 집안의 화려한 초창기

2: 국씨 집안의 은둔기

3: 국순의 이름이 절로 알려지다

4: 국순의 잘 나가던 한 때

5: 무리하게 세금을 걷어내며 백성을 그르칠 사람이 되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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