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다음의 주제는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Religions)다.
얼마전에 참으로 놀라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현각(女覺)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승려의 컬럼이었다(1999년 9월 28일자). 현각은 얼마전 KBS의 다큐멘타리, 『만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이었다. 해맑은 얼굴,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명료한 자세가 수도인의 기품을 물씬 풍긴다. 미국 동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바드대학에서 신학ㆍ철학을 공부한 나의 후배이기도 한데 참 사려 깊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 컬럼의 제목이 ‘화계사의 불’ 이었다. 얘기인 즉, 기독교 광신도들이 화계사가 마귀사는 곳이라고 여러차례 와서 몰래 방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배타적 전도주의(the exclusive evangelism)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멧세지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연실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화계사하면 우리는 숭산스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숭산스님과 나와의 해후에 관해서는 나의 책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1989)에 소상히 밝혀져 있다. 세계적으로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4대 생불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숭산스님의 위대한 진면을 우리 국내 불교계나 종교계에서는 너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분의 가치가 그렇게 세속적인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삼 왈가왈 할 건덕지가 없다. 그러나 나와 화계사와의 관계는 참으로 먼 옛날, 나의 영혼이 순결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싸여져 있었던 그 푸릇푸릇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계사는 바로 내가 다닌 한국신학대학에서 엎드리면 코닿는 이웃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신학대학 입학원서를 사러 처음 방문했을 때 생각이 난다. 수유리 종점 못미처 마찻길 같은데서 뻐스를 내리면 그 신학대학 들어가는 길은 미루나무가 일렬로 쪼르란히 서 있는 아주 시골 동구밖 기다란 논두렁같이 생긴 그런 길이었다. 그 미루나무 길을 따라 한참을 울창한 북악기슭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탁 트인 화창한 공간에 아주 아담한 금잔디의 동산이 나오고 그 동산위로 하이얀 니은자 모양의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우뚝 솟은 탑꼭대기에는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는, 조형적으로 참 인상깊은 글씨가 눈에 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앞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자그마한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밑으로는 아름다운 개울이 졸졸 흘렀다. 그 개울은 바로 화계사를 돌아 흘러내리는 수유계곡의 청정한 물이었다.
그 하이얀 임마누엘 탑을 들어섰을 때, 나는 갑자기 어떤 광채에 쏘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어떤 노신사가 우뚝 서 있었다. 흰 동정에 옅은 뼈테 안경을 쓴 얼굴에서 발하는 빛의 느낌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키가 훤칠했고, 얼굴은 웃음이 만면하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화색이 화창한 봄날씨보다 더 환했다. 옆에서 누구와 유쾌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분이 누구인 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그 얼굴에서 받은 해맑은 느낌이 나로 하여금 신학대학 입학의 결심을 굳건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분이 바로 문익환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그리고 내가 뵈웠을 그 당시 그 선생님은 구약성경 공동번역판 원고집필에 몰두하고 계셨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지금 문익환하면, 맹렬한 공산주의 운동가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정부 데모의 투사, 최루탄의 혼탁한 공기속을 홀로 거니는 거친 얼굴을 연상하기 쉽다.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 세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 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 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 데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 당시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내가 고려대학교 다니던 것을 중퇴하고,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관절염이라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의 투쟁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단순한 물리적 동기와 맞물려 있었다. 한국신학대학은 당시 전교생이 캠퍼스에서 사는 거의 유일한 기숙사대학이었다. 따라서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나로서는 기숙사와 학교강의실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별 불편없이 학교를 왔다 갔다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당시 나는 구보나 오래 서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뻐스타고 학교를 통학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신학대학은 나에게 더 없는 배움과 삶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당시의 한신의 캠퍼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 전원이 캠퍼스 안에서 같이 살았다. 조그마한 낮은 1ㆍ2층짜리 후생 주택이 수유리 화계의 송림둔덕 위로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었다. 한 집에 보통 학생들이 7.8명 같이 살았다. 그리고 새벽 먼동이 트면, 학생들이 모두 소나무숲의 새벽기운을 헤치고 성스러운 본관의 채플 홀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채플가는 언덕위의 등성이 오솔길에서 만났다. 여기저기 여명을 헤치고 나온 그들은 만나면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그러면 모두 교회에서 성가대의 경험이 있는 남녀였기 때문에 꼭 한사람이 멜로디를 시작하면, 테너ㆍ쏘프라노ㆍ알토ㆍ바리톤의 사중주가 자연스럽게 울려 퍼졌다. 푸르른 새벽기운, 여명이 입김을 붉게 물들이는 그 새벽, 우리들은 이러한 성스러운 합창속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한신대 학생들의 합창의 배경으로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화계사의 범종소리나 목탁소리가 같이 하모니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체험 속에서 성스럽게 살지라도 멀리서 울려 퍼지는 범종의 소리를 그 어느 누구도 불경스럽게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한국 신학대학 학생들은 때로 윗동네 화계사에 가끔 놀러가기도 했다. 그리고 스님들을 한신대 마당으로 초청하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앞에서 축구대회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나의 과거 추억을 더듬을 때, 도무지 기독교인들이(물론 한신대와는 관련 없다) 화계사에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스님과 목사는 친구지간이래도, 신도와 신도끼리는 잘 싸운다는 달라이 라마의 얘기가 얼핏 생각난다.
내가 솜니 원광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느 이리 교회에서는 그 지역에서 오래 터전을 일궈온 원불교가 망하기를 기원하는 저주의 대기도회가 열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물론 내가 잘못들은 풍문이기를 바라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교회 목사님은 교회사를 크게 잘못 배웠다. 기독교의 교회사는 바로 탄압속에서 강성해진 역사인 것이다. 로마제국 속에서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를 외친 사람들의 역사가 그러했고, 모든 밋션 속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역사가 그러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원불교가 망하기를 저주하는 동시에 곧, 원불교의 강성해짐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원불교에 하나님의 은총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매우 하찮은 얘기이지만, 만약 이런 사소한 얘기들이 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져 우리나라 종교신도들간에 대규모의 폭동사태가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러한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모든 종교 형태가 그 종교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보수성과 광신성 즉 흰더멘탈리즘(Fundamentalism) 이라고 총칭되는 신령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티즘처럼 단시간내에 폭발적인 교회조직을 확보한 사례는 이 지구상의 모든 기독교 전도사에 유례가 없는 사실이다. 세계사의 한 기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광신적 성격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으로 신도들의 헌금을 날려버리는 목사님의 명예를 위하여 일국의 최대 방송조직을 장악하는 쿠데타군단의 조직력을 과시할 정도로 흉포하다. 뿐만인가? 조계종 총무원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만 되면 스님들이 창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이 위성을 타고 전세계로 방영되곤 하는 것이다. 내가 뉴욕에서 침구학 강의를 하는데 그곳에서 듣고 있던 점잖은 미국의사 한 분이 일어나서 갑자기 질문하기를, 한국의 스님들이 낫ㆍ칼을 들고 막 싸우는 모습이 미국 테레비 뉴스에 나오는데,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으냐고 묻는 것이었다. 불교의 비폭력적 평화주의의 모습에 대한 평소의 인상과 한국의 불교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권승(權僧)들의 광란 이면에는 아주 깊이있는 수행불교의 전통이 우리 한국에는 살아있다고 강변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맥락없이 던져지는 이런 인상발언에 대해 나는 구차스러운 변명 이상의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미국사회를 끊임없이 들끓게 하고 있는 한국산 종교의 갖가지 활약상, 신흥종교라고 보통 범주화되는 대부분의 한국의 민간종교단체가 뉴스메디아를 장식하는 정보형태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역시 지나치게 성스럽고 지나치게 영적이다. 역시 신령스러운 샤만(shaman )들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은 모든 종교가 나쁜 것이다. 종교는 선(善)이 아니라, 악(惡)이다. 이러한 나의 갑작스러운 충격적 발언에 많은 사람이 의아스럽게 생각하겠지만, 한번 마음을 놓고 생각해보라! 인간 세상에 아예 종교라는 것이 있는 것이 좋겠는가, 없는 것이 좋겠는가? 개미 사회에 목사개미와 개미교회가 있는 것이 좋겠는가, 없는 것이 좋겠는가?
사실 인간세에 종교라는 것이 없어서 생기는 불선(不善)보다는, 있어서 생기는 불선(不善)이 더 큰 것이다. 인류역사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라!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저지른 모든 끔찍한 대규모 죄악상은 거의 99.9%가 종교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것이다. 멀리 눈을 안 돌려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의 살상전쟁이 모두 종교 때문에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아랍, 코소보, 보스니아, 씨에라 레옹, 라이베리아, 인도, 파키스탄, 토오쿄오 지하철의 독극물 살인…… 셀 수도 없는 우리시대의 모든 비극, 인간이 개인적으로 저지를래야 저지를 수도 없는 흉악한 대규모 악들이 모두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과연 종교가 좋은 것인가?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고대사회의 모든 제식이 종교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종교 때문에 인간을 희생하는 제물(human sacrifice)이 생겨나고, 사제와 비사제간의 계급적 불평등이 생겨나고, 인간이 노예처럼 어떤 권위 앞에 복속되는 모든 모습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마비시키는 모든 기만적 행태가 종교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의 해방과 평등을 부르짖는 모든 종교의 슬로건의 이면에 반드시 종교라는 권위조직에로의 인간의 복속이 있지 아니한 예를 우리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해방ㆍ평등의 실천만으로는 근원적으로 종교라는 조직이 유지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종교가 뭐가 좋은가? 없는 것보다는 있어서 해악이 더 큰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나라 신흥종교의 모든 형태가 ‘사기성’을 지니지 아니한 예를 본 적이 있는가? 카메라 조작으로 성령이 내리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대고, 연보돈으로 축재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탁명환(卓明煥, 1937~1994, 사이비 종교 연구가) 선생을 살해할 정도로 그 배면에는 확인되지 않은 의문사들이 비일비재하고, 항상 검찰도 두려워 손을 대기 꺼려하는 암막의 베일이 종교가 아닌가? 도대체 종교가 뭐가 좋은가? 어떻게 종교를 선(善)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나의 항변은 도무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항변해도 종교는 인간세에서 없어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니이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이 종교란 놈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이 종교란 놈의 주범인 신(神)을 살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00년에 생(生)의 막을 내린 20세기의 예언자 니이체는 드높이 선포했다. ‘신(神)은 죽었다(God is Dead!).’
그런데 니이체는 헛지랄을 한 것이다. 도무지 죽일 수 없는 것을 죽인 것이다. 신(神)은 결코 사살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니이체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20세기는 인류사상 가장 종교가 보편화 되고 성행했으며, 인류사상 가장 많은 종교적 죄악이 저질러진 세기였다. 20세기는 인류사상 가장 많은 신흥종교들이 발생했으며, 20세기야말로 모든 신(神)들의 그야말로 신나는 축제장이었던 것이다. 니이체의 신의 사망선고는 결국 니이체라는 개인의 서구문명에 대한 양심선언에 불과했던 것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허점을 파고든다. 인간의 이지(理智)가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그 이면에 생기는 공허를 파고든다. 인간은 강하지만 때로 한없이 나약하고, 혈기왕성하지만 때로 한없이 가냘프고 감상적이다. 항상 사회라는 군집을 형성하여 북적북적 비벼대지만 그럴수록 고독하다.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비합리적 감성에 호소한다. 치밀한 분석에 열을 올리다가도 맹목적 믿음에 호소한다. 종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배면에 구조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배면이 있는 한 종교는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종교는, 문학이나 시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는 것처럼, 그것 또한 인간 존재의 본원적 측면을 형성하는 것이다.
종교는 분명히 악이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필요악이다. 그럼 이 악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악을 제거할 방도가 있는가? 니이체의 실패를 계속 반복해야 할까?
종교는 악이다. 그리고 종교는 근원적으로 인간에게서 제거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종교라는 악의 배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종교적 악은 엄청난 선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평소 때 할 수 없었던 희생을 가능케 하고,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절망에서 구원하며, 죄의식을 씻어주고, 모든 인간을 사랑과 화합으로 인도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의 믿음 안에서 한 몸이 되며, 서로의 생명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주며,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가능케 하는 질서와 극기와 이념을 제공한다. 종교는 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세의 모든 악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인간세에 존속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악의 배면의 엄청난 선의 가능성, 그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종교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용렬한 무신론자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바로 종교를, 선의 가능성, 그 본래적 모습으로 복귀시켜야 하는 것이다. 종교의 모든 죄악은 알고 보면, 종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종교를 빙자한 인간의 탐욕이 저지르는 것이다. 종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요, 인간세의 제도가 저지르는 것이다. 종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나 승가의 역사로 이해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가장한 인간세의 조직의 모습이다. 기독교라는 추상체가 그 교회조직에 어떤 구실을 제공했을 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조직의 이해관계를 떠나 그 교회조직을 발생시킨 원초적인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로 회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봐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를 듣고 보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20세기가 니이체의 예언과는 달리 종교가 지극히 성행한 시기라고 한다면, 우리의 문제의식은 제1의 주제와 일치한다. 즉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놀라운 비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만큼 종교계에도 놀라운 비약과 번영이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매우 편협한 지역주의(localism)의 문화적 틀 속에 갇혀 있었다. 대부분의 종교는 그 지역의 관습이나 제식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종교조직을 구성하는 성원의 삶의 방식, 우리가 문화적 가치라고 부르는 갖가지 형태와 밀착되어 있었다. 종교의 보편화를 막는 일차적인 요소는 그러한 관습체계였다. 기독교가 아직까지도 유태인 특유의 관습체계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그러한 해방이 바로 예수나 사도 바울이 원하던 바였지만, 한국의 목사님들은 아직도 구약과 신약을 구분 못하고, 새로운 약속(신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낡아빠진 옛 약속(구약)의 관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에서 발생한 종교를 보면, 전라도사람의 특유의 풍습과 촌스러운 가치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종교는 종교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구조 그 자체가 그러한 지역주의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의 그러한 방식의 조직이나 관습이나 율법의 특수성을 강요하기 힘들다. 한번 생각해보자!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그 얼마나 한국사람들 입에서 마늘냄새가 난다고 쵸오센진을 경멸했는가? 일제시대 때 케이죠오(京城)에서 전차를 타면, 저 뒷문에서 한국사람이 한명 올라와도 앞문에 있던 일본사람이 ‘닌니쿠 니오이(大蒜 香い, 마늘냄새)’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식생활이 비교적 담박한 편에 속하는 것은 사실늘을 저주하는 종교적 금기의 제식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인들은 거의 마늘 처먹느라고 환장한 사람들처럼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의 ‘김치’가 세계인의 ‘킴치(Kimchi)’가 되어 버렸고, 일본은 이제 키무치의 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지노모토 대신 키무치노모토가 대유행하고, 매운 음식이라면 그렇게도 질색하던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라면을 선호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세계 김치시장을 놓고, 한국의 킴치상품과 일본의 키무치상품이 맞대결을 벌려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국의 킴치 상품계는 일본의 키무치는 김치로, 규정할 수 없다는 선포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케이죠오가 아닌 토오쿄오(東京)에서 야마노테센 덴샤(電車) 뒷문에 김치냄새를 풍기는 한국인이 올라타면 앞문에 앉아있는 일본인이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고 입맛이라도 쩍쩍 다실 셈인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날생선을 먹는다 하면 귀신살코기라도 뜯어 먹는 것인냥 질겁을 하던 양키 아저씨들이 이제는 스시바에 가서 사시미를 먹을 줄 모르면 맨하탄 한복판에서도 문화인 행세를 할 수가 없다.
기독교 성찬식에 포도주를 쓰는 것은 단순히 예수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통용되던 술이 포도주였기 때문에 생겨난 관습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성찬의 본질적 의미와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신부ㆍ수녀가 삥 둘러 앉아 걸쭉한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잡수면서 성찬제식을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4,000년의 연속성이 40년의 불연속성으로 단절되는 변화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삶의 양식이다. 지역주의의 편협성의 파괴다. 따라서 이제는 종교도 그러한 지역주의적 관습체계로부터 해방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공통적 이해의 폭이 증대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가 싸우는 것은 종교조직과 종교조직간의 이해(利害)의 상충(相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利害)의 상충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편견과 몰지각, 선입견과 몰이해에 뿌리박고 있다. 21세기 인류의 최대의 과제는 바로 20세기에 벌린 인류의 종교의 잔치를 통해 이제 서로를 이해하는 공존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파티에서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낯설어지지 않게 마련인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이제 배타적 전도주의(the Exclusive Evangelism)를 하루속히 포기해야 한다. 나의 믿음의 방식만이 오로지 인류를 구원한다는 좁은 편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종교의 공존!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사이비종교이든, 신흥종교이든, 저등종교이든 다 수용해야만 하는가?
종교에 있어서 구극적으로 사이비와 진짜, 신흥과 구홍, 저등과 고등에 관한 명료한 가치 기준을 내세울 수 있는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사이비라면 다 사이비일 수 있는 것이요, 진짜라면 다 진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의 종교적 현황은 우리가 모든 종교현상을 모두 선(善)으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측면들이 분명히 엄존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나 김용옥이 신일 수는 없다. 종교의 고ㆍ저등, 다시 말해서 신의 고ㆍ저등을 판단할 수 있는 지고(至高)의 신이 아니다. 신을 법정에 세우는 하이에스트(highest) 코트(Court)의 판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내가 확연히 고등과 저등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모든 고등종교는 ‘자기비판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가 매우 문제점이 많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등종교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서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는 악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매카니즘(mechanism)을 확보해왔다는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게 천동(天動)을 강요하고 부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를 화형에 처하는 그런 종교가 아닌 것이다. 불교 역시 기나긴 인간세의 역사를 통하여 자기비판과 자기성찰의 확고한 대승정신을 함양해왔다. 불교처럼 반불교적 교리들을 자내에 수용하는 폭넓은 종교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선(禪)만 해도 그것은 불교를 부정하는, 인간의 본연의 깨달음의 성찰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이비종교나 신흥종교의 문제점은 바로 자기비판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판하는 자들을 적대적 관계로만 설정하며, 자기들의 좁은 편견을 절대화시키고 우상화시킨다. 기독교도 그러한 모랄에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는 사실 기독교가 아니라 어느 목사 개인의 신흥종교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고등종교의 조직은 리더십의 교체를 자유롭게 행하는 매카니즘(mechanism)이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이비종교는 리더십이 고착되어 있다. 종교가 자기를 개방할 수 없으면 그것은 종교의 자격이 없다. 어둡고 싸늘한 공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백설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태양의 밝은 양광 아래서 금방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고 마는 그런 백설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순결을 가장한 종교가 그러한 백설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라는 것도 알고 보면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종교정신이 위대해도 돈이 없으면 그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종교의 돈은 대개가 헌신하는 신도들의 헌금이다. 그 돈에 진실이 있을 때 종교는 위대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어둡고 폐쇄되고 자만과 독선에 빠지면 결국 그 돈의 모임은 유지될 수가 없다. 종교도 돈이 없으면 끝장이다. 종교도 흥행이 안 되면 파장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흥망성쇠는 매우 단순한 것이다. 자체의 진실이 확보되면 그것은 자기갱생을 계속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망한다. 우리는 종교의 부흥과 전도를 도울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망을 도와야 한다. 모든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사이비종교들이 자망(自亡)하도록 우리는 우리민족을 계몽시켜야 하는 것이다.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모든 종교들이 폐업을 재촉하도록 우리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헌금을 안 내면 종교는 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20세기가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종교의 흥행이 잘 된 한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 우리역사는 종교가 흥행이 잘 안되는 세기가 되어야만 종교가 건전해지고, 종교간의 화평과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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