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의 원리
Uncertainty Principle
같은 시대라는 동시성(同時性)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섞이게 만든다. 철학, 과학, 예술은 원래 전혀 다른 분야에 속하지만 같은 시대의 철학, 과학, 예술은 묘하게도 동질성을 보인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그 접점이 클 때도 있고 쉽게 발견되지 않을 만큼 작을 때도 있다. 20세기 초는 접점이 역사적으로 가장 컸던 때에 속한다.
우선 이 시기의 철학은 전통적 형이상학이 해체될 조짐에 처해 있었다. 19세기 후반을 주름잡았던 실증주의(實證主義)를 마지막으로 그 뒤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철학적 이성의 위기를 부르짖었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을 계승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실존적 현상학은 인간 주체가 고정된 실체이기는커녕 속이 빈 그릇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대상화되지 않는 존재임을 드러냈다. 분석철학의 태두인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은 철학의 한계를 언어로 제한하고, 윤리나 종교, 예술 등 전통 철학이 주제로 삼았던 것들을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예술의 분야는 어떠했는가? 모더니즘, 상징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전통적인 도덕과 이념으로부터 벗어난 비합리성과 무의식을 강조하는 사조들이 잇달았다.
아무리 합리성이 무너진 시대라 해도 과학은 역시 이성을 토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과학은 합리성의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조지 가모브(George Anthony Gamow, 1904~1968)가 20세기 초를 가리켜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이라고 말한 바 있듯이 이 시기에는 과학적 합리성마저 크게 흔들렸다. 이 30년의 초기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이론은 절대적 관점의 여지를 제거하고 모든 인식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밝혔으며, 그 30년의 마지막 무렵에 발표된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탄생을 알렸다.
불확정성이라니 무엇을 확정할 수 없다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물체(특히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확정할 수 없다는 원리다. 일반적으로 물체의 운동을 예측하려면 위치와 운동량을 알아야 하는데, 불확정성 원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못박는다(현재의 과학과 기술로 알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자동차와 같은 일반적인 물체는 위치와 운동량을 알기 쉽지만 이것은 불확정도가 극히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확정성 원리는 주로 소립자처럼 작은 물체에 적용된다. 핵에너지가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안다면 소립자의 물리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려면 양자도약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에너지를 받은 전자는 들뜬 상태가 되어 원자핵으로부터 더 먼 다른 궤도로 옮겨간다. 그런데 문제는 옮겨가는 방식이다. 축구공을 걷어찬 것처럼 옮겨가면 좋겠는데 전자는 깜짝쇼를 벌인다. 마치 SF 영화에서 보는 순간이동처럼 전자는 기존의 궤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동시에 다른 궤도에 버젓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도약이라고 부른다.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는 보어(Niels Bohr, 1885~1962)가 발견한 양자도약의 개념을 바탕으로 불확정성 원리를 밝혀냈다. 특정한 순간에 전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실험을 상상해보자. 전자의 위치를 알려면 먼저 전자에 빛을 쪼여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빛 에너지라 해도 소립자인 전자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받는 순간 전자는 양자도약을 일으켜 원래의 궤도에서 사라져버린다. 즉 전자는 관찰하려는 순간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이것이 불확정성 원리다.
전자를 관찰할 수 있는 초고성능 현미경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설사 그런 장비가 있다 해도 전자를 ‘원리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확정하려 애쓸수록 불확정도는 더욱 커진다. 확실한 앎을 얻으려 할수록 확실성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셈이다.
이 불확정성 원리는 직접적으로는 양자역학에서 통용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는 데 숙명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양자도약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동시성의 관념을 뿌리째 뒤흔든다(→ 상대성), 에너지를 받은 전자는 한 궤도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다른 궤도에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어느 궤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동시성이 흔들리면 인과율(因果律)도 흔들린다. 기존의 물리학에 따르면 특정한 순간 물체의 상태는 그 직후의 상태를 결정한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는 전자의 현재 상태를 알았다고 해서 다음 상태를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철학과 예술만이 아니라 과학의 분야에서도 기존의 합리성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성의 시대가 끝났거나, 아니면 최소한 전통적인 이성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했다. 평소에 서로 소원했던 철학과 예술과 과학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큰 폭의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인용
'어휘놀이터 > 개념어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념어 사전 - 빅 브라더(Big Brother) (0) | 2021.12.18 |
---|---|
개념어 사전 - 빅뱅(Big Bang )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변증법(Dialectic)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민족주의(Nationalism) (0) | 2021.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