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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국한시사, 한시(漢詩) 문학(文學)의 종장(終章) - 우국(憂國)의 시인(詩人): 개요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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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한시(漢詩) 문학(文學)의 종장(終章) - 우국(憂國)의 시인(詩人): 개요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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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의 책동은 1897년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으로 변신하게 하였으며 1905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이르러 사실상 국권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를 전후하여 다시 후기 의병항쟁이 전개되고 빗발치는 토적소(討賊疏)사림(士林)에서 터져나왔다. 그러나 산림(山林)에서 몸을 일으킨 의병의 항쟁으로는 기울어진 조국의 운명을 붙들어잡는 데까지는 미칠 수 없었다. 그나마 총칼을 들고 의병항쟁에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 시기의 문인들은, 또는 선비로서 또는 지사(志士)로서 스스로 그들의 변신을 강요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가능했던 일은 우국의 노래를 제조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시인들은 한말의 상황이 난망(亂亡)에 이르기 앞서부터, 공통적으로 인물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에 눈물 지으며 선현들의 위업을 추상(追想)했다. 가신지 200년이 넘는 충무공의 슬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건창(李建昌)아산과이충무공묘(牙山過李忠武公墓), 황현(黃玹)충무공구선가(忠武公龜船歌)벽파진(碧波津), 그리고 이남규(李南珪)과충무공순신묘(過忠武公舜臣墓)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의병항쟁에 기의(起義)김복한(金福漢)이충무공묘(李忠武公墓)도 그 성격에 있어서는 다른 것이 없다.

 

먼저 문인(文人)들의 우국시를 보이고 다음으로 사조란(詞藻欄)의 애국시(愛國詩), 의병장의 우국ㆍ절명시 등을 차례로 보이기로 한다.

 

다음은 이건창(李建昌)아산과이충무공묘(牙山過李忠武公墓)이다.

 

元帥精忠四海知 원수(元帥)의 위국충정 온 세상이 다 아나니
我來重讀墓前碑 이곳에 와 묘비문을 거듭 읽어봅니다.
西風一夕松濤冷 저녁에 서풍 불어 소나무 소리 차갑더니
猶似閒山破賊時 한산도 왜적 칠 때 그 소리와 같습니다. 明美堂集2.

 

이 시는 바로 평담(平淡)영재(寧齋) 시풍(詩風)의 단편(斷片)이다. 충무공의 묘소를 찾아든 영재(寧齋)의 감회는 그것이 단순한 회고적(懷古的)인 감상(感傷)을 노래한 것이 아니며 시인의 현실에 대한 인식 바로 그것의 발현인 것이다. 갑신(甲申)ㆍ갑오(甲午)의 두 정변을 한갓 개화꾼의 불장난으로 본 그는 이홍장(李鴻章)과 같은 위인도 큰 거간꾼으로 보고 있었다. 이러한 외세에 대처하는 그의 입장은 을미사변(乙未事變)에서 보여준 반민족적인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는 장문(長文)토역소(討逆疏)를 올려 준열하게 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행(使行)의 임무가 어느 때보다도 중한 것을 갈파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이용후양(利用厚養)의 실()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곧 다른 박학(樸學)의 무리와 준별해야 할 영재(寧齋)의 시국관이며 역사인식의 태도였다고 할 것이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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