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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102. 서산시의 남해를 보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102. 서산시의 남해를 보며

건방진방랑자 2021. 2. 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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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의 남해를 보며

 

 

홍성으로 향하는 길은 한산한 길이다. 96번 지방도에 접어드니 서해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가면 A지구 방조제를 지나 홍성으로 가게 된다.

 

 

▲ 부석면을 지나 한적한 길을 따라 간다.

 

 

 

최고의 데이트 코스, A지구 방조제

 

오늘은 일요일이라 바다로 나들이 나온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방조제엔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낭만을 향유할 수 있다. 시원하면서도 약간 추운 듯한 바닷바람과 약간은 비릿한 바다내음, 드넓게 펼쳐진 서해안의 광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았다. 연인들이여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거든 서산의 A지구 방조제로 오시라.

 

 

▲ 최고의 데이트코스. A지구 방조제.

 

 

 

서해인가? 남해인가?

 

그런데 여기서 생뚱맞은 질문 하나. 지금 내가 보는 바다는 서해인가, 남해인가? 일반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 자체가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맞다, 여긴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서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해인 줄 뻔히 알면서 질문을 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그 논지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 서산 서부면에 좋은 기억을 한아름 남기고 간다.

 

 

지금 난 서산시의 남쪽에 있는 바다를 보며 걷고 있다. 만약 서산시가 독립국가라 한다면, 지금 보는 바다를 남해라고 할 것이다. ‘서해에서 남해로 이름이 바뀌는 변화엔 주체가 누구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그다지 생뚱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개념으로 규정한다는 건 늘 그러하듯이 보는 각도,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에 대한 절대적인 규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지 않을까. 그건 그 자체를 우리의 의식 속에 어거지로 껴 넣으려는 만용이지 않을까.

언어로 모든 게 규정될 수 있다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지개란 개념어에 포획된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를 버리고 비 온 뒤 청명한 하늘을 가르며 찬란한 빛을 분사하는 자연 속의 무지개를 볼 일이다. ‘해충이란 개념 속에 포획된 수많은 생물종에 새겨진 인간적인 관점을 버리고 다양한 생물종을 있는 그대로 볼 일이다(조안 엘리자베스 룩,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민들레, 2002). 이처럼 내 눈에 보인 바다는 서해 또는 남해란 단어에 포획되지 않는 드넓은 수평선과 그 안에 넘실거리는 힘의 역동성을 지닌 그 무엇이었을 뿐이다. 그 바다를 맘껏 감상할 일이지 남해니, 서해니 따질 필요가 무에 있을까.

그렇다면 동해에 대한 생각도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서해를 중국 측 명칭인 황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부르면서 동해는 왜 일본해라고 못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명칭을 통해 분쟁의 실마리로 삼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려는 일본의 야욕에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명칭 따위에 얽매여서 큰 것을 잃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이와 같은 측면에서 평화의 해()’라고 새 명칭을 부여하려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상은 선각자적인 면모가 있다고 할 만하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필요하다. 난 지금 서산의 남해안을 따라 홍성으로 가고 있다.

 

 

▲ 당신이 지금 A지구 방조제에 서 있다면 그 때 보이는 바다는 서해인가? 남해인가?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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