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 1786 정조10~1856 철종7, 자 元春, 호 秋史ㆍ阮堂ㆍ禮堂ㆍ詩庵ㆍ果坡ㆍ老果) 역시 신위(申緯)와 마찬가지로 시서화(詩書畵) 모두에 발군(拔群)의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시인, 서도가, 화가, 정치가, 경학자로서 그 어느 분야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남을 과시했다. 실제로 학문과 예술이 상호 융화되어 그 폭이 끝간 데 없이 호한(浩澣)할 뿐만 아니라, 교유관계도 역시 그 폭이 넓었다. 당시 청대의 석학으로 추숭받던 옹방강(翁方綱)ㆍ완원(阮元)으로부터 고증학(考證學)과 금석학(金石學) 및 박학다식(博學多識)의 계몽(啓蒙)을 입은 바 있고, 일찌기 스승으로 삼았던 박제가(朴齊家)로부터 시서화(詩書畵)의 역량을 전수받았는가 하면, 당대에 명망 높은 신위(申緯)ㆍ조인영(趙寅永)ㆍ권돈인(權敦仁)ㆍ신관호(申觀浩) 등과 시교(詩交)를 맺었으며, 나아가 불교적인 안목도 뛰어나 백파(白坡)ㆍ초의선사(草衣禪師)와도 허물없는 시정(詩情)을 나누는 한편 호남 남종화의 맥을 틔운 허유(許維)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술ㆍ사학ㆍ철학계의 추사연구(秋史探究)와는 달리 정작 추사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문학의 영역은 아직까지 그 전모를 파악할 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우선 이런 현상은 추사 스스로 자신의 문학관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언술을 남기지 않았던 사정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추사의 관심 자체가 어느 특정 시풍에 기울지 않았던 데서도 연유한다 할 것이다. 학시(學詩) 과정에서 박학다식을 강조하였다거나 어느 한 입장에 기울어지는 태도를 경계했던 일들이 모두 추사의 문학관을 정리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김정희(金正喜)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훈척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김문(慶州金門)에서 병조판서 노경(魯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던 백부 노영(魯永)의 양자로 자라났다. 왕가와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나 24세에 생원시에 일등입제(一等入第)한 뒤 동지(冬至) 겸(兼) 사은부사(謝恩副使) 김노경(金魯敬)의 연행(燕行)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 연경(燕京)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 완원(阮元)과 옹방강(翁方綱)을 만나 사제지의(師弟之義)를 맺은 일은 김정희(金正喜)의 일생에 일대전환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이 시기 연경의 학풍은 고증학의 수준이 난숙기에 이르러 종래 경학의 보조학문으로 치부되던 금석학, 사학,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등이 개별적 학문으로 진척되는 과정이었다. 또한 문학의 습상(習尙)에 있어서도 일종의 절충주의라 할 수 있는 ‘유소입두(由蘇入杜)’의 주장이 청(淸)의 시단을 풍미하던 때였으므로 추사는 이러한 분위기를 대표하는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을 통해 금석학, 실사구시학, 문학관에서 각각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출사 후, 그는 벼슬이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으나, 일찍이 생부 노경(魯敬)이 배우조종자로 연루되었던 윤상도(尹尙度) 옥사사건에 재차 말려들어 제주도에 9년간 유배되었으며 헌종 말년 63세의 나이로 방환되었으나, 또 다시 함경도 북청(北淸)에서 2년간 적거했다가 말년에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서 학예를 닦던 중 생을 마쳤다. 네차례 문집이 간행되어 각각 전하고 있는데, 1934년에 보충ㆍ간행된 『완당선생전집(阮堂先生全集)』이 추사(秋史)의 유고를 종합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조선후기 소단(騷壇)이 ‘모의(模擬)’를 배척하고 창신(創新)을 선호하여 개성적인 시세계를 강조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추사(秋史)와 자하(紫霞) 역시 선인(先人)의 시세계와는 다르게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여야 할 임무가 그들에게 주어져 있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추사(秋史)의 경우, 실제로 ‘법고(法古)’보다는 ‘창신(創新)’에보다 관심을 보인 연암(燕巖) 및 후사가(後四家)와는 다르게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의 균형을 중시하였으므로, 후사가(後四家)가 주장한 창신(創新)에의 일방적 경도현상이 가져올 문제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시를 평한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 것을 배우지 않고 마음대로 법도를 버리는 것은 자기만을 말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만약 훌륭한 모범을 얻어보고 또 나아감에 정도가 있다면 그 하늘이 내려준 품성으로 어찌 여기에서 그치고 말았겠는가?
於不學古而緣情棄道者, 殆似自道也. 若使得見善本, 又就有道, 以其天品, 豈局於是而已也? 「書圓嶠筆訣後」, 『阮堂先生全集』 권6下
선본(善本)을 통해 학고(學古)한 바탕 위에서라야 자득(自得)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쉽게 간취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무조건적인 창신을 경계하고 선인의 다양한 경지를 맛보아 마침내 자가(自家)를 이루어야 한다는 논의로 귀결된다. 추사는 학시(學詩)의 모범으로 도연명(陶淵明)ㆍ왕유(王維)ㆍ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ㆍ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ㆍ육유(陸游)ㆍ원호문(元好問)ㆍ우집(虞集)ㆍ왕사정(王士禎)ㆍ주이존(朱彛尊)을 차례로 들고 있는 바, 이러한 태도는 바로 신위(申緯)의 유소입두(由蘇入杜)와 맥을 같이 한다. 추사 시에서 소재의 다양화 경향도 이미 후사가의 죽지사(竹枝詞)에서 그 싹을 틔웠거니와 추사는 시의 대상을 삶의 주변에서 골고루 취택함으로써 시세계의 다양화를 꾀하였다. 소재의 다양화는 이런 점에서 표현의 사실성과 긴밀히 연결된다. 주위의 사물을 빌어 관념적이거나 감정적인 흥취(興趣)를 담아내는 방법보다는 대상 자체의 특징과 속성을 중요시할 때, 시는 사실적인 경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대동시선』에 선발된 작품만 하더라도 추사(秋史)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취우(驟雨)」 등 15편에 이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취우(驟雨)」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樹樹薰風葉欲齊 |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잎은 가지런하려 하고 |
正濃黑雨數峰西 | 봉우리 서쪽에서 먹구름 밀려온다. |
小蛙一種靑於艾 | 쑥보다 더 푸르른 개구리 한 마리, |
跳上蕉梢效鵲啼 | 파초 가지에 뛰어올라 까치처럼 울고 있다. |
추사(秋史) 시세계의 한 경향은 일상적인 경험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매우 자세하게 관찰하여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그가 학문적으로 고증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관찰과 실험의식이 시작(詩作)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된 것이라 하겠다. 여름날의 소나기 오는 풍경을 그린 이 시의 장처(長處)는 바로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이다. 쏟아지는 비 속에 파초 잎 위에 앉아 울고 있는 개구리의 모습이 ‘청어애(靑於艾)’의 선명한 색채묘사와, ‘작제(鵲啼)’라는 청각적 묘사로 인해 시중유화(詩中有畵)를 실감케 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바로 이러한 시를 낳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유득공(柳得恭)의 「장우(將雨)」란 시의 ‘수수훈풍벽낙제 정농운의수봉서 소와일종청어애 도상매초효작제(樹樹薰風碧葉齊 正濃雲意數峯西 小蛙一種靑於艾 跳上梅梢效鵲啼)’와 내용이 혹사(酷似)하여 그 진위(眞僞)를 가려야 할 것이다. 유득공(柳得恭)이 추사(秋史)보다 앞서기 때문에 『완당전집(阮堂全集)』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나게 한다.
대체로 추사(秋史)의 시는 일상적인 삶, 또는 일상적 삶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환경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주종(主宗)을 이루고 있지만, 역으로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하여 삶의 아픔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인 것도 있다.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도망시(悼亡詩)가 그러한 것 중에 하나다. 다음이 그의 「도망(悼亡)」이다.
那將月姥訟冥司 | 어떻게 월하노인 불러 저승에 호소하여 |
來世夫妻易地爲 | 내세에는 그대와 내 자리 바꾸어 태어날까? |
我死君生千里外 | 내가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서 |
使君知我此心悲 | 그대로 하여금 이 슬픔 알게 했으면, |
이 작품은 도망시(悼亡詩) 가운데서도 절조(絶調)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제주도 배소(配所)에서 부인의 부음을 받고 쓴 것이다. 유배지에서 처의 죽음을 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지은 것이기는 하지만, 일상적인 한시의 세계에서 보아도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는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죽은 부인을 위로하는 도망시를 통하여 부인에 대한 사랑을 간접으로 노래하는 우리나라 염정시(艶情詩)의 한 단면을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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