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밤비와 아내 생각②
조운의 시조를 하나 더 읽어보자. 「여서(女書)를 받고」이다.
너도 밤마다
꿈에
나를 본다 하니
오고
가는 길에
만날 법도 하건마는
둘이 다 바쁜 마음에
서로 몰라 보는가
바람아 부지 마라
눈보라 치지 마라
어여쁜 우리 딸의
어리고 고운 꿈이
날 찾아
이 밤을 타고 이백 리를
온단다
딸의 편지를 받았다. “보고 싶은 아빠. 오늘도 그리워서 꿈길을 가서 아빠를 만났어요. 늘 건강하세요.” “그리운 내 딸아! 아빠도 네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꿈길을 자꾸 헤맨단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번번이 너를 놓쳐 안타깝구나. 서로 달려가기만 하느라 중간에 길이 어긋났던 게지. 바람아, 눈보라야! 어여쁜 우리 딸의 고운 꿈길에는 행여 얼씬할 생각도 마라. 그 여린 것이 밤마다 2백 리씩 애비 찾아 오가는 길을 아무 방해도 말아주려무나.”
相思相見只憑夢 | 서로 그려 만나볼 길 다만 꿈길뿐이라 |
儂訪歡時歡訪儂 | 그대 날 찾아올 젠 나도 그댈 찾는다오. |
願使遙遙他夜夢 | 원컨대 아마득히 다른 밤 꿈속에선 |
一時同作路中逢 | 한때에 길을 떠나 길 위에서 만나요. |
황진이의 한시 「상사몽(相思夢)」이다. 양주동 선생의 번역으로 더 유명하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 같이 떠나 노중(路中)에서 만나를지고”
두 사람 시의 의경이 맞춘 듯 똑같다. 하지만 임 그려 애타는 정을 담은 원시를 먼 데서 온 딸의 편지를 받고 느끼는 안타까운 부정(父情)으로 환치시킨 데 그의 빼어난 솜씨가 있다. 조운이 현대시조는 이렇듯 한시의 정서에 뿌리박아 참신한 풍격을 일궈낸 것이 많다.
인용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2. 한시와 모더니즘①
3. 한시와 모더니즘②
4. 지훈과 목월의 거리①
5. 지훈과 목월의 거리②
6. 밤비와 아내 생각①
7. 밤비와 아내 생각②
8. 밤비와 아내 생각③
9. 낯선 마을의 가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