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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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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조지훈은 또 하나의 시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低聲暗問相思否, 手整金𨥁少點頭].’ 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시도 잊을 수 없어요 하고 빨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이 동양의 수법이란 곧 한시의 수법이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입상진의(立象盡意), 이미지를 세워 할 말을 대신한다. 현대시도 한 가지다. 현대시와 한시는 여러 모로 참 닮았다.

 

한시와 현대시의 관련을 찾는 가장 쉽고 분명한 방법은 표현의 유사로 논하는 것이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함께 감상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1934문장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남쪽으로 창을 낸 집에서 고작 한참갈이의 작은 뙈기밭에 강냉이를 심고, 괭이와 호미로 파고 갈며 살고픈 소박한 바람을 노래했다. 구름이 언덕 너머의 세계로 나를 꼬여도 그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다.

 

3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가 이 시의 압권이다. 이백(李白)산중문답(山中問答)12구에서 “‘날더러 무슨 일로 산에 사냐 묻길래, 웃고 대답 아니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다[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고 노래했다. 이백이 한자로 14자나 들여 한 말을 그는 한글 단 7자로 표현했다. 놀라운 압축능력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밋하다. 3연이 시 속에 자리 잡는 순간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 같이 들어온다. 이 좋은 도시를 떠나 왜 굳이 그런 곳에서 살려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저 웃겠다고 했다. 그는 도회의 찌든 삶 속에서 구름이 언덕을 넘어가고 강냉이가 땀과 함께 익어가는 건강한 삶을 소망했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이 망향인 것으로 보아, 시 속의 꿈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그치고 말았던 듯하다.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저 웃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여유롭다. 복사꽃이 물위로 떠가는 것을 보니 인간 세상이 아닌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수복의 봄비를 읽는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에서 정지상(鄭知常) 송인(送人)비 개인 긴 둑에 풀빛 고운데[雨歇長堤草色多]”를 떠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우연히 같게 된 한 구절 때문에 작품 전체를 영향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왠지 개운치 않다. 표현의 유사성만으로는 상호 영향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인용

목차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2. 한시와 모더니즘

3. 지훈과 목월의 거리

4. 밤비와 아내 생각

5. 낯선 마을의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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