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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5. 경세가의 시편(이가환)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5. 경세가의 시편(이가환)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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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환(李家煥, 1742 영조18~1801 순조1, 廷藻, 錦帶貞軒)은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을 개척한 이익(李瀷)의 종손(從孫)이며, 엄격한 학자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용휴(李用休)의 아들이다. 남인(南人) 가계(家系)의 학풍을 체감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그는 환경과,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李承薰)이 그의 외숙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천주교에 관심을 가질 조건도 함께 곁들여 있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적으로 교유한 사람들 중에는 정약용(丁若鏞)ㆍ이벽(李檗)ㆍ권철신(權哲伸) 등 남인계 천주교 신자가 많았다. 일찍이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이름을 얻은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가학(家學)에 숙달하여 실학자적 소양과 문장력을 겸비하였으나 그의 명성에 걸맞는 저술이 없는 것이 흠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이가환(李家煥)은 솔직한 성정에서 나오는 청신(淸新)한 시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천기론에 연원을 둔 중인층의 여항문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면모도 보였다.

 

그는 43세에 생질인 이벽과 서학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오히려 천주교인이 되는가 하면, 1791신유박해(辛酉迫害)의 와중에서는 도리어 광주부운(廣州府尹)이 되어 천주교를 탄압하는 역설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대사성(大司成)ㆍ개성유수(開城留守)ㆍ형조판서(刑曹判書)ㆍ충주목사(忠州牧使)를 역임하는 과정에 다시 이승훈, 권철신 등과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다 1801년에 순교 옥사하였다.

 

이용휴(李用休)이가환(李家煥) 부자(父子)가 기궤첨신(奇詭尖新)한 시풍을 열었다는 것은 김택영(金澤榮)의 평가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그의 시세계는 정치적 좌절에서 울분을 토로한 것이 한 경향을 이루고, 또 그 반대편에는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는 청신(淸新)한 시세계가 유로되어 있으며, 간혹 애염(哀艶)ㆍ탕일(宕逸)한 작품들이 그의 자유로운 몸짓을 대변해 주고 있다. 특히 그의 청신(淸新)한 시풍에 대해서는 그와 문학적 특질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학규(李學逵)ㆍ신광하(申光河)가 그의 시를 가리켜 청아(淸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가환(李家煥)의 도달처가 바로 청신(淸新)의 경지에 있었음을 알게 한다.

 

한편 그의 문학관을 피력한 논설들은 대체로 시인의 솔직한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이 언외지의(言外之意)를 함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고 있으며, 신리핍사(神理逼似)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대동시선에는 연광정(練光亭)2(七絶), 기자묘(箕子廟), 설청(雪晴(이상 五律), 견민(遣悶), 백문(白門)(이상 七律), 송만덕환탐라(送萬德還耽羅)(七古) 등이 대표작으로 선발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견민(遣悶)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蕭條錦樹落天霜 쓸쓸한 나무에 찬 서리 내리고
爲客江關日月長 강남(江南)의 나그네 신세 세월은 느리기만.
千佛風雲供坐臥 천불산(千佛山)의 풍운(風雲)은 앉거나 누워 있고
五山冰雪變衣裳 오산(五山)의 빙설(氷雪)은 입은 옷을 바꾼다.
衰顔賓對蒼生哭 쇠한 얼굴로 백성의 고통 보고만 있으니
往歲虛隨粉署香 지난 세월 벼슬살이 헛되이 하였구나.
薄暮柴門扶杖立 저물녘 사립문에 지팡이 짚고 서서
愁看荒艸野茫茫 아득한 거친 들판 시름겹게 바라본다.

 

시름을 풀어내는 시답게 처량한 인생사와 쓸쓸한 경물이 어우러진 시이다. 특히 함련에서 보여주고 있는 묘사구는 매우 참신하여 이가환(李家煥) 시의 특질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름에 휘감긴 천불산과 빙설이 얼어붙은 오산의 생동하는 모습이 절묘한 댓구로 표현되어 있다. 천불(千佛)과 오산(五山)의 지명으로 첫 대를 공교롭게 맞춘 뒤, 풍운(風雲)과 빙설(氷雪)의 평이한 대, 다시 공좌와(供坐臥)와 변의상(變衣裳)의 기발한 대로 이어져 첨신(尖新)한 맛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첨신기발한 표현 뒤에 시인의 고음(苦吟)이 뒤따르고 있다. “쇠안빈대창생곡 왕세허수분서향(衰顔賓對蒼生哭 往歲虛隨粉署香)”이라 하여, 백성들의 질곡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벼슬아치의 처지가 토로되어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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