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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4. 해동의 강서시파(이행)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4. 해동의 강서시파(이행)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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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행(李荇, 1478 성종9~1534 중종29, 擇之, 容齋)은 덕수이씨(德水李氏)의 명문가(名門家)에서 태어나 문형(文衡)의 영예를 누리면서 벼슬이 재상에까지 올랐으나 무오(戊午)ㆍ갑자(甲子)기묘사화(己卯士禍)의 와중에서는 네 차례나 유배지의 신고(辛苦)를 감내하여야만 하였으며 끝내 유배지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러나 그는 생활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손수 시고(詩藁)를 만들어 생생한 삶의 체험을 후세에 남겼다. 그때 만든 11편의 시()용재집(容齋集)에 전하고 있어 그의 삶과 시세계를 한꺼번에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의 문집에 전하는 것으로는 조천록(朝天錄)을 비롯하여 적거록(謫居錄)ㆍ남천록(南遷錄)ㆍ해도록(海島錄)ㆍ창택록(滄澤錄)ㆍ남유록(南遊錄)ㆍ영남록(嶺南錄)ㆍ차황화시집(次皇華詩集)ㆍ동사집(東槎集)ㆍ화남악창수집(和南岳唱酬集) 10편이며 이 중에는 따로 간행된 것도 있다. 특히 그는 66편에 달하는 부()를 남기고 있어 부()의 작가로서도 조선초기의 으뜸이다.

 

그의 시()에 대해서는 특히 허균(許筠)이 조선조 제일대가(第一大家)라 칭도하였으며 김창협(金昌協)농암잡지(農巖雜識)외편29에서 침후(沈厚)ㆍ화평(和平)하고 담아(澹雅)ㆍ순숙(純熟)한 그의 시()원혼화아 의치노성(圓渾和雅, 意致老成)”으로 평가하여 박은(朴誾)과 맞수임을 말하고 있다.

 

 

이행(李荇)의 시()는 시선집(詩選集)에서 뽑힌 것만 30수가 넘어 조선조 제일대가(第一大家)의 면모를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그의 대표작은 팔월십오야(八月十五夜)(七絶)제천마록후(題天磨錄後)(五律).

 

팔월십오야(八月十五夜)는 다음과 같다.

 

平生交舊盡凋零 평생에 사귄 벗들 다 죽고 없는데
白髮相看影與形 백발(白髮)이 되어 몸과 그림자가 서로 보게 되네.
正是高樓明月夜 이야말로 높은 누각 달 밝은 밤인데
笛聲凄斷不堪聽 처량한 피리소리 차마 들을 수 없네.

 

다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그였지만, 정감과 시어(詩語)가 한데 어울어져 읽을 수록 무한한 감회(感懷)가 구슬픔을 더해줄 뿐이다. 특히 기구(起句)는 자신의 몸과 그림자가 서로 본다는 것으로 혼자 살아 남은 자신의 처지를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높은 수준이 아니고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과시한 것이다. 물론 영여형(影與形)’은 이밀(李密)진정표(陳情表)에서 형영상인(形影相印)’으로, 장구령(張九齡)조경견백발연구(照鏡見白髮聯句)에서 수지명경리 영형백상련(誰知明鏡裏, 影形白相憐)’으로 이미 보인 것이다.

 

 

제천마록후(題天磨錄後)는 다음과 같다.

 

卷裏天磨色 依依尙眼開 책 속의 천마산색(天磨山色), 아직도 어렴풋이 눈 앞에 있네.
斯人今已矣 古道日悠哉 사람은 가고 없고 고도(古道)는 날로 멀어져 가네.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가랑비 영통사(靈通寺)에 내리고 석양은 만월대(滿月臺)에 진다.
死生曾契闊 衰白獨徘徊 생과 사는 본래 만날 수 없는 것, 허옇게 된 머리로 홀로 배회하네.

 

박은(朴誾)이행(李荇)ㆍ남곤(南袞) 3인이 개성(開城)에 있는 천마산(天磨山)에서 놀 때 지은 시집(詩集) 천마록(天磨錄)을 보면서 1503갑자사화(甲子士禍)에 희생된 박은(朴誾)을 그리워한 작품이다. ‘사생계활(死生契闊)’은 물론 시경(詩經)패풍(邶風) 격고(擊鼓)사생계활 여자성설(死生契闊 與子成說).’에서 나온 것이지만, 책 속에 담긴 천마산(天磨山)을 두고 이렇게 읊어 낼 수 있는 그의 솜씨는 허균(許筠)의 높은 조감(藻鑑)으로도 찬양할 말을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아(古雅)하면서도 침착(沈着)ㆍ중후(重厚)함을 잃지 않은 이행(李荇)의 시세계는 이 한 편만으로도 알고 남을 것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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