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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송시학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1. 송시학의 수용, 2) 김극기와 진화의 소이(김극기)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송시학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1. 송시학의 수용, 2) 김극기와 진화의 소이(김극기)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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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극기(金克己)는 그 많은 시작(詩作)에 비하여 그의 행적을 알게 하는 기록은 너무도 빈약하며 시화서(詩話書)에 일화(逸話)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개구성장(開口成章)하여 경인어(驚人語)가 많았으나 등과후(登科後)에는 서울에 오지 않고 일인운사(逸人韻士)와 산림(山林)에서 소오(嘯傲)하다가 고종(高宗) 때에 벼슬이 한림(翰林)에 이르렀고 사신(使臣)으로 금()에 갔다가 그곳에서 문명(文名)을 떨쳤으나 중도(中途)에 객사(客死)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생평(生平)의 전부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김원외집(金員外集)【『보한집(補閑集)』】, 김거사집(金居士集)【『용재총화(傭齋叢話)86 등으로 불리운 시문집(詩文集)이 있어 조선초기까지도 유전(流傳)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유저(遺著)는 당시의 집권자인 최우(崔瑀)의 배려로 고율시(古律詩), 사륙(四六), 잡문(雜文) 135권으로 편간(編刊)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서 150권의 시문집(詩文集)이 있었다고 소주(小註)한 내용과도 거의 일치한다.

 

이와 같이 방대한 그의 저술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시화서(詩話書)나 만록류(漫錄類)에 빈번하게 오르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문학사에서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의 시작(詩作)에 있어서는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시선집(詩選集)으로는 가장 오래된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247수 수록)에 그의 시편(詩篇)37수나 수록되어 이규보(李奎報)30, 이인로(李仁老)28수를 상회하고 있으며 동문선(東文選)에도 50여수가 선발(選拔)되고 있다. 이 밖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도처에 130여수의 제명(題詠)이 실려 있어 서로 중복되는 시편(詩篇)을 제외하고서도 그의 유작(遺作)은 물경 180여수에 이른다. 시문집(詩文集)이 전하지 않는 김극기(金克己)의 경우 이처럼 그의 가작(佳作)이 다량으로 선발되고 있다는 것은 시인 김극기(金克己)의 비중을 다시 인식케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각종 시선집(詩選集)에서 모두 뽑아주고 있는 그의 시작(詩作)은 그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어옹(漁翁)(七絶)을 비롯하여 서루만망(西樓晩望)(七絶), 증미륵사주노(贈彌勒寺住老)(七絶), 이화(李花)(七絶), 추만월야(秋晚月夜)(七絶), 전가사시(田家四時)(五律4), 패상도오학사운(浿上渡吳學士韻), 파산현우서(派山縣偶書)(七律), 숙향촌(宿香村)(五古), 유감(有感)(五古), 취시가(醉時歌)(七古) 11편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경구(警句)들이 율시(律詩) 가운데 많다.

 

 

대표작 어옹(漁翁)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天翁尙不貰漁翁 하늘이 아직도 어옹(漁翁)에게 너그럽지 않아
故遣江湖少順風 일부러 강호(江湖)에 순풍을 적게 보내네.
人世險巇君莫笑 인간세상 험하다고 그대는 비웃지 마라,
自家還在急流中 제 몸이 도리어 급류중(急流中)에 있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어부의 한취(閑趣)를 말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와 반대로 어부(漁父)의 위험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돋보이는 곳이다. 어부(漁父)는 취하여 자기 집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자(崔滋)보한집(補閑集)권중(卷中) 3에서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대하여 지은 시가 맑고도 밝으며 말은 다양하고도 더욱 풍부하다[屬辭淸曠 言多益富]’라 하였거니와, 그의 말이 얼마나 풍부한가는 다음의 경구(警句)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언율시(五言律詩)부터 보도록 하자.

 

전가사시(田家四時)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喚雨鳩飛屋 含泥燕入樑 비 오라고 비둘기는 지붕 위에 날아 들고 진흙 물고 제비들이 들보에 찾아 드네.()

 

雉爲哺雛瘦 蠶臨成繭肥 새끼들 먹이느라 꿩은 여위고 고치를 만들 때 누에는 살찌네.()

 

牧笛穿烟去 樵歌帶月還 목동의 피리 소리 저녁 연기 뚫고 가고 나무꾼 노래 소리 달을 띠고 돌아오네.()

 

板簷愁雪壓 荊戶厭風號 널판자 처마는 눈에 눌린 것 걱정하고 사립문은 바람 소리 윙윙하는 것 싫어하네.()

 

잉불역(仍佛驛)은 다음과 같다.

 

溪聲淸似雨 野氣淡如烟 시내 물소리 맑아 비오는 것 같고 돌 기운 담담하여 연기 같이 깔렸구나.

 

칠언율시(七言律詩)에서 보면 야좌(夜坐)고원역(高原驛)를 들 수 있다.

 

야좌(夜坐)는 다음과 같다.

 

薄祿微官貧始重 가난할 때 비로소 박록미관(薄祿微官) 중한 줄 알고
浮名末利醉還輕 취했을 때 도리어 부명말리(浮名末利) 가볍게 보네.

 

고원역(高原驛)은 다음과 같다.

 

三年去國成何事 3년 동안 나라 떠나 무슨 일 이루었나?
萬里歸家只此身 만리에서 돌아오니 다만 이 몸 뿐이로다.
林鳥有情啼向客 숲 새는 정이 있어 나그네 보고 지저귀고
野花無語笑留人 들꽃은 말없이 웃으며 나를 붙잡네.

 

위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그는 고시(古詩)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취시가(醉時歌)(七古)와 같은 명편(名篇)은 인간(人間) 김극기(金克己)의 기골(氣骨)과 품위(品位)를 함께 알게 해준다. 그러나 남송(南宋)의 육유(陸游)와 그는 같은 때에 세상을 살았지만 평담(平淡)한 그의 구법(句法)을 대할 때마다 육유(陸游)를 연상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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