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말이 씨가 되어
흔히 “글은 바로 그 사람[文如其人].”이라는 말을 한다.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니, 그 시의 한 구절로도 그 사람의 궁달을 점칠 수가 있다. 이를 달리 기상론(氣象論)이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언어의 힘을 믿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시화를 읽다 보면 의외로 이런 예화와 자주 접하게 된다. 비유가 조금 유감스럽긴 하지만, 예전 어느 가수가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라는 노래를 부르더니, 실제 그렇게 되고 만 것 같은 예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시참(詩讖)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개 이는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됨을 경계한 것이다. 입에서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닌 것처럼, 생각도 없이 되는대로 쓴 한 편의 시가 어느 날 재앙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법이다. 말 한 마디, 시 한 구절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우홍적(禹弘績)이란 이가 일곱 살에 어른이 ‘노(老)’와 ‘춘(春)’자로 연구(聯句)를 짓게 하니, 읊기를 “늙은이 머리 위의 눈은, 봄 바람 불어도 녹지를 않네[老人頭上雪, 春風吹不消].”라 하였다. 사람들이 기특하게 여겼으나 식자는 이를 보고 그가 요절할 것을 알았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머리 위에 눈이 삶의 근심이 가져다 준 얼룩이라면, 봄바람이 불어와 마땅히 이를 녹여 주어야 옳다. 그런데 그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이미 녹일 수 없는 삶의 근심을 말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또 『수촌만록(水村漫錄)』에 보면 안명세가 아홉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진달래를 따서 연적에 끼워 놓고 시를 짓게 하니, 즉석에서 짓기를 “진달래 꽃 한 떨기, 푸른 산 중에서 와서, 연적에 생애를 부치었으니, 타향 나그네 신세와 한 가지로다[杜鵑花一萼, 來自碧山中. 硯滴生涯寄, 他鄕旅客同].”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이 시를 보고 울었다. 그 시에 나타난 뜻이 처량하고 괴로워 멀리 현달할 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뒤에 그는 과연 사화에 연루되어 20대의 젊은 나이에 화를 당하고 말았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예전 중국의 유명한 기생 설도(薛濤)가 어렸을 때 우물가 오동을 읊은 시를 소개하고 있다. 시에 이르기를, “가지는 온갖 새들을 다 맞이하고, 잎새는 지나는 바람을 전송한다네[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라고 하였다. 또 송나라 때 어떤 소녀가 있었는데 들꽃을 노래하기를, “다정한 목동들이 자주 머리에 꽂고, 주인 없는 벌과 꾀꼬리 멋대로 깃들어 자네[多情草木頻簪髻, 無主蜂鶯任宿房].”라 하였다. 결국 뒤에 모두 기생이 되었는데, 대저 시란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 시구가 그의 운명을 이미 예견하였다는 것이다.
또 정승 상진(尙震)은 도량이 넓고 커서 남의 장단점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판서 오상(吳祥)이 시를 지었는데, “희황 때의 좋은 풍속 땅을 쓴듯 사라지고, 봄바람 술잔 사이에만 남아 있구나[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酒杯間].”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진이 “어찌 그리 박절하게 말하는가?”하며, “희황 때의 좋은 풍속 지금도 남았으니, 봄바람에 술잔 사이를 살펴보게나[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酒杯間].”라고 고쳤다. 두 글자 씩을 바꾸었을 뿐인데, 시의 의경은 판연히 달라졌다. 두 사람의 사고 방식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역시 기상이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방식의 차이가 삶의 방식의 차이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은 또 자명하다.
인용
2. 시마(詩魔)의 죄상
3. 시를 쓰면 궁해진다
4. 말이 씨가 되어
5. 말하지 않고 말하기
6. 남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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