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금헌당고종(織錦獻唐高宗)」이나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으로 불리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大唐開鴻業 巍嵬皇䣭昌 | 훌륭한 당(唐)나라 큰 기업 여니 높디높은 천자님의 교화(敎化) 크게 이루어지도다. |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 융복(戎服) 입고 전쟁을 그치게 하여 천하를 평정하고 문교(文敎)를 닦아 백왕(百王)을 계승하였네. |
統天崇雨施 物理體含章 | 하늘 뜻 이어서 혜택 내리고 만물을 다스림에 감춘 덕 드러나네. |
深仁諧日月 撫運邁時康 | 깊은 인덕(仁德)은 일월(日月)에 짝하고 세상 진무는 태평을 힘쓰네. |
幡旗旣赫赫 鉦鼓何煌煌 | 휘날리는 깃발은 어찌 그리 빛나며 울리는 북소리는 어찌 그리 웅장한가! |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 오랑캐로 천자의 명(命) 어기는 자는 칼 앞에 엎드려 천벌을 받으리. |
淳風凝幽顯 遐邇競呈祥 | 순후한 풍속 온누리에 가득하여 멀리 가까이서 다투어 상서(祥瑞) 드리네. |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 | 사시(四時)는 옥촉(玉燭)같이 조화롭고 칠요(七曜)는 만방(萬方)을 순행하네. |
維獄降帝輔 維帝任忠良 | 높은 산은 어진 재상을 내리고 천자는 충량(忠良)한 이에 일을 맡기네. |
五三含一德 昭我皇家唐 | 삼황오제(三皇五帝) 한 덕을 이루어 우리 당(唐) 황실(皇室) 밝혀준다네. 『東文選』 卷四 |
「태평송(太平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전해주고 있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이나 결자(缺字)가 많다. 여기서는 최선본(最善本)인 『동문선(東文選)』의 것을 본문으로 싣고 제목도 『동문선(東文選)』을 따랐다. 영휘(永徽) 원년(元年, 650)에 백제를 격파한 진덕여왕(眞德女王)은 이 작품을 비단에 수놓아 김법민(金法敏)으로 하여금 당(唐) 고종(高宗)에게 바치게 하였다. 해박한 전고(典故)를 사용하여 당(唐)의 개업(開業)을 칭송하고 신라가 외이(外夷)로서 순종할 것임을 비친 오언고시(五言古詩)다.
당(唐)의 위업(偉業)을 찬양하면서도 비굴함에 흐르지 않은 것이 이 시의 높은 곳이다. 이 시의 풍격(風格)에 대해서는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2번에서 웅혼고고(雄渾古高)라고 함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비평도 없지 않다. 김만중(金萬重)은 그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이러한 문자(文字)가 나올 수 없으니, 이는 돈을 주고 중국사람에게 사들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이 무렵까지도 신라에서는 중국에서 조서(詔書)가 내도(來到)하면 이에 통효(通曉)한 사람은 강수(强首) 하나뿐이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 작품 역시 강수(强首)가 지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배제할 수 없다. 신라에의 한문 보급이 일반화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당시의 사정에서 보면, 시경시(詩經詩)의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유루(遺漏) 없이 실천한 이러한 작품의 출현이 당시 신라의 보편적인 문화현상에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돌출현상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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